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대선거구' 지방선거 보니…與는 수도권 절반, 野는 영남 약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지역 특성에 따라 2~4명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며 꺼낸 선거제 개편 이슈가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여야 모두 선거제 개편의 필요성엔 공감했지만, 세부 방안을 놓고선 여야는 물론 각 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운데)와 정개특위위원인 정희용(왼쪽), 장동혁 의원(오른쪽)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원내대표-정개특위위원 선거구제 개편 관련 비공개 긴급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운데)와 정개특위위원인 정희용(왼쪽), 장동혁 의원(오른쪽)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원내대표-정개특위위원 선거구제 개편 관련 비공개 긴급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4일 여당 소속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들과 긴급회의를 갖고 “일반적으로 중대선거구제가 득표에 따른 의석을 보장하는만큼 양당 정치 폐단을 줄이고 다당제를 지향하는 쪽으로 얘기했다”며 “가급적 중대선거구제로 가는 쪽으로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다당(多黨), 제3의 선택이 가능한 정치시스템이 바람직하다는 말씀을 드린 바 있다”면서도 “그 방식이 중대선거구제여야 한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저는 비례대표제를 강화하는 게 맞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렸다. 이재명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렸다. 이재명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다만 두 사람 모두 구체적인 안에 대해선 “관련 전문가 의견들을 더 듣고 다시 의견을 정리하기로 했다”(주호영)거나 “당내 의견을 수렴 중인 과정이라 개인적인 의견이라도 쉽게 말씀드리는 건 적절치 않다”(이재명)며 말을 아꼈다. 선거제 개편은 개별 국회의원들의 내년 총선 당락과 직결된 문제여서 의견을 통일하기가 매우 어려운 사안이다.

그런 가운데 국회입법조사처가 선거제 개편에 참고할 수 있는 자료를 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달 30일 펴낸 ‘제8회 동시지방선거 중대선거구제 시범실시의 효과와 한계(이정진 입법조사관)’라는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지난해 치러진 6·1 지방선거 당시 30개 기초의원 선거구에 대해 시범 실시한 3~5인 중대선거구제의 결과를 분석했다. 국회의원이 아닌 기초의원 선거 결과를 분석했지만, 향후 총선에서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될 경우 지역별 표심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다.

제8회 동시지방선거 중대선거구제 시범실시의 효과와 한계(이정진 입법조사관) 보고서. 국회입법조사처

제8회 동시지방선거 중대선거구제 시범실시의 효과와 한계(이정진 입법조사관) 보고서. 국회입법조사처

수도권 18곳(서울 8·경기 6·인천 4), 대구 2곳, 광주 3곳, 충남 7곳 등 3~5인 시범선거구에서 나온 총 109명의 기초의원 당선자 가운데 소수 정당 출신은 4명에 불과(당선율 3.7%)했다. 보고서는 “시범 실시 지역에서 소수 정당의 당선자 비율이 전국(0.9%) 대비 다소 높게 나타났지만 양대 정당 집중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지역별 양상은 뚜렷했다.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싹쓸이 했던 수도권은 시범선거구(18곳·당선자 68명)에서 국민의힘(31명)과 민주당(36명)이 거의 균일하게 의석을 나눠가졌다. 소수 정당 당선자는 1명(정의당)에 불과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정진 조사관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수도권은 양대 정당의 세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소수 정당이 들어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보수 텃밭인 영남(대구)에선 2곳 선거구에서 국민의힘이 7석을 가져갔고, 나머지 2자리를 민주당이 확보했다. 소선거구제에 비해 민주당이 약진한 결과다. 보고서는 “영남 지역의 경우 소수 정당이 아닌 민주당이 정치적 대안으로 인식됐다”고 분석했다.

호남(광주)의 선거 결과는 영남과 다른 양상을 보였다. 광주의 3곳 선거구에선 민주당 당선자가 6명이었고, 소수 정당 당선자가 3명(정의당1·진보당2)이었다. 국민의힘 당선자는 한 명도 없었다. 보고서는 “민주당이 일당 우위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광주 지역에서 정의당이나 진보당 같은 정당이 정치적 대안으로서 역할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계묘년 새해를 맞아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인사 난을 들고 국회를 찾은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을 접견,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

김진표 국회의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계묘년 새해를 맞아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인사 난을 들고 국회를 찾은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을 접견,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다만 보고서는 윤 대통령이 제시한 2~4인 선거구보단 시범실시된 3~5인 선거구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보고서는 “기존의 연구들은 중선거구제의 효과가 발현되지 않는 원인으로 2인 선거구의 확대를 지적한다”며 “중대선거구 확대가 정치적 다원주의를 제고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선 의회의 다양성과 정치적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거대 양당의 복수공천 자제 노력 ▶비례대표 정수 확대 등도 함께 제시됐다.

윤 대통령이 꺼낸 선거제 개편 화두는 향후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이날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을 접견한 자리에서 “연초 대통령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정치 제도, 특히 승자독식 구조를 말했는데, 상당히 많은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받는 것 같다”며 “늦어도 2월 중에 국회 정개특위가 단수의 안을 내기는 어렵지만 복수 안을 내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이 수석은 “제가 발품을 파는 것도 중요하고, 심부름할 게 있으면 하겠다”고 화답했다. 다만 이 수석은 “대통령께서 ‘해라, 말아라’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국회가 진지하게 토론하면 어떻겠느냐”며 국회 차원의 논의에 무게를 실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