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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출혈 내연녀 사망' 뒤집힌 판결...국토연 前부원장 법정구속,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자신의 아파트에서 쓰러진 동료 여직원을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전 국토연구원 부원장이 항소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대전고법 제3형사부는 17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전 국토연구원 부원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신진호 기자

대전고법 제3형사부는 17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전 국토연구원 부원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신진호 기자

대전고법 제3형사부(정재오 부장판사)는 17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전 국토연구원 부원장 A씨(60)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8년을 선고한 뒤 법정 구속했다. A씨는 2019년 8월 16일 오후 11시20분쯤 자신이 거주하는 세종시 한 아파트에서 의식을 잃은 내연 관계 직원 B씨를 3시간 후에 밖으로 데리고 나온 뒤 다시 4시간 넘게 차량에 태운 채 방치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B씨를 뒤늦게 병원 응급실에 데려갔으나, B씨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재판부는 처음 쓰러졌을 당시만 해도 자가호흡이 가능해 A씨가 119에 신고했더라면 살 수 있었을 시간이었다고 판단했다. A씨 거주지에서 인근 119안전센터까지 거리는 1.4㎞(5분 거리)에 불과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피해자(B씨)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고 사진을 촬영하는 등 질 나쁜 행위도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재판부 "적절한 구호조치 안해 사망" 판단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B씨를 차량 뒷좌석에 짐짝처럼 집어 던진 뒤 국토연구원 주차장에 도착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사진을 찍고 쓰러진 지 7시간여 만에야 병원 응급실로 갔다”고 지적했다. B씨가 쓰러진 것을 사무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위장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A씨가 B씨를 병원에 데리고 갔을 때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당시 A씨는 B씨 사망이 확인되자 오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B씨 가족은 “돌아가신 상태로 오셨다”는 병원 통보를 받고 사망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대전고법 제3형사부는 17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전 국토연구원 부원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신진호 기자

대전고법 제3형사부는 17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전 국토연구원 부원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신진호 기자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의식을 잃었을 때 119에 신고해 응급실로 옮겼더라면 살 수 있었음에도 그대로 방치해 사망의 결과를 초래했다”며 (A씨가 B씨와) 내연 관계가 발각될 것이 두려워 은폐하려고까지 했다”며 1심을 뒤집고 중형을 선고했다.

이어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유족에게 사과하지 않고 피해자가 깊이 잠들어 내버려 뒀다는 변명만 해 (유족의) 분노를 더 키웠다”며 “유족이 A씨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으며 엄한 (형사) 처벌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게 마땅하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피고인 "잠을 자는 줄 알았다" 혐의 부인 

A씨 측은 “(B씨와는) 내연관계가 아니고 숙소에서는 일상적인 대화만 나눴다. 잠을 자는 줄 알았다”며 살해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확정적 예견 가능성이 없었더라도 미필적 살해의 고의를 인정하기 충분하다”며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 측은 “아쉬운 점이 있다”며 대법원에 상고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한편 2021년 6월 24일 1심 재판부(대전지법 제11형사부)는 “(B씨가) 집 안에서 구토한 뒤 의식을 잃고 코를 골았다는 A씨 진술로 미뤄 잠들었다고 생각하고 상태가 위중하다는 판단을 못 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구호조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점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구호 조처를 안 한 행위와) B씨 사망 간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검찰은 “사실오인과 법리 오해가 있다”며 곧바로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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