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팩플] '자율'규제 동상이몽 시작됐다…공정위 '플랫폼 규제' 쟁점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요기요 배달용 오토바이 [연합뉴스]

요기요 배달용 오토바이 [연합뉴스]

가맹 배달음식점에 ‘최저가 보장’을 요구한 배달 플랫폼은 공정거래법 위반일까?
플랫폼이 검색 알고리즘을 조정해 자사 상품 노출에 더 유리해졌다면?

네이버·카카오·배달의민족 등 인터넷 플랫폼 기업이 크면서 전에 없던 문제들도 생겨나고 있다. ‘소비자의 편익’과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 남용’ 사이에서 심판을 해야할 정부가 심사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정부는 "새로운 규제 신설이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플랫폼 업계는 "자율 규제라더니 규제 불확실성만 더 커졌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무슨일이야

유성욱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감시국장이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심사지침 제정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유성욱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감시국장이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심사지침 제정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공정거래위원회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행위에 대한 심사지침’을 제정해 지난 12일 공개했다. 초안인 행정예고 안이 나온 후 1년 만이다. 현재는 공정거래법 관련 안건에는 ‘시장 지배적 지위남용 행위 심사기준’을 참고하는데, 공정위는 이 기준이 플랫폼의 특성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봤다. 공정위는 “온라인 플랫폼 분야에 특화된 심사지침을 마련해 공정거래법 집행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무슨 내용이야

현행 공정거래법은 매출액 기준 1개 기업이 시장점유율 50% 이상, 3개 이하 기업이 시장점유율 75% 이상을 차지할 때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한다. 그러나 플랫폼 기업은 초기에 무료 서비스로 덩치를 빠르게 키우고 이 과정에서 적자 전략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 매출액만으로 시장지배력을 판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을 따지려면 새 기준이 필요하단 게  공정위 입장이다.

공정위의 새 심사지침에 따르면, 앞으로 플랫폼 기업은 매출액 이외에도 교차 네트워크 효과(시장에 진입장벽이 존재하는지 여부), 문지기(게이트키퍼)로서 영향력, 데이터 수집·보유·활용 능력, 새로운 서비스 출현 가능성 등으로 시장 지배력을 평가 받게 된다. 또 무료 플랫폼은 서비스 이용자 수, 이용 빈도 등을 활용해 시장 점유율을 산정한다. 무료여도 광고 및 개인정보 수집 등을 통해 플랫폼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경우 사업자와 이용자 간 ‘가치의 교환’, 즉 거래가 발생한다고 보기 때문.

심사지침은 경쟁을 제한할 우려가 있는 주요 행위 유형도 명시했다. 멀티호밍 제한(경쟁 온라인 플랫폼 이용을 직·간접적으로 방해하는 행위), 최혜 대우(타 유통채널대비 동등하거나 유리하게 적용하도록 요구하는 행위), 자사우대(자사 상품이나 서비스를 경쟁 사업자에 비해 유리하게 노출하는 것), 끼워팔기 등이다.

왜 중요해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부터 플랫폼 자율규제 기조를 강조했다. ‘온플법’(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추진하며 플랫폼 업계를 압박하던 전 정부와 차별화를 노리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 심사지침을 비롯해 현 정부가 추진한 플랫폼 정책들의 실질 효과는 온플법과 비슷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달 “디지털 신질서의 이정표로 삼겠다”며 발표한 ‘디지털 플랫폼 발전 방안’에도 ‘플랫폼의 책임’이 명시됐다. 법으로 직접 규제하지는 않을 테니, 자율을 원하면 책임도 지라는 요구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전 한국벤처창업학회장)는 “플랫폼 업계는 복장 자율화의 자율을 생각한 건데 정부는 야간자율학습의 자율을 생각한 것 같다”며 “복장 자율화가 되면 마음대로 옷을 입을 수 있지만, 야간자율학습은 말만 자율이지 자율이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쟁점은 뭐야?

