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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집 팔아 청소년 쉼터 세웠다…바리스타 키우는 회장님

중앙일보

입력

오수생 한국청소년지도자연합회장(사진 오른쪽)이 경기도 용인 수지구 풍덕천동 청소년 자립카페 '더드림'에서 스타벅스에 취직한 A씨와 이야기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오수생 한국청소년지도자연합회장(사진 오른쪽)이 경기도 용인 수지구 풍덕천동 청소년 자립카페 '더드림'에서 스타벅스에 취직한 A씨와 이야기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지난달 19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동 청소년자립카페 ‘더드림’. 오수생 한국청소년지도자연합회장은 A씨(22)가 오자 표정이 환해졌다. A씨는 3개월간 스타벅스 인턴과정을 거쳐 정직원이 됐다. 오 회장은 A씨를 향해 “정말 대견하구나.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A씨는 “커피를 만드는 게 몸에 잘 맞는다”며 활짝 웃었다.

A씨는 6년 전쯤 여러 사정으로 ‘가정 밖 청소년’이 됐다. 오 회장과 인연의 시작이다. 오 회장은 과거 잘 나가던 건축자재공장 대표였다. 그러다 1998년 교회 청소년을 대상으로 상담 봉사활동을 하면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부모 학대나 가정해체 등으로 나락에 몰린 청소년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푸른꿈청소년남자쉼터 거실 모습. 김민욱 기자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푸른꿈청소년남자쉼터 거실 모습. 김민욱 기자

가정 밖 청소년과 인연
오 회장은 이들 ‘부모’ 역할을 해줘야겠다고 결심한 뒤 2002년 서울 강남구 양재동 집을 처분, 용인에 청소년 쉼터·상담원을 하나둘씩 만들기 시작했다. 현재는 자립카페 2곳도 운영 중이다. A씨 등 그간 오 회장과 연을 맺은 청소년은 1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국내 청소년 쉼터는 가정 밖 청소년을 위한 안전망이다. 9세부터 24세까지 보호 서비스를 제공한다. 단순히 머무는 공간만은 아니다. 학업부터 심리정서, 문화여가활동 등 다양한 지원을 한다. 용인 쉼터는 현재 가정 밖 청소년 20명을 돌보고 있다. ‘자립’에도 상당한 공을 들이는데 특히 바리스타 교육에 특화돼 있단 평가다.

푸른꿈청소년남자쉼터 지하 문화공간 모습. 여러 운동기구가 구비돼 있다. 김민욱 기자

푸른꿈청소년남자쉼터 지하 문화공간 모습. 여러 운동기구가 구비돼 있다. 김민욱 기자

하나둘 자립에 성공한 청소년들
풍덕천동 자립카페 등에 오면 바리스타 경험을 쌓을 수 있고 시간제 아르바이트 일을 하며 용돈까지 번다. 올해 고3 졸업반인 B군(19)은 바리스타에 제과·제빵까지 도전장을 내밀었다. A씨도 이곳에서 커피의 매력을 알게 됐다고 한다. A씨는 “유아교육과를 선택해 대학을 진학했지만, 바리스타가 좀 더 적성에 맞는 거 같다”며 “학업은 또 필요할 때 다시 시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오 회장은 이런 자립으로 가정 밖 청소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가정 밖 청소년은 대개 가정폭력이나 빈곤·부모이혼 등 이유로 쉼터에 온다”며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색안경’을 낀 채 바라보는 이들 있다. 잘 커 준 아이들이 이런 부정 인식을 깬다고 본다”고 말했다.

용인 쉼터 출신 중엔 ‘청년으로 잘 커 준’ 아이가 여럿이다. 수원 아주대 앞에서 솜씨 좋기로 이름난 헤어디자이너, 쇼핑몰 대표, 전북 고창 커피전문점 사장, 번듯한 제약사 사원 등이 있다.

푸른꿈청소년 남자, 여자 쉼터 모두 여성가족부의 '2022년 청소년쉼터 종합평가'에서 최우수 쉼터로 선정됐다. 사진 오수생 회장

푸른꿈청소년 남자, 여자 쉼터 모두 여성가족부의 '2022년 청소년쉼터 종합평가'에서 최우수 쉼터로 선정됐다. 사진 오수생 회장

28살까지 버팀목...푸른 꿈 자립센터
자립 초기엔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정 밖 청소년은 부모 도움을 기댈 수 없는 형편이다. 직장을 얻었다고 해도 월세를 꼬박꼬박 내는 것조차 상당한 부담이다. 이에 오 회장은 쉼터 주변에 ‘푸른 꿈 자립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센터 측에서 임차한 45㎡ 정도 크기의 임대주택 2곳을 무료로 제공한다. 용인 수지에서 이 정도 크기 투룸 시세는 보증금 1억원 안팎이다.

자립센터 이용자는 관리비 정도만 내면 된다. 더욱이 28살까지 머물 수 있다. 여성가족부 등에서 운영하는 자립관 사용연령보다 4살 많다. 대신 입주자격을 직장인으로 한정했다. A씨 등 3명이 각각 생활 중이다. 자립센터에서 생활하며 착실히 월급을 모으면 독립 전 얼마든지 목돈을 마련을 할 수 있다. 물론 오 회장이 사재 등을 털어가며 어떻게든 운영해 가능한 일이다.

오 회장은 “내가 사업가 출신이라 잘 안다”며 “원래 사람을 키우는 사업은 돈은 안 되지만, 보람은 엄청 크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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