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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시장 자금력 싸움…차·배터리에 조단위 베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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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국내외 기업들 투자 경쟁

“큰불은 정리했지만 잔불은 여전하다.”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2일 대규모 자금 조달 계획을 ‘산불’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합작사 얼티엄셀즈는 지난해 12월에만 25억 달러(약 3조1700억원)를 조달했다. SK온도 최근 2조8000억원을 마련했다. 두 회사가 조달한 투자액을 더하면 6조원에 이르지만, 국내 배터리 3사가 발표한 대규모 투자계획을 채우기엔 한참 부족하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쩐의 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조 단위’ 투자는 기본이 됐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올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이 처음으로 1000만 대를 넘어서면서 관련 분야 투자도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956만 대를 기록했다. 컨설팅 업체인 알릭스 파트너스는 2026년까지 세계 전기차 관련 산업에 526억 달러(약 66조7800억원)에 이르는 투자가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수십 년 만에 가장 큰 규모의 자동차 공장 건설 붐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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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투자에 후진은 없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27조3000억원을 국내외 공장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21조원은 국내 전기차 생산능력 확충과 전용 전기차 라인업 다양화 등에 투입된다. 지난해 10월에는 미국 조지아주에 연간 30만 대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전용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전기차 1000만대 시대 왔다, K배터리 ‘자금 충전’ 총력전

해외 업체들도 전기차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도요타는 전기차에 4조 엔(약 38조86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공언했다. 일본에 전기차 전용 생산라인을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전기차 전환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도다. 미국 포드는 2026년까지 50억 달러(약 6조3600억원)를 들여 미 테네시주 공장 등에 전기차 생산라인을 설치할 계획이다. 리비안 등 전기차 후발주자도 수조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전기차 배터리 업계는 ‘수주전’에서 ‘자금력 싸움’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대규모 자금 조달은 국내 배터리 3사의 고민거리 중 하나다. 코로나19 기간 중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며 현금을 쌓아둔 양산차 업계와 달리 국내 배터리 3사는 지난해부터 의미 있는 흑자를 내고 있다.

한국 배터리 3사의 미국 주요 합작 생산 설비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각 사]

한국 배터리 3사의 미국 주요 합작 생산 설비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각 사]

반면에 세계 1위 배터리 기업인 중국 닝더스다이(CATL)는 지난해 유럽에서만 10조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밝혔다. CATL의 중국 내 투자액을 포함하면 K배터리 3사 투자액을 넘어설 것이란 분석도 있다.

K배터리로선 투자금 조달이 부담이다. 전기차 배터리 공장 한 곳을 짓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1조5000억~2조원에 달한다. 배터리 3사가 밝힌 해외 공장 신설 계획에 필요한 단순 투자액만 더해도 25조원에 이른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제 막 흑자 전환에 성공한 배터리 기업에 조 단위 투자금을 마련하는 건 상당한 부담이다. 한 예로 국내 1위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17조610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영업이익은 9763억원에 그친다. 영업이익을 모두 쏟아부어도 배터리 공장 한 곳을 건설할 수 없다는 의미다. 배터리 제조사들이 양산차 기업과 손잡고 합작사를 세우는 이유다. 실제로 얼티엄셀즈는 지난달 미국 에너지부에서 25억 달러를 조달했는데 이 과정에서 GM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 LG에너지솔루션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지난달 모기업 SK이노베이션에서 2조원을 조달한 SK온 측은 “자체적인 자금 조달 계획을 마련하고 있어 공장 신설 등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상대적으로 배터리 공장 신설이 느린 삼성SDI는 배터리 수익성 극대화와 함께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체적으로 필요 자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윤혁진 SK증권 애널리스트는 “투자비 증가와 조달금리 상승은 신규 배터리 기업에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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