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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 18억 아파트가 12억…직거래 급증에 집값 떨어질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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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주부 안모(47)씨는 최근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DMC래미안e편한세상’ 실거래가를 보고 깜짝 놀랐다. 84㎡(이하 전용면적) 아파트가 두 달 전보다 4억원 가까이 낮은 6억9000만원에 팔려서다. 지난 2021년 9월 14억원에 거래됐던 아파트다. 부동산 중개업소에 전화해보니 “가족 간 증여성 직거래로 확인됐다”는 답을 들었다. 안씨는 “집값이 급락한 줄 알고 그 가격에 집을 살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실제론 그 가격에 살 수 없었다”고 말했다. A중개업소 관계자는 “직거래 탓에 ‘6억~7억원대 물건이 있느냐’는 문의가 빗발쳤고, 급매물 가격도 9억원대 초반까지 내려왔다”고 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아파트 직거래가 급증세다. 서울 아파트 매매에서 공인중개사의 중개를 거치지 않은 직거래가 3건 중 1건꼴로 나타났다. 시세보다 수억 원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사례가 많다 보니 가뜩이나 가파른 집값 하락세를 부채질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전국 아파트 매매 직거래 건수는 4445건으로 전체 거래의 23.2%를 차지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21년 이후 월간 비율로는 가장 높다. 특히 서울 아파트의 직거래 비율은 31.5%에 달했다. 1년 전(12.1%)의 세 배 가까운 수준이다.

직거래는 매도자와 매수자가 직접 집을 사고파는 거래 방식이다. 유형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중개수수료를 아끼려는 수요다. 원룸 거래에서 많이 나타나지만, 최근 아파트로 확산하는 추세다. 다른 하나는 절세 목적이다. 거액의 세금을 피하기 위해 가족·지인에게 집을 넘기는 식이다. 요즘 같은 침체기가 집값을 싸게 양도할 수 있는 최적기로 꼽힌다.

서울 양천구 신정동 목동신시가지14단지 108㎡는 지난해 12월 12억3000만원에 직거래 됐다. 같은 해 10월에 계약된 직전 거래가(16억원)나 현재 매도 호가(18억원)보다 훨씬 싸다. 동대문구 답십리동 힐스테이트청계 84㎡도 직전 거래가(11억원)보다 3억원 이상 낮은 7억7000만원에 직거래로 팔렸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업계는 직거래가 시장에 혼선을 주고 있다고 본다. 거래량이 적은 상황에서 시세보다 수억 원씩 낮게 거래되는 한두 건이 시세를 낮추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부동산컨설팅업체 관계자는 “매도 호가와 매수 호가 간의 차이를 크게 벌려 거래를 더 어렵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집값 통계가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아파트 매매가격지수와 실거래가지수에 직거래도 반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동산원은 “시세 대비 턱없이 낮은 직거래는 걸러서 집계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직거래 케이스를 기획조사 중이다. 증여성 직거래가 불법은 아니지만, 시세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에 거래하면서 세금을 탈루하는 불법 행위도 의심되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거래가격이 시가보다 3억원(또는 시가의 30%) 이상 싸면 증여세를 물린다. 시가 10억원짜리 집을 6억원에 거래하면 4억원에 증여세가 부과되는 식이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다주택자가 가족 간 직거래에 나설 땐 ‘30%’와 ‘3억원’ 규정에 걸리지 않으면서 최대한 싸게 팔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성호 국토부 부동산소비자보호기획단장은 “직거래 일부에 편법증여가 의심된다”며 “이달 말까지 1차 조사를 한 뒤 다음 달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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