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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무덤 같아” 사망자 100명중 1명 ‘나홀로’ 숨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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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호 08면

늘어나는 고독사 비극

지난해 6월 서울 종로구 쪽방촌에서 한 주민이 더위를 피해 골목길에 나와 있다. 취약계층과 고령자 등이 모여 사는 쪽방촌은 고독사 위험군이 많은 지역으로 꼽힌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쪽방촌과 고시원에 사는 중장년 1인 가구 중 60%가 고독사 위험군으로 조사됐다. [뉴시스]

지난해 6월 서울 종로구 쪽방촌에서 한 주민이 더위를 피해 골목길에 나와 있다. 취약계층과 고령자 등이 모여 사는 쪽방촌은 고독사 위험군이 많은 지역으로 꼽힌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쪽방촌과 고시원에 사는 중장년 1인 가구 중 60%가 고독사 위험군으로 조사됐다. [뉴시스]

“이곳 분위기는 마치 무덤 같아요. 아파트에서 흔한 층간소음도,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도 없으니까요. 주민들 대다수가 혼자 살지만, 옆집에 누가 사는진 관심도 없어요. 다들 죽는 날만을 기다리는 느낌입니다.”

서울 강서구에 있는 임대아파트단지에 거주하는 장모(76)씨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를 ‘무덤’이라고 묘사했다. 노령인구가 모여 사는 이곳 임대아파트는 60대 이상 1인 가구 비율이 높은 곳 중 하나다. 장씨는 “1~2달에 한 번씩은 혼자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며 “나 역시도 그런 날만을 기다리면서 사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곳에서 5년간 경비 일을 해왔다는 70대 경비원은 “옆집에서 악취가 난다는 민원에 가족들을 수소문해서 문을 열어보면 사람이 죽어있는 일을 수도 없이 지켜봤다”며 “주민들 간 교류도 없고, 가족들도 잘 오가지 않으니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걸 보면 같은 또래로서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중장년 남성, 고독사 예방 서비스 시급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죽어가는 사람들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14일 처음으로 고독사 공식 통계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고독사한 사망자는 3378명으로, 5년 전인 2017년에 비해 40% 증가했다. 이 숫자는 국내 전체 사망자(31만7680명)의 1%로, 사망자 100명 중 1명은 아무도 모르게 혼자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대별로는 50·60세대가 전체 고독사의 58.6%를 차지했고, 여성보다 남성 숫자가 4배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50·60대 남성은 건강관리와 가사노동에 익숙지 못하며, 실직·이혼 등으로 삶의 만족도가 급격히 감소한다는 특징이 있다”며 중장년 남성에 대한 고독사 예방 서비스 필요성을 강조했다. 황호진 신림종합사회복지관 마을사랑2팀장은 “중장년층 남성들은 이혼, 실직 등을 겪으며 실패자로 낙인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본인의 문제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에 굉장한 거부감을 느낀다”며 “타인과의 교류도 꺼리고, 이웃과의 소통도 피하다 보니 상태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진 다음에야 포착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들의 외로운 죽음을 막기 위해 안부를 묻는 사람들의 수는 매년 제자리라는 점이다. 복지부는 지난해 11월 생활고로 극단적 선택을 한 ‘수원 세 모녀 사건’과 같은 비극의 되풀이를 막겠다며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체계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위기 가구 파악을 위해 수집하는 정보를 올 하반기 44종까지 늘리고, 위기 의심 가구가 있을 경우 문을 강제로 열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지자체 복지인력 충원에 대해선 “실태조사를 통해 합리적인 운용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언급에 그쳤다. 최정은 한국사회보장정보원 부연구위원은 “사회적 고립 여부를 확인하는 변수는 다각화되고 있지만 이를 관리, 전담하는 인력의 숫자는 그대로라 업무 부담이 막중하다”며 “복지 사각지대 대상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인력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정책만 확대하는 것은 실효성이 적다”고 말했다.

