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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묘한 위치, 육지-해양 일대일로 만난다…中이 40년간 빌린 항구 [채인택의 세계 속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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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파키스탄의 과다르(Gwadar) 항구는 단연 주목 대상이다. 중국이 일대일로의 해상 부문에서 주요 축으로 삼는 지역 중 가장 독특하고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발루치스탄 말로 ‘바람의 문’이라는 뜻의 과다르는 파키스탄 서남부 발루치스탄 주의 아라비아해 연안에 자리 잡은 인구 9만 명 정도의 작은 항구다. 중국은 2017년 4월 파키스탄과 2019~2059년 40년간에 걸친 과다르항 사용 계약을 맺었다.

그 기간 항만 운영 매출의 91%, 인근 자유경제구역 운영 매출의 85%를 중국이 가져가고 23년간 각종 세금 혜택을 받는 유리한 조건이다. 중국해외항만지주회사(COPHC‧中國港控)라는 기업을 통해서다.

중국은 과다르항과 인근 확충 비용 160억 달러를 대기로 했다. 923헥타르의 면적에 항구와 물류단지, 쇼핑센터 등을 건립하는 프로젝트다. 하지만 공사는 중국 기업이 중국 자재와 기자재를 사용해서 중국인 노동자를 데려다가 진행했다. 현지에 떨어지는 떡고물이 작다고 주민들이 시위한다는 기사가 가끔 나오는 이유다.

과다르의 지리적 조건을 보면 무릎을 치게 된다. 중국이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았을까 싶을 정도다. 과다르는 이란 국경까지 120㎞, 이란 동남단 항구인 차바하르까지 약 170㎞가 각각 떨어져 있다. 눈앞의 아라비아해 건너 오만까지는 물길로 380㎞다. 파키스탄 최대 항구인 카라치에서 533㎞ 떨어졌으니 파키스탄의 핵심부보다 중동이 더 가까운 셈이다. 게다가 과다르는 바다에 접하며 최대 수심 14.5m의 심해항이다. 파키스탄의 항구 중 심해항은 드물다.

여기에 더해 역사적 무게와 지정학적 가치도 만만치 않다. 이 지역은 파키스탄에서도 사뭇 이채로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1797~1958년 바다 건너 아라비아 반도 동쪽 끝의 이슬람 군주국 ‘오만 술탄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술탄은 이슬람 군주를 가리킨다.

과다르에는 현재도 오만과의 이중국적자가 상당수 거주한다. 오만이 잔지바르 등 동아프리카 일부를 지배하던 시절 그곳에서 과다르로 이주시켰던 아프리카계 주민도 적지 않다.

지금은 아라비아 반도 동남쪽에 위치한 중동의 작은 이슬람 군주국이지만 오만은 1696~1856년 해상제국을 구가했다. 대항해 시대를 연 포르투갈과 해군 강국 영국과 한때 어깨를 나란히 했다. 계절에 따라 바람 방향이 정반대로 바뀌는 무역풍을 이용해 고대부터 인도와 교류해 바람과 물길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뱃사람 신드바드가 오만 사람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 이유다.

오만은 그렇게 페르시아만과 인도양의 무역 강국이 됐다. 현재의 영토뿐 아니라 페르시아만과 이란 남부와 파키스탄 동남부 연안 일부, 무엇보다 동아프리카의 잔지바르 섬과 탄자니아‧케냐 연안까지 영토로 삼았다. 대서양을 남하해 희망봉을 돌아온 포르투갈 항해사 바스쿠 다가마(1469~1524)는 탄자니아까지 와서 오만인을 만나 그들의 안내로 인도로 향할 수 있었다.

1840~1856년에는 동아프리카 잔지바르로 수도를 옮겼다. 1856년 왕실 내분이 일어나면서 잔지바르와 술탄국과 무스카트(본토 수도) 및 오만 술탄국으로 일시 분리됐다.

과다르도 오만 왕실의 오랜 분열과 관련이 있다. 앞서 1783년 오만 궁정에서 내분이 일어나면서 추방된 왕족의 일부가 과다르를 점령하고 이곳을 영토로 삼아 술탄국을 운영했다. 그 뒤 왕족들이 귀국한 뒤인 1797년 오만은 이곳을 정식으로 역외 영토로 삼았다. 1891년 오만이 영국의 보호국이 되면서 과다르는 영국령 인도의 일부가 됐지만 오만 왕실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1947년 파키스탄이 독립하면서 과다르 영유권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오만은 해상제국이 끝난 상황이라 역외 항구가 별로 필요가 없었지만, 독립한 파키스탄의 상인들이 자유무역항인 이곳에 와서 외국 상품을 값싸게 구입해가면서 짭짤한 이익을 누렸다. 결국 1958년 파키스탄은 오만에 300만 파운드를 주고 이 지역을 넘겨받았다.

