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친이명박계)에 붙었다가 잔박(잔류한 친박계)에 붙었다가, 이제는 친윤(친윤석열계)에 붙으려고 하는 것을 보니 참 딱하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9일 미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 항공편을 타기 직전 이런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실명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나경원 전 의원을 겨냥한 메시지였다. 그는 “보수의 품격을 운운하며 터무니없는 비난을 늘어놓을 때 참 어이가 없었는데, 요즘 하는 것을 보니 품격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며 “그냥 조용히 침잠(沈潛)의 시간을 가지는 게 좋지 않겠나”라고도 썼다. 2017년 11월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 경선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보수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며 자신을 직격한 나 전 의원의 말을 되돌려준 셈이다.
홍 시장은 사흘 전인 지난 6일 밤에도 헝가리식 저출산 정책을 꺼냈다가 대통령실로부터 직접적인 비판을 받은 나 전 의원을 향해 “과거처럼 기회를 엿보면서 설치면 대통령실도 손절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고 맹공했다.
3·8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가까워질수록 홍 시장은 이처럼 장외 스피커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나 전 의원뿐 아니라 유승민 전 의원과 황교안 전 대표, 윤상현 의원 등 당권 주자를 틈날 때마다 평가절하했고, 최근 들어서는 친윤계 주류뿐 아니라 대통령실에서도 거리를 두고 있는 나 전 의원을 집중 타격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등 다른 여권 주요 인사가 당권 싸움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는 것과 달리 홍 시장이 적극적으로 참전하는 모습을 보이자 정치권에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게 이른바 ‘김장 연대’를 형성하고 있는 김기현·장제원 의원과 홍 시장의 인연이다. 홍 시장은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대표이던 2011년에 김 의원을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자유한국당 대표이던 2017~2018년에는 장 의원을 수석대변인으로 역할하게 했다. 두 사람 모두 소위 ‘홍준표의 입’ 역할을 한 셈이다. 여권에선 특히 홍 시장과 장 의원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한때 홍 시장의 최측근이던 장 의원은 대선 경선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럼에도 당내에선 “두 사람의 관계는 여전히 나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 의원이 ‘브러더’ 사이로 불리던 권성동 의원과 냉랭해지면서까지 김장 연대를 내세워 정치적 승부수를 띄우고 있는 만큼 홍 시장이 외곽에서 소셜미디어 메시지를 통해 간접 지원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당내에선 “홍 시장이 적극 목소리를 내는 건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내 세력이 미약한 그가 당내 주류인 친윤계와 한 배를 타면서 당내 입지를 다지려는 생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홍 시장은 2021년에 치러진 20대 대선 국민의힘 경선에서 국민 여론조사(비중 50%)에서는 48.21%로 1위를 기록했지만, 당원 투표(비중 50%)에서는 34.80%로 2위로 뒤처지며 당원 조사에서 57.77%를 얻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밀렸다. 민심에서 이기고도 당심에서 대패한 것이다. 그런 뼈저린 경험이 있는 홍 시장인 만큼 당내 주류를 측면 지원해 당내 기반을 닦으려 김장 연대를 측면 지원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대선 때까지만 해도 윤 대통령과 껄끄러운 관계로 알려졌던 홍 시장은 최근엔 “대선 때보다 윤 대통령과 가까워졌다”는 말이 나온다. 두 사람은 지난해 10월 하순 서울에서 따로 만나 만찬을 함께하며 대화를 나눈 일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서로 보기 싫은 사람이면 대구에 있는 사람을 서울로 불러서 저녁을 같이 먹었겠느냐”고 했다.
여권 내 차기 경쟁 구도를 보더라도 홍 시장 입장에선 김 의원을 미는 게 전략적으로 좋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안철수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은 이미 대선 출마 경험이 있고, 나 전 의원이 이번에 당권을 잡으면 정치적 체급이 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홍 시장이 좌충우돌하는 스타일이지만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선 우호적인 메시지를 아끼지 않는다”며 “최고 권력자인 윤 대통령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고 다른 대선주자들은 견제하면서 차기를 노리려는 셈법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