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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온천산업 간판, 107년 역사 유성호텔 문 닫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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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면

107년 역사의 대전 유성호텔의 매각이 결정돼 2024년 3월까지만 영업한다. 프리랜서 김성태

107년 역사의 대전 유성호텔의 매각이 결정돼 2024년 3월까지만 영업한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달 29일 대전시 유성구 봉명동 유성호텔 2~3층 연회장. 기업이나 연구소·종교시설 등에서 크고 작은 모임을 열고 있었다. 호텔 매각 소식이 알려진 뒤 직원들은 동요 없이 평소처럼 일했지만 100년 역사의 유성호텔이 문을 닫게 된다는 소식에 고객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1970~80년대 신혼여행과 관광지로 인기를 누렸던 온천의 명성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대전 유성온천을 비롯해 수안보와 온양·도고, 부곡 등 전국 온천지구는 66개에 달한다.

온천지구의 호텔과 숙박시설 대부분은 시설이 낡은 데다 3년간 이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줄줄이 문을 닫았다.

1994년 ‘온천관광특구’로 지정된 대전 유성온천은 한해 1000만명이 찾을 정도로 문전성시였다. 하지만 2021년에는 처음으로 이용객이 100만명을 밑돌면서 인기가 시들해졌다.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초 내놓은 ‘전국 온천 현황’ 자료를 보면 2021년 전국 온천 이용자 수는 전년(4219만명)보다 18.6% 감소한 3435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온천산업이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숙박시설도 영업을 중단하거나 아예 문을 닫는 추세다. 1915년 개장한 대전 유성호텔도 변화를 거스르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유성호텔은 지난달 말 매각계약을 체결하고 직원들에게 이를 알렸다. 호텔을 매수한 업체와 규모는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았지만 지난해 10월 서울 소재 부동산신탁회사가 매입했다고 한다. 유성호텔 영업 기한은 2024년 3월까지로 알려졌다.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대통령과 김종필 전 국무총리 등은 대전을 방문할 때마다 유성호텔에 머물렀다. 충남 부여가 고향인 김종필 전 총리는 휴가 때 유성호텔에 머물며 정국을 구상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대전선수촌으로 지정돼 각종 국제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유성호텔의 폐업에는 경기 불황과 함께 다른 호텔과의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유성온천에서 5㎞쯤 떨어진 유성구 도룡동 롯데시티호텔이나 호텔ICC·호텔오노마 등으로 고객이 쏠리면서 매각이나 폐업은 시간문제였다는 게 관련 업계의 평가다.

유성온천에서는 2017년 리베라호텔을 시작으로 2018년 아드리아호텔이 폐업했다. 레전드호텔은 지난 2021년 5월부터 영업을 중단했다. 대전지역 관광업계는 유성호텔마저 문을 닫으면 그나마 유지하던 온천의 명맥이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대전시와 유성구, 부동산업계는 유성호텔 부지에 5성급 호텔이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유성구 관계자는 “유성호텔 측에서는 건물과 토지를 매각하더라도 투자 방식으로 개발이나 후속 사업에 참여할 의지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국의 다른 온천지구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충북 수안보온천의 대표 관광호텔이던 와이키키리조트는 2002년 폐업했다. 관광호텔과 온천시설 등을 갖춘 국내 최초의 테마파크 부곡하와이도 적자에 허덕이다 2017년 영업을 끝냈다.

유성구는 관광거점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유성온천 살리기에 나섰다. 관광거점 조성은 260억원을 투입, 계룡스파텔 부근 4만8247㎡ 부지에 온천수체험관과 온천박물관 등 온천테마파크를 만드는 사업으로 2025년 완공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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