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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지속가능성의 지속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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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

지속가능성은 지속가능한가 하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앞의 지속가능은 인류 발전이 미래 세대에까지 이어지도록 환경·사회·경제적 균형을 고려하는 UN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이하 SDGs)를 뜻하는 고유명사이고, 뒤의 지속가능은 보편적 표현으로 계속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가를 의미하기에 구별해서 이해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율을 맞춘 이 질문은 지속가능성의 암울한 현 좌표를 예리하게 지적한다.

특히 올해는 UN이 2015년에서 2030년까지 15년 동안 진행하는 SDGs가 시작된 지 절반에 이른 시점이다. 현재까지 7년 반의 성과와 현황을 냉철하게 살펴보고, 앞으로의 7년 반을 지혜롭게 계획하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국제적 맥락으로 인해 성공적 달성이 불투명해지는 지금 SDGs에 대한 큰 관심이 필요하다.

2030의제 UN 지속가능발전목표
전쟁·팬데믹 인해 낙관 힘들어져
구해야할 건 지구 아닌 우리 자신
미래 아닌 오늘 위한 절실한 문제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대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의 시초는 독일의 산림 및 광업 전문가인 한스 카를 폰 칼로비츠의 1713년 저서 『산림경제학』에서 제시된 ‘Nachhaltigkeit’(지속가능성이란 뜻의 독일어)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주된 연료였던 목재가 광산 제련소에서 과도하게 사용되는 등 주위 산림자원이 눈앞의 이익을 위해 파헤쳐진 결과 광산산업 자체가 위기에 빠졌다. 이 과정을 분석한 그는 지속가능성의 개념을 찾아내고, 해결책으로 나무 연료 절약 기술의 활용, 나무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에너지의 사용, 산림의 계획적인 관리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그의 주장은 환경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측면을 함께 고려했다는 점에서 현재의 SDGs와 닿아있다.

이에 앞서 17세기 영국의 정치인 존 에블린이 『숲』(1664년)에서 선박 건조나 땔감으로 과도하게 쓰느라 산림을 파괴하는 문제에 대해 인간 탐욕을 꼬집었다. 그는 자연 자원을 신중하게 관리하고 보존해 미래 세대가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에서도 재정관리자 콜베르는 적극적으로 산림 보존과 관리 정책을 개혁했다. 이러한 맥락이 한스 카를 폰 칼로비츠의 지속가능성 개념 정립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러한 지혜와 성찰은 우리 선조들이 작은 물고기를 잡았을 때 방생하고 절제의 윤리 가치를 실천했던 생태계 존중 문화와도 맥이 통한다. 끝없는 성장을 추구한 바벨탑의 종말에 대한 성서의 상징에서 보듯 인간 탐욕에 대한 경고적 교훈은 인류 공통으로 발견된다.

한편 인간 욕망의 비만함이 가속화된 현대에선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1972)가 발간되어 과잉인구, 환경오염, 식량 부족, 자원 고갈이 계속된다면 100년 후 성장의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 경고하며 큰 충격을 던졌다. 이 책이 지속가능성 담론에 대해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참고로 발간 30년 후 나온 개정판에서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성숙한 연대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낙관적 방향이 포함되기도 했다.)

국제정책적 측면에서는 1972년 UN 인간환경회의에서 환경위기에 대한 문제 제기가 시작되고, 1987년 세계환경발전위원회에서 그 유명한 『우리 공동의 미래』 보고서가 발표되어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이라는 지속가능성의 정의가 제시되었다. 그 후 여러 국제적 논의의 장이 이어졌으며, 21세기에 들어와 주로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2015년까지 진행된 새천년개발목표(MDGs),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SDGs로 이어지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바다. 그러나 희망적으로 출범했던 SDGs는 위기의 상황 속에 현재 달성 여부가 불투명하다. 냉철한 평가와 방법론의 재정립, 그리고 새로운 의지와 공감대의 환기가 필요하다.

UN SDGs를 주도한 반기문 당시 UN 사무총장의 “행성 B(planet B)가 없기 때문에 플랜 B(plan B)란 없다”는 유명한 말처럼 우리에게는 지구 외에 다른 행성이 없기에 이 지구 위에서 인류가 살아가는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혹자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이미 충분히 이뤄진 듯 식상하게 말하기도 하나 인류의 존재 가능성과 생존 가능성이 걸려있는 심각한 주제를 몇 번의 논의와 지적 유행으로 넘길 수는 없다.

‘지구를 구하자’는 구호처럼 인간의 잘못된 현실 파악을 드러내는 말이 어디 있으랴. 지구는 잘 있을 것이다. 지구는 인간의 자기파괴적 발전과 상관없이 묵묵히 자전과 공전을 하며 존재할 것이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지구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다.

‘미래를 위한다’는 말 역시 마찬가지다. 먼 미래 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바로 현재의 문제다. 매 순간 불확실한 미래로 발을 딛으며 과거엔 경험치 못했던 기후위기와 사회·경제·환경적 재난을 체험하고 있는 우리에게 지속가능성에 대한 성찰과 행동은 필수다. 지속가능성은 지속가능해야만 한다. 다른 대안은 없다.

송인한 연세대 교수 사회복지학·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