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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뒤 尹과 가까워졌다"…요즘 나경원 때리는 홍준표 속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달 19일 오후 대구시청 산격청사에서 열린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평일전환 추진 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달 19일 오후 대구시청 산격청사에서 열린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평일전환 추진 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친이(친이명박계)에 붙었다가 잔박(잔류한 친박계)에 붙었다가, 이제는 친윤(친윤석열계)에 붙으려고 하는 것을 보니 참 딱하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9일 미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 항공편을 타기 직전 이런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실명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나경원 전 의원을 겨냥한 메시지였다. 그는 “보수의 품격을 운운하며 터무니없는 비난을 늘어놓을 때 참 어이가 없었는데, 요즘 하는 것을 보니 품격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며 “그냥 조용히 침잠(沈潛)의 시간을 가지는 게 좋지 않겠나”라고도 썼다. 2017년 11월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 경선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보수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며 자신을 직격한 나 전 의원의 말을 되돌려준 셈이다.

2020년 2월 홍준표 전 경남지사(오른쪽)와 김기현 전 울산시장이 경남 양산시 통도사를 방문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2월 홍준표 전 경남지사(오른쪽)와 김기현 전 울산시장이 경남 양산시 통도사를 방문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 시장은 사흘 전인 지난 6일 밤에도 헝가리식 저출산 정책을 꺼냈다가 대통령실로부터 직접적인 비판을 받은 나 전 의원을 향해 “과거처럼 기회를 엿보면서 설치면 대통령실도 손절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고 맹공했다.

3·8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가까워질수록 홍 시장은 이처럼 장외 스피커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나 전 의원뿐 아니라 유승민 전 의원과 황교안 전 대표, 윤상현 의원 등 당권 주자를 틈날 때마다 평가절하했고, 최근 들어서는 친윤계 주류뿐 아니라 대통령실에서도 거리를 두고 있는 나 전 의원을 집중 타격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등 다른 여권 주요 인사가 당권 싸움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는 것과 달리 홍 시장이 적극적으로 참전하는 모습을 보이자 정치권에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게 이른바 ‘김장 연대’를 형성하고 있는 김기현·장제원 의원과 홍 시장의 인연이다. 홍 시장은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대표이던 2011년에 김 의원을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자유한국당 대표이던 2017~2018년에는 장 의원을 수석대변인으로 역할하게 했다. 두 사람 모두 소위 ‘홍준표의 입’ 역할을 한 셈이다. 여권에선 특히 홍 시장과 장 의원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한때 홍 시장의 최측근이던 장 의원은 대선 경선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럼에도 당내에선 “두 사람의 관계는 여전히 나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 의원이 ‘브러더’ 사이로 불리던 권성동 의원과 냉랭해지면서까지 김장 연대를 내세워 정치적 승부수를 띄우고 있는 만큼 홍 시장이 외곽에서 소셜미디어 메시지를 통해 간접 지원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2018년 5월 당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신원 미상의 한 남성에게 폭행당해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이송되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병문안을 가고 있다. 왼쪽은 장제원 수석대변인. 연합뉴스

2018년 5월 당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신원 미상의 한 남성에게 폭행당해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이송되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병문안을 가고 있다. 왼쪽은 장제원 수석대변인. 연합뉴스

당내에선 “홍 시장이 적극 목소리를 내는 건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내 세력이 미약한 그가 당내 주류인 친윤계와 한 배를 타면서 당내 입지를 다지려는 생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홍 시장은 2021년에 치러진 20대 대선 국민의힘 경선에서 국민 여론조사(비중 50%)에서는 48.21%로 1위를 기록했지만, 당원 투표(비중 50%)에서는 34.80%로 2위로 뒤처지며 당원 조사에서 57.77%를 얻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밀렸다. 민심에서 이기고도 당심에서 대패한 것이다. 그런 뼈저린 경험이 있는 홍 시장인 만큼 당내 주류를 측면 지원해 당내 기반을 닦으려 김장 연대를 측면 지원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대선 때까지만 해도 윤 대통령과 껄끄러운 관계로 알려졌던 홍 시장은 최근엔 “대선 때보다 윤 대통령과 가까워졌다”는 말이 나온다. 두 사람은 지난해 10월 하순 서울에서 따로 만나 만찬을 함께하며 대화를 나눈 일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서로 보기 싫은 사람이면 대구에 있는 사람을 서울로 불러서 저녁을 같이 먹었겠느냐”고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3'에서 글로벌 기업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라스베이거스=고석현 기자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3'에서 글로벌 기업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라스베이거스=고석현 기자

여권 내 차기 경쟁 구도를 보더라도 홍 시장 입장에선 김 의원을 미는 게 전략적으로 좋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안철수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은 이미 대선 출마 경험이 있고, 나 전 의원이 이번에 당권을 잡으면 정치적 체급이 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홍 시장이 좌충우돌하는 스타일이지만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선 우호적인 메시지를 아끼지 않는다”며 “최고 권력자인 윤 대통령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고 다른 대선주자들은 견제하면서 차기를 노리려는 셈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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