①무료까지 제한? “과도해” VS “글로벌 흐름”
앞으로 네이버, 카카오 등 거대 플랫폼이 무료 제공 상품·서비스를 함께 이용하도록 강제한다면 사용자에게 금전적인 불이익이 없더라도 공정위의 제재 대상이 된다. 하지만 플랫폼 업계에선 무료 서비스까지 제재할 경우 플랫폼 성장이 저하될 뿐 아니라 소비자의 편익도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플랫폼 기업 관계자는 “실제로 어떤 행위가 심사지침 상 ‘끼워팔기’에 해당할지 가늠이 안 된다. 몸을 사리기 위해 무료 서비스 등을 축소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무료 서비스를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면 플랫폼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호영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은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 지위를 판단할 때 유상거래뿐 아니라 무료 서비스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건 일반적인 글로벌 흐름”이라며 “향후 지침을 적용해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균형감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플랫폼 기업의 시장 독점 행위 기준을 강화하는 심사지침이 12일 발표됐다. 사진 셔터스톡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플랫폼 기업의 시장 독점 행위 기준을 강화하는 심사지침이 12일 발표됐다. 사진 셔터스톡

② 이용자 많으면 무조건 독점?
특정 플랫폼에 소비자들이 몰려서 자연스럽게 독점 지위에 오른 경우는 어떨까. 예를 들어 유튜브에 질 좋은 콘텐트가 많이 올라와서 사용자들이 몰린다면, 이것도 독점으로 봐야 하는지도 심사지침만으로는 알기 어렵다. 공정위가 플랫폼의 특성으로 짚은 교차 네트워크 효과가 만들어지면 A(예를 들어 콘텐트 공급자)가 증가하면 B(시청자)도 증가하게 되고 다시 A도 증가하는 방식으로 순환된다. 전상오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온라인 플랫폼 규제의 올바른 방향성’ 토론회에서 “소비자 선택에 따른 독점과 부당한 방법을 통한 독점은 구별돼야 한다”며 “독점 사태 자체를 문제 삼아 인위적인 규제를 가하면 혁신이 저해되고 소비자 후생이 감소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③ 구제 기준은 공정한가
반면 경쟁제한 유형에 해당한다고 반드시 제재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만약 플랫폼이 주는 효율성 증대 효과가 경쟁 제한 효과보다 크면 제재받지 않을 수도 있다. 이 판단은 별도 위원회에서 9명의 위원이 심사한다. 그러나 심사 기준에 정량 지표는 없다. 9명의 판단으로 제재 여부가 판가름나는 것. “자의적 판단에 의해 시장 질서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유성욱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케이스에 따라서는 정량적인 지표가 발견되기 어려운 한계도 있지만, 두 사안의 이익을 비교해 더 큰 쪽으로 결정하는 비교 형량 원칙은 기존 공정거래법에서 다른 부분을 심사할 때도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플랫폼 업계는 뭐래

이번에 발표된 심사지침은 공정위 내부 참고 규정일 뿐이다. 그럼에도 업계는 “플랫폼 규제의 신호탄이 아니냐”며 긴장하는 분위기다. 익명을 원한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고 기존 서비스와 접목할 때 공정위 심사지침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서비스가 크기 전에 사업을 쪼개, 규제를 피하거나 글로벌 진출을 고려하는 회사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중소 플랫폼 업체들은 규제 대상이 아니”라고 하지만 스타트업도 고민이 많아졌다. 국내 스타트업의 다수가 플랫폼 서비스를 하는 데다, 성장하면 언젠가 마주해야할 규제이기 때문. 한 플랫폼 스타트업 관계자는 “스타트업은 매출이 일부 발생하긴 하지만 대부분 투자금으로 성장하는데, 이런 규제 환경은 투자 유치에 긍정적인 신호는 아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관계자는 “빠르게 성장하는 플랫폼 스타트업은 곧 심사지침의 적용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며 “규제 때문에 성장하기를 두려워하는 ‘피터팬 증후군’이 생길까 우려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