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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수정 교수 찾아가 만들었다…'변호사 위협대응' 매뉴얼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6월 발생한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 합동분향소. 뉴스1

지난해 6월 발생한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 합동분향소. 뉴스1

변호사 A씨는 2015년 당황스런 일을 겪었다. 재판을 끝낸 뒤 법정을 나서는데 소송 상대방 쪽 할머니가 말을 걸며 따라오더니 갑자기 A씨의 팔뚝을 가격했다. A씨는 “굳이 신고할 정도의 폭행은 아니었지만, 할머니가 더 위험한 공격을 했다면 어쩔뻔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A씨가 겪은 ‘사소한 공격’부터 지난해 6월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까지, 분쟁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은 늘 화와 공격에 노출돼 있다. “인간쓰레기로 분류해 소각처리해야 한다” “사람을 시켜서 죽이려고 중국인을 알아보고 다녔다” “소송결과에 따라 자살하겠다, 죽으면 변호사 탓이다”. 지난해 대한변호사협회 조사에 따르면 모두 변호사들이 실제로 들은 말이다. 엽총이나 식칼을 들고 사무실에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수정 교수 “처벌법 만들고, 실무교육 필요”

대한변협은 지난해 6월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을 계기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팀에 의뢰한 ‘중소법률사무소 안전관리 연구보고서’를 최근 공개했다. 그동안 변호사가 겪는 위협과 안전 문제는 각자 알아서 대응해야 했다.

보고서는 우선 각 지역 변협 차원의 안전 확보 및 맞춤형 호신용품·경비 서비스 등으로 물리적 위협에 대한 대응책을 갖춰야한다고 강조했다. 응급의료기관에서 의사를 폭행하는 경우 처벌이 가능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을 예로 들며 변호사 등 법조인에 대해서도 안전을 위한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다양한 의뢰인을 직접 만나는 변호사 특성상, 위험 의뢰인을 인지하고 안전하게 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다. 현재 변호사 시험에서 객관식으로만 출제되는 법조윤리시험도 양쪽이 충돌하는 ‘딜레마 상황’에 대한 서술형 시험 등으로 실무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있다.

“공격 예상되면 스프레이보다 빠른 탈출이 실용적”

지난해 6월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사건 참사 현장. 연합뉴스

지난해 6월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사건 참사 현장. 연합뉴스

이수정 교수가 주로 사회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면, 현실적으로 각 변호사 사무실에서 당장 실행 가능한 매뉴얼도 나왔다. 신나영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집필한 ‘대한변협 회원에 대한 폭언협박 등 유형별 예방 및 대응 매뉴얼’이다. 조사 결과 변호사들이 선호하는 대비책은 호신용 스프레이였다.

하지만 신 교수는 “호신용 스프레이, 무도 등 자기방어 기술이 훈련돼 있다면 물론 최선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며 “소송 관련자들의 공격성을 줄이고, 빨리 탈출할 수 있게 준비를 해놓는 게 가장 실용적인 대응법”이라고 설명했다.

“직원들과 위험대응 ‘암호’ 만들어라”

매뉴얼은 또 폭력행위 이전에 가해자들이 보이는 ‘전조 증상’을 나열해 현업에서 참조할 수 있도록 했다. 대개 가해자들은 공격 전 피해 변호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거나, 공격할 변호사의 활동에 대해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등의 특징을 보인다고 한다. 공격을 예고하는 경우도 많다.

‘소셜미디어(SNS)에 개인정보 노출을 최소화 하고, 컴퓨터 화면과 가족 사진을 의뢰인이 볼 수 없는 곳에 둔다’ ‘사무실 직원들과 위험 대응 암호를 만들어 둔다’ ‘자동차 키를 가방이 아닌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등의 대비책도 포함됐다.

지난해 변협 조사에 따르면 일과 관련해 언어적·물리적 폭력을 경험한 변호사는 응답자의 48%에 달했다. 하지만 신고 등 적극적으로 대응한 경우는 이 중 13%에 불과했다. 변협 한영화 제2 정책이사는 “지난 6월 사건 이후 경호업체와 제휴를 맺었고, 변호사 폭행 가중처벌안을 담은 법 개정안도 국회에 발의 돼 통과를 위해 노력 중”이라며 “변호사에 대한 폭력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이번 보고서에서 제시한 방안들은 장기적으로 논의할 대책의 초안 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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