파키스탄이 이렇게 돌려받고, 중국이 다시 이를 최소 40년간 운영하게 된 과다르는 크기는 작지만, 글로벌 전략적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이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페르시아만의 입구인 호르무즈 해협까지 약 400㎞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길이 167㎞, 폭 96~39㎞의 좁디 좁은 바다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은 그 전략적 가치를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전 세계에서 소비하는 석유의 약 25%와 액화천연가스(LNG)의 3분의 1이 지나간다. 국제교역의 급소 중의 급소다. 말만 들어도 석유 냄새가 물씬 나는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바레인‧카타르‧아랍에미리트‧이라크‧이란산 석유와 가스의 상당 부분이 이 좁은 해협을 거쳐 전 세계 소비지로 간다. 한국도 그중 하나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과다르가 바로 이 호르무즈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중국이 이를 선점한 여러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둘째, 이곳은 군사적으로도 중동과 아시아를 잇는 해상수송로를 지키거나 위협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특히 유의할 점은 수심 14.5m의 심해항이니 중국의 항모를 비롯한 대형 군함이 들어오도록 개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국제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다양한 변수가 있겠지만 만일 중국이 이곳을 군항으로 개발한다면 이곳에서 호르무즈 해협은 물론 눈앞의 아라비아 해를 포함해 인도양 전체를 아우르는 전략적 위치를 선점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무력화할 수도 있다. 물론 중국의 해군력이 미국을 따라가야 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말이다. 과다르를 군항으로 개발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글로벌 패권 국가인 미국은 물론 파키스탄과 앙숙인 인도가 펄펄 뛸 수 있는 사안이다. 견제구용으로는 그만한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셋째, 과다르는 글로벌 에너지 수송의 패러다임을 뒤집을 수 있는 지경학적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중국의 일대일로와도 관련이 깊을 수밖에 없다. 과다르에서 파키스탄을 남북으로 관통해 중국 서부 신장(新疆)위구르 자치주 서북단의 카슈가르(중국명 카스·喀什)로 이어지는 길이 3000㎞의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중국이 총 460억 달러를 들인다는 거대 프로젝트다. 카슈가르는 아시안 하이웨이의 핵심인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출발점이다.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중국 314번 국도를 따라 파미르 고원을 관통하고 중국·파키스탄 국경인 쿤자랍 고개를 지나 파키스탄 수도인 이슬라마바드까지 이어진다.

과다르는 일대일로(一帶一路)에서 해상과 육상 실크로드를 서로 연결하는, 그야말로 요충지 중의 요충지인 셈이다. 여기서 추가해서 생각할 점은 에너지 연결이다. CPEC라고 하면 흔히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사업을 생각하지만, 여기에 더해 송유관과 가스관이 이어지면 글로벌 에너지 수송의 패러다임이 전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다르-카슈가르 송유관과 가스관이 연결되면 중국은 이를 통해 중동산 원유를 믈라카해협을 거치지 않고 본국으로 운송하는 길을 열 수 있다. 중국이 중동산 원유를 과다르에서 환적해 경제회랑을 통해 운송할 경우 현재 1만2000여㎞의 운송 거리를 4000㎞까지 단축할 수 있다. 비용은 물론 전략적 함의도 크다. 중국은 경제발전에 필요한 석유를 1994년부터 중동을 비롯한 해외에서 들여오고 있어 페르시아만~오만만~아라비아해~인도양~벵골만~믈라카해협~남중국해로 이어지는 해상운송로의 보호가 절실하다.

하지만 카슈가르~과다르의 중국·파키스탄 회랑을 에너지 운송로로 개발하면 거리 단축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은 물론 안보적 위험요소까지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는 미·중 경쟁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지극히 중요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해군력에서 앞선 미국이 중국의 숨통을 죌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은 카슈가르~과다르 연결을 통해 과거 러시아제국과 소련도 이루지 못했던 아라비아해 진출이라는 글로벌 지정학적 꿈을 이룰 수 있다. 여기에 중국의 전략적 노림수는 하나 더 추가될 수 있다. 바로 신장위구르 지역에 대한 경제 개발의 모멘텀 제공과 순치다. 이 부분은 다음 회에 다룬다.

채인택 국제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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