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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풍경 바꾼 화면, 미래엔 몸 일부 되고 꿈 생중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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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의 첨단의 끝을 찾아서] 디스플레이의 진화 

LG전자가 지난 5~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23의 전시관에서 선보인 '올레드 지평선'. [사진 LG전자]

LG전자가 지난 5~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23의 전시관에서 선보인 '올레드 지평선'. [사진 LG전자]

세상을 놀라게 한 'K 디스플레이'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 행성들의 모습, 별들의 궤적을 담은 밤하늘,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과 세렝게티 국립공원, 7개 폭포로 이루어진 아이슬란드 딘얀디 폭포, 북극 빙하, 거대 파도로 유명한 포르투갈 나자레 해변, 세계에서 가장 큰 레인트리, 동굴 안에서 기이한 빛의 예술을 보여주는 미국 애리조나 안텔로프 캐년….

지난 5~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23의  LG전자 전시관 입구에 설치된 초대형 조형물 ‘올레드 지평선(OLED Horizon)’이 보여준 2분50초짜리 영상이다. 가로×세로 123×70㎝, 플렉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260장을 이어 붙여 만든 높이 6m, 가로폭 25m의 거대한 파도 모양의 굴곡진 입체 디스플레이가 보여준 ‘작품’이다. 한승준 LG전자 선임은 “LG전자 전시관을 찾은 외국 관람객들이 거대한 올레드 지평선 영상을 보고 감탄하며 휴대폰으로 촬영하기 바빴다”며“LG의 초대형 OLED 디스플레이 조형물은 이제 CES의 명물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연말에는 서울의 대표적 백화점 두 곳이 자존심을 건 디스플레이 전쟁을 펼쳤다. 신세계는 남대문 본점 본관 5층 규모 외벽 전면에 LED칩 350만개를 붙여 높이 16m, 폭 76m의 초대형 디스플레이를 만들었다. 화면 속에는‘마법의 겨울 환상(Magical Winter Fantasy)’이라는 주제의 3분여짜리 영상이 펼쳐졌다. 크리스마스 기차를 타고 아름다운 설경 위를 달려 도착한 마법의 성에서 펼쳐지는 마법을 담았다는 게 신세계측 설명이다.  신세계 본점에서 500m 가량 떨어진 롯데백화점 본점 역시 LED를 이용한 대형 디스플레이 여러개로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다. 정문 위쪽엔 LED 모듈패널을 이어붙인 가로×세로 7×4m의 디스플레이를, 1층엔 가로×세로 2.5×2m의 LED 디스플레이를 쇼윈도우처럼 만들어 크리스마스 관련 동영상을 보여줬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 건물 전면을 덮은 LED 미디어파사드. [사진 신세계]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 건물 전면을 덮은 LED 미디어파사드. [사진 신세계]

LED 시작은 60년 전 붉은색 '발광 칩'

디스플레이가 도심의 안팎 풍경을 바꾸고 있다. 2002년 개봉한 공상과학(SF) 영화 ‘마이너리티리포트’속 거리의 대형 디스플레이 광고판 장면은 이미 현실이 된지 오래다. 최근 들어 기술이 더 진화하고, 관련 장비의 가격이 내려가면서 디스플레이는 대형을 넘어 건물 전면을 덮는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디스플레이는 평면’이라는 고정관념도 무너진지 한참이다.

최근 디스플레이 진화의 주인공은 ‘발광다이오드’(LEDㆍlight emitting diode)다. 미국의 공학자 닉 홀로니악이 1962년 발명한 LED는 일종의 ‘빛을 내는 반도체’로, 전기에너지를 빛에너지로 바꿔주는 기능을 한다. 다이오드란 양전극 단자에 전압을 걸면 전류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정류 작용’을 하는 소자다. 정류 방향으로 전압을 주면 전류가 주입되고, 전자와 정공이 재결합하게 된다. 이 때 발생하는 에너지의 일부가 빛으로 나타난다. LED는 광원, 또는 조명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LED 한 개를 화소 하나로 매칭하는 방식으로 디스플레이로 쓸 수도 있다. 그간 흔히 봐왔던 건물 외벽 전광판이 바로 LED를 이용한 것이다.

LED가 빛을 낸다고 하지만, 어떻게 다양한 색을 낼 수 있을까. LED는 2종 이상의 원소로 이뤄진 일종의 화합물 반도체인데, 주로 갈륨비소ㆍ갈륨인ㆍ갈륨비소인ㆍ갈륨질소 등으로 만들어진다. LED는 어떤 화합물을 쓰느냐에 따라 색깔, 즉 발광 파장이 달라진다. 재료에 따라 에너지 준위 차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에너지의 차이가 크면 단파장인 보라색 계통의 빛을 나타내고, 에너지 차이가 작으면 장파장인 붉은색 계통의 빛이 나온다. 1962년 홀로니악이 처음 발명했을 때만 하더라도 LED는 붉은색 뿐이었다. 때문에 초기에는 전자 측정 장비의 표시등 정도로만 사용됐다.