각 지자체는 고독사를 막기 위해 사각지대에 처한 위기 가구를 관리하는 복지센터 등을 신설하고 있지만,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인원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줄었다. 지난해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서울시 25개 자치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취약계층의 긴급상담 및 지원을 위한 복지상담센터가 신설된 이후 인력이 늘어난 자치구는 10곳에 불과했다. 15개 구는 기존 인력이 추가 업무를 떠맡아 처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3배가량 늘어난 복지 사각지대 대상자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것도 모두 이들의 몫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읍면동 찾아가는 보건복지팀 공무원 1인당 위기 가구 조사 건수는 2018년 45.2건에서 2021년 113.4명으로 늘어났다. 용혜인 의원은 “인력은 확충도 않고 위기 가구 발굴 계획만 장황하게 발표하는 탁상행정은 고독사가 끊이지 않는 원인 중 하나”라며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복지 빈틈을 채울 인력 충원과 더불어 위기 가구의 비극을 예방할 소득보장 정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지자체들은 대안으로 노인 공공일자리나 공무직 직원을 활용해 위기 가구 관리에 나선다. 서울특별시와 산하 자치구에서 고독사 예방을 위해 가장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우리동네 돌봄단’의 경우 중장년층의 보람일자리사업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이 사업 또한 직접 위기 가구를 찾아가 점검하기보다는 전화 모니터링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황 팀장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분들은 생활반경 자체가 좁기 때문에 일일이 찾아가 도움을 드려야 하는데, 인력 문제 때문에 어려움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며 “주민, 민간단체와 힘을 합쳐도 실무자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정책상 동 공무원이 위기 가구 모니터링을 전담하고 있는데,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민간의 도움을 받고 있다”며 “인력 증원 요청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으나 타 사업과의 형평성을 위해 무작정 인력을 늘릴 순 없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사회적 고립을 겪는 사람들과 가까스로 연결된다고 해도 이들을 집 밖으로 꺼내는 일은 더욱 어렵다. 고독사 예방 사업 대부분이 위기 가구를 ‘발굴’하는 것에만 집중해 교류를 이어나가거나, 사회적 재기를 돕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서울 강서구에 있는 사회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이모씨는 “주민센터 복지플래너나 사회전담공무원들이 1명당 200~300명의 위기 가구를 모니터링하는 상황에선 직접 찾아가기는커녕 전화로 안부 확인하기도 어렵다”며 “사회적 교류가 끊긴 분들과는 3~6개월 이상 라포(친밀감)를 형성해야 하는데 단순히 생사만 확인하는 관리 정책은 대상자들도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영국·일본은 부처 신설해 적극 대처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세가 계속되는 상황에선 고독사 위험군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인력을 투입해 이들을 면밀하게 관리할 수 없다면 결국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안부를 묻고, 꾸준히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독사 위험 가구를 발굴해 안부를 확인하는 정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며 “영국, 일본처럼 부처를 신설해 국민의 외로움과 고독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이들이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윤영 전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고독사 위험 가구를 발굴해도 이들을 지원할 공적, 민간 지원이 미미한 상황”이라며 “지역별로 편차가 큰 지원서비스를 보완해야 한다”고 전했다.

65세 이상 고령자에만 집중됐던 고독사 예방 정책의 패러다임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지난해 서울복지재단 연구에 따르면 국내 고독사 위험군 발굴 사업은 노인, 장애인 등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정작 고독사 비중이 가장 높은 5060 중장년층 남성은 정책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 교수는 “위험군 비중을 고려해 정책 대상과 방향을 다시 설정하고, 이들이 다시 사회로 나올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우리 할머니 생각에…” 우유안부 후원에 2만명 몰려

배달원이 어르신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우유 개수를 세고 있다. [사진 매일유업]

배달원이 어르신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우유 개수를 세고 있다. [사진 매일유업]

“외할머니가 시골에 혼자 계신데, 가족 모두가 걱정이 많거든요. 우리 가족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혼자 사는 어르신들의 건강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어요. 혼자 지내는 할머니께 죄송한 마음을 우유안부 후원으로나마 조금 덜게 됐습니다.” (전수빈(29)씨, 울산광역시)

신촌 모녀, 탈북민 등 고독사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외로운 죽음’을 막자는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단법인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이하 우유안부)의 후원사인 매일유업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두 달간 진행한 정기후원 독려 이벤트를 통해 2만명의 후원자가 새롭게 정기후원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매일 새벽 우유를 배달해 독거노인의 안부를 확인하는 우유안부 캠페인은 혼자 사는 어르신의 집에 전날 배달한 우유가 남아 있을 경우 해당 지역의 관공서나 가족을 통해 안부를 확인한다. 문 앞에 남겨진 우유가 없다면 ‘양호’, 1개 있다면 ‘주의’, 2개 있다면 ‘위험’ 등으로 신호를 정해 배달원들이 직접 우유 적체 여부를 파악한다. 2003년 서울 성동구 옥수동에서 독거노인 100가구를 대상으로 시작된 이 캠페인은 2016년부터 매일유업의 가정배달 시스템을 활용해 1월 현재 서울 전역 3600가구의 안부를 묻고 있다.

지난달 정기후원을 시작한 1인 가구 김홍빈(25)씨는 “혼자 지내다 보면 아파도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어 서러울 때가 많았다”며 “적은 금액으로 독거노인 영양보충도 돕고, 고독사도 예방할 수 있어 흔쾌히 후원에 나섰다”고 전했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정기후원자가 늘면서 독거노인들에게 더 많은 온기를 전할 수 있게 됐다”며 “고독사 예방을 위해 앞으로도 지속해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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