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며느리들 좋아해서 긴 이름? 최장 25자 아파트 이름 '진짜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전국에 있는 공동주택(아파트) 중 가장 이름이 긴 곳은 어디일까. 전남 나주에 있는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빛가람 대방엘리움 로얄카운티 1차(2차)’다. 이름이 총 25자인데, 단지 구분 명을 빼더라도 23자다. 이름은 ‘대방’건설이 ‘광주 전남 공동혁신도시 빛가람’ 마을에 지은 아파트라는 것을 의미한다. ‘엘리움’은 대방건설의 아파트 브랜드명이고, ‘로얄 카운티’는 말 그대로 왕실의 영지라는 뜻이다.

이처럼 아파트 이름이 길어지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24일 서울시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까지는 주로 지역명과 건설사 이름으로 아파트 이름을 짓곤 했다. ‘압구정 현대 아파트’가 한 예다. 그러다가 아파트 재건축이 본격화되던 2000년대 초반부터 외국어를 사용해 아파트 이름을 짓기 시작했다.

 지난 1월2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한 어린이가 아파트 단지의 모습을 보고 있다. 뉴스1

지난 1월2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한 어린이가 아파트 단지의 모습을 보고 있다. 뉴스1

초기엔 ‘스테이트’ ‘파크’ ‘캐슬’ 등 비교적 단순 영어 단어가 사용됐다. 그러다가 프랑스나 스웨덴어 등 여러 국가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한 예로 한화건설의 ‘포레나’는 스웨덴어로 ‘연결’ ‘맞잡다’라는 뜻이 있다. 최근에는 고급 브랜드 추구를 위해 ‘아크로’ ‘써밋’ 등 단어가 붙기도 했다. 두 개 이상 건설사가 합작할 때엔 아파트 이름이 더욱 길어진다. 경기 화성 소재 ‘동탄 시범 다은마을 월드메르디앙 반도유보라 아파트’는 월드건설과 반도건설이 건설하면서 아파트 이름이 20자를 넘겼다.

아파트 이름 ‘길고 복잡해’…서울시, 의견 수렴 

업계에선 브랜드가 집값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면서 소위 ‘펫 네임(애칭)’을 가진 아파트일수록 “가격이 오른다”는 분위기를 이런 현상의 배경으로 본다. 길고, 복잡하고, 어려울수록 집값이 오른다는 인식이 있단 것이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아파트 이름이 복잡하고 어려워져서 부모가 자식의 집을 찾아가기조차 어렵다는 풍문도 나온다. 한 노인이 자식의 집을 찾아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가, 택시 기사가 아파트 이름을 알아듣지 못해 집을 찾기 어려워했다는 해프닝도 있다.

우리말과 외국어가 뒤섞여 길고 복잡한 아파트 이름은 적절할까. 서울시가 지난달 29일 ‘알기 쉽고 부르기 쉬운 공동주택 명칭 관련 토론회’를 연 것은 이러한 의문에서부터 시작됐다. 서울시 공동주택지원과 관계자는 “아파트 이름이 과도하게 길거나 복잡하면 시민이 과연 주소를 쉽게 인지할 수 있을지, 공동주택이란 성격상 (이름이 긴 게) 공공성에 부합한 지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회 각계에 있다”고 전했다.

시민 사이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가 지난해 11월21일부터 12월10일까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최근 아파트 이름이 ‘길고 복잡하다’는 응답이 77.3%에 달했다. ‘아파트 이름이 어렵고 비슷해서 방문 시 헷갈렸다’는 응답도 74%에 달했다. 아파트 이름에 외래어 사용을 제한할 필요성이 있다(49.7%)는 의견도 있었다.

지난 1월5일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도심의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스1

지난 1월5일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도심의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스1

“아파트는 사유재” 반론도

반론도 적잖다. 시가 학계나 건설업계 등 의견을 수렴해보니 “아파트 이름은 건설사 등에서 자체기준을 갖고 적정성을 검토한다”며 “아파트는 사유재이자 사적영역이지, 공공재나 공공영역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외국어 사용에 대해서도 “(이름에) 한글만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있는 사회문화적 가치에 대한 역행”이라는 반론도 있었다고 한다. 아파트도 하나의 상품인 만큼 고객이 복잡한 이름을 요구할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서울시에선 아파트 이름 ‘규제’보다 안내·권유에 무게를 두고 있다. 아파트 이름이 지명으로서 공공성을 띄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적 영역 규제는 불가능하단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시는 재건축·재개발을 할 때 일종의 작명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부르기 쉽게 이름을 지으면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 등 검토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캠페인을 진행해 아파트 이름을 쉽고, 간결하게 짓는 데 대한 시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올 상반기 중 시민과 공인중개사, 건설업계 및 전문가들을 모아 공개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