지난 20일 불법 대북 송금 등의 혐의로 구속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여전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직접적인 연결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설날인 22일만 빼고 연휴 내내 계속된 수원지검 형사6부(김영남 부장검사)의 조사에 출석한 김 전 회장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소개로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 회장을 알게 됐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관계는 계속 부인했다고 한다.
김성태, 거부 없이 순순히 진술
구속영장에 적시된 김 전 회장의 혐의는 4500억원대 배임과 횡령, 사기적 부정거래 등 자본시장법 위반, 대북 송금을 위한 외국환관리법 위반, 이 전 부지사에 대한 뇌물 공여 등이다. 구속 뒤 사흘간의 조사 과정에서 김 전 회장은 진술 거부 없이 수사팀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고 한다.
검찰이 가장 공들이는 건 김 전 회장의 배임·횡령 의혹과 쌍방울그룹의 대북 송금 의혹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이다. 배임·횡령은 김 전 회장이 쌍방울 재무담당 부장인 A씨를 시켜 계열사인 나노스(현 SBW생명과학)가 발행한 전환사채를 보유한 ‘제우스1호 투자조합’(이하 투자조합) 조합원들의 지분을 임의로 감액하거나 자신의 지분으로 변경하는 등의 방법으로 투자조합측에 총 4500억원 상당의 손해를 입혔다는 혐의다. 자신이 실소유한 페이퍼컴퍼니가 나노스의 전환사채를 매입할 수 있도록 쌍방울의 회삿돈 30억원을 빼돌려 부당 지원(횡령)했다는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쌍방울 본사가 발행한 전환사채의 매입 과정을 금융당국에 제대로 공시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도 적용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조성된 비자금이 대북송금 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변호사비로 쓰였다고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김 전 회장 측은 “계열사 간에 필요에 따라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았을 뿐 횡령·배임이 아니다”라며 “이 과정에서 회계처리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안부수“국제대회 예산 부족에 이화영이 김성태 소개”
반면 북측으로부터 지하자원개발 등 대북사업 우선권을 받는 대가로 북한에 640만 달러의 외화를 밀반출했다는 혐의(외국환거래법·남북교류협력법 위반)와 이 전 부지사에게 뇌물·정치자금을 건넸다는 혐의 등은 일부 인정하고 있다. 검찰은 이미 재판에 넘겨진 이 전 부지사의 공소장에 김 전 회장을 뇌물 공여자로 적시했다.
김 전 회장 측은 검찰 조사에서 “이 전 부지사의 소개로 아태협 안 회장을 알게 돼 경기도의 대북사업 등을 지원하게 됐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면서도 “ 이 대표와는 만난 적도, 연락한 적도 없는 사이”라며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은 강력하게 부정했다고 한다.
쌍방울그룹이 아태협을 지원한 과정에 이 전 부지사가 연루됐다는 증언은 이 전 부지사의 재판에서도 나왔다. 지난 16일 열린 이 전 부지사의 6차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안 회장은 “2018년 8월 북한을 방문해 ‘아시아 태평양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 개최와 관련된 합의서를 받았는데, 이 전 부지사가 연락해 경기도와 함께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 회장은 “당시 관련 예산으로 5억원을 요청했는데 경기도가 ‘도지사가 직권으로 줄 수 있는 예산이 3억원밖에 안 된다’고 해 항의했더니 이 전 부지사가 김 전 회장을 소개했다”고 진술했다. 안 회장은 2006년부터 김 전 회장을 알긴 했지만 친한 관계는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전 부지사의 주선 이후 아태협은 쌍방울로부터 국제대회 예산 후원 등은 물론 쌍방울 본사 건물에 사무실을 무상으로 제공받았다. 안 회장은 2019년 1월 나노스의 사내이사로 영입됐다.
검찰은 안 회장과 쌍방울이 북한에 거액의 달러 등을 보낸 배경에 경기도의 사업과 연관성이 있는지를 주목하고 있다. 안 회장의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회장와 안 회장 등은 2018년 10월 중국 단둥에서 만난 김성혜 당시 북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 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조선아태위) 실장에게 “경기도가 약속한 농림복합형 농장(스마트팜) 비용 50억원을 쌍방울그룹이 경기도를 대신해 지원해달라”고 제안받아 수락했다.
김 전 회장은 2019년 1~11월 쌍방울 임직원 수십명을 동원해 두 차례에 걸쳐 북한 인사에게 500만 달러(약 60억원)를 전달했다는 혐의도 받는다. 쌍방울 측은 “대북 경제협력 사업권 대가”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검찰은 송금액 중 일부는 경기도의 대북사업 비용을 대납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당시 경기도가 북한과 쌍방울 간의 이 같은 협의 내용을 알고 있었는지, 당시 경기지사였던 이 대표가 이런 과정을 보고받았는지도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구속 시한을 고려해 내달 8일 전후로 김 전 회장을 재판에 넘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