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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대기는 기본, 은행 가려고 휴가 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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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2일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 앞에서 진보당 관계자들이 ‘대출금리 인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이자 장사로 성과급 파티를 벌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 앞에서 진보당 관계자들이 ‘대출금리 인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이자 장사로 성과급 파티를 벌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서구에서 직장을 다니는 김미진(26)씨는 최근 계좌의 출금 한도를 풀기 위해 한 은행 영업점에 갔다가 되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비교적 간단한 업무라고 생각했는데, 대기 손님이 많아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안내를 듣고서다. 회사에 돌아가 봐야 하는 김씨는 초조해졌다. 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주변 동네의 다른 지점을 찾았다.

그는 “두 번째로 간 곳에서도 40분을 기다렸다”며 “은행 갈 시간도 없는데, 영업시간이 짧아 작은 업무를 볼 때마다 ‘투어’하듯 지점을 돌아다녀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이자 장사’로 역대 최대 수준의 수익을 올렸는데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은행권의 서비스에 대해 금융 소비자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당장 치솟은 대출금리로 서민의 허리가 휘는 것은 물론이고, 간단한 은행 일조차 보기 어려워졌다는 비판이다. 대출 상담을 받는 것부터 환전하거나 일회용 비밀번호(OTP) 생성기를 재발급하는 등의 단순한 은행 볼일까지 직장인에겐 ‘날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매일 기다리던 고객 절반이 돌아간다”

소비자는 짧아진 영업시간을 가장 와 닿은 불편으로 꼽는다. 은행권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2021년 7월부터 은행 영업시간을 오전 9시~오후 4시에서 앞뒤로 30분씩 총 1시간을 줄여 오전 9시30분~오후 3시30분으로 줄였다. 직장인 윤홍식(31)씨는 “대출 때문에 은행을 가려면 연차나 반차 휴가를 내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시간을 줄여 놓고 업무를 충분히 못 보는 고객에 대한 대안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상암동의 은행 직원 A씨는 12일 “마감 뒤에 찾아오는 ‘지각 고객’이 매일 있다”며 “오늘도 줄이 길어 기다리던 고객 절반이 돌아간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은행도 이런 소비자 불만을 의식하고 있다. 12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과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관련 협의를 위한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의견을 교환했지만 여전한 입장 차를 보였다. 금융노조는 “실내 마스크 의무가 해제되면 영업시간 복구에 대해 재논의한다”는 입장이다.

은행권의 움직임이 더딘 데는 과거와 달라진 고객의 은행 이용 행태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점을 직접 방문하는 고객은 줄고, 대신 모바일·디지털로 각종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난달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MZ세대 중 최근 3개월 동안 지점을 직접 찾은 비중은 42.4%에 불과했다. 상암동에서 만난 40대 은행 고객 공모씨는 “은행 점포에는 대다수가 어르신 고객인데 번호표를 뽑고도 너무 오래 기다리다 포기하고 나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부 은행에선 점심시간에 문을 닫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KB국민은행은 오는 30일부터 일부 소형 출장소에서 점심시간 영업을 중단할 예정이다.

당정 ‘영업시간 복원하라’ 은행권 압박

대출금리는 올리고 예금 금리는 내리며 ‘이자 장사’로 번 돈을 서비스 개선보다 성과급과 퇴직금으로 쓴다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은 지난해 경영 실적의 성과로 기본급의 최고 400%에 이르는 성과급을 책정했고, 희망퇴직 때 최대 5억원 수준의 퇴직금을 주는 은행도 있다.

여당과 정부는 은행권 압박에 나섰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예금·대출의 이자 차이가 커서 서민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금융당국에 철저한 감독을 주문했다. 정우택 국회부의장은 은행의 예대 금리 차로 인한 수익을 공시·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의 은행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미애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은행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영업시간을 1시간 단축한 것도 모자라 점심시간에도 문을 닫겠다고 한다”며 은행의 행태를 비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최근 잇따라 은행 영업시간 복원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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