롯데백화점 본점을 장식한 미디어파사드. 건물 전면을 덮은 신세계와 달리 건물 여러곳에 크기가 다른 LED 디스플레이를 설치해 다양한 모습의 연말연시 장식을 보여줬다. [사진 롯데백화점]

롯데백화점 본점을 장식한 미디어파사드. 건물 전면을 덮은 신세계와 달리 건물 여러곳에 크기가 다른 LED 디스플레이를 설치해 다양한 모습의 연말연시 장식을 보여줬다. [사진 롯데백화점]

노벨상까지 받은 LED, 세상을 바꾸다

LED 진화의 역사 속에는 노벨상도 들어있다.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수상한 아카사키 이사무(赤崎勇), 아마노 히로시(天野浩) 일본 나고야대 교수, 나카무라 슈지(中村修二)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가 그들이다. 이들은 청색 LED 개발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다양한 색의 LED 디스플레이를 구현하려면 빛의 3요소인 붉은색과 녹색ㆍ청색 LED가 필요하다. 이 중 적ㆍ녹색 LED는 1960년대에 일찌감치 개발됐지만, 이후 30년 동안 훨씬 짧은 파장의 청색광 LED는 구현하지 못했다. 청색 LED 구현은 곧 LED 진화의 완성을 뜻하는 셈이다. 아카사키와 아마노는 1992년 나고야대학에서 효율이 높은 청색광 LED를 개발했다. 나카무라는 중소기업의 연구개발실에서 1990년에 청색광 LED의 재료인 질화갈륨를 높은 품질로 만드는 기법을 개발했다. LED가 최근 들어 다양한 색의 조명과 디스플레이로 발전할 수 있게 된 이유다.

LED는 소자의 물리적 크기 때문에 그간은 조명이나 대형 전광판 등에 주로 쓰였지만, 최근 들어서는‘마이크로 LED’로 진화하고 있다. 마이크로 LED란 기존 LED 소자의 10분의1 크기인 5~10㎛(마이크로미터) 수준으로 줄인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LED를 TV나 스마트폰 수준의 디스플레이용 화소로도 사용할 수 있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OLED(Organic Light Emitting Diode)는 디스플레이의 또다른 진화다. 기술 개발의 시작은 오래됐다. 1980년대 초 미국 코닥의 화학자 칭 탕 박사가 유기태양전지를 개발하다가 우연히 유기물에 전기를 흘리면 빛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아주 얇은 유기반도체 박막을 사용해 발광효율이 높은 OLED 소자를 개발했다. OLED 기술은 미국에서 싹을 틔웠지만, 꽃을 피운 건 한국이다. 삼성과 LG처럼 관련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우수한 기업과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협력업체들이 어느나라보다 풍부한 덕분이다. OLED의 경우 세계 시장의 80%를 LG와 삼성 등 한국 기업이 점유하고 있다

발광다이오드(LED)의 원형. 각각의 LED칩 크기가 5mm다. 빛의 삼원색인 푸른색과 녹색, 붉은색 LED칩의 밝기를 조절해 디스플레이에서 다양한 색깔을 만들어낸다. [사진 위키피디아]

발광다이오드(LED)의 원형. 각각의 LED칩 크기가 5mm다. 빛의 삼원색인 푸른색과 녹색, 붉은색 LED칩의 밝기를 조절해 디스플레이에서 다양한 색깔을 만들어낸다. [사진 위키피디아]

디스플레이는 계속 진화 중

디스플레이는 건물과 차량 등의 투명한 유리창까지 바꿔놓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CES 2023에서 자율주행 콘셉트카의 뒷좌석 측면 창문에 투명 OLED를 장착했다. 편기현 LG디스플레이 책임은 “55인치 투명 OLED를 통해 창 밖의 풍경을 보는 동시에 실시간 뉴스나 날씨, 광고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유명 랜드마크를 지날 때 관련 정보를 바로 띄우는 증강현실(AR) 시스템도 가능하다”며“버스나 지하철ㆍ기차 등 각종 대중교통 수단의 창문이나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유리창 대신 투명 OLED를 탑재하면, 기존 유리창을 정보 제공 및 광고 수익 창출 공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투명 OLED는 이제 막 상용화 단계에 들어선 분야이지만,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전세계 투명 OLED 시장은 2025년 3조원, 2030년에는 12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디스플레이는 지금도 ‘첨단의 끝’을 향해 진화 중이다. 관련 기초원천 기술은 이미 나온지 오래지만, 대학에서는 디스플레이 관련 난제에 대한 기초연구를, 기업에서는 기존 기술을 한단계 높이고, 상용화할 수 있는 응용개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정부는 한국이 선두에 서 있는 디스플레이 기술을 지키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2019년 발족한 국책과제 ‘디스플레이 혁신공정플랫폼 구축사업’의 경우 한국이 글로벌 선두로 이끌고 있는 디스플레이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임무다. 구체적으로 혁신소재 공정과 차세대ㆍ융복합 디스플레이 연구개발, 관련 인프라 및 플랫폼 구축을 통해 생산원가 50% 이상 감축, 시장 점유율 70% 이상 달성, 기술격차 3년, 생산격차 5년 확보라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  2025년까지 7년 동안 5281억원의 정부출연금이 투자된다.

사업단장을 맡고 있는 김용석 홍익대 신소재학과 교수는 “LED의 경우 오래 전에 청색을 개발해 기술을 완성한 상태지만, OLED의 경우 아직도 청색 발광재료의 효율이 떨어지고 수명이 짧은 단점이 있다”며“대학에서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기초 연구를, 기업에서는 대규모 자본을 바탕으로 대학과 함께 기초와 응용연구를 같이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디스플레이는 어디까지 진화할수 있을까. 『디스플레이 이야기』의 저자 주병권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디스플레이 기술은 아직도 진화할 단계가 많다”며“뇌파와 연동해 꿈을 보여주는 디스플레이, 콘택트렌즈나 스마트 타투처럼 몸의 일부가 되는 디스플레이, 사용자가 시력을 보정하거나 시력에 맞춘 초점 조절이 가능한 디스플레이 등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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