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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밖은 허름, 속은 '세련' 그 자체…창성동 한옥의 매력[퍼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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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퍼즐] 박나니의 한옥 이야기(11)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옥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일고 있다. 회색빛 바다와도 같은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에서 자라난 젊은 세대가 이런 주거 방식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훨씬 더 개방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지닌 우리의 전통 한옥에 시선을 돌리게 된 것이다. 전통적이라고는 하나 요즘 한옥은 한옥의 외관은 유지하되 내부는 현대적인 생활방식에 맞춰 변한 한옥이 많다. 한옥 이야기는 지난 2019년 발간된 책『한옥』에서 다루고 있는 한옥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찰스 임즈(Charles Eames)가 디자인한 솔질 된 알루미늄과 가죽 안락의자 그리고 오토만이 이 작은 현대 한옥의 전반적 분위기를 잡아준다. 집안 전체에 사용된 은회색 화강암 바닥 타일은 시각적으로 탁 트인 느낌을 안겨준다. [사진 이종근]

찰스 임즈(Charles Eames)가 디자인한 솔질 된 알루미늄과 가죽 안락의자 그리고 오토만이 이 작은 현대 한옥의 전반적 분위기를 잡아준다. 집안 전체에 사용된 은회색 화강암 바닥 타일은 시각적으로 탁 트인 느낌을 안겨준다. [사진 이종근]


창성동 집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건축가이자 집주인인 서승모 소장이 설계한 서울 서촌 창성동 도심 속의 도시형 전통 가옥이다. 이 집은 조그마한 한옥이 현대적 생활방식에 얼마나 잘 맞추어 개조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훌륭한 예시이다. 서촌은 경복궁 동쪽 일대의 한옥마을로 유명한 북촌과 대비해 경복궁 서쪽 지역을 일컫는 별칭이다. 경복궁을 기점으로 좌·우측에 위치한 서촌과 북촌은 서로 닮은 듯 다른데, 서촌 일대의 한옥들은 북촌에 비해 크기도 작고, 1930년대 대규모 한옥지구 개발의 여파가 닿지 않아 전체 규모 또한 작다.

안뜰이 채광과 환기에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그 넓이는 더 많은 생활공간을 창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바닥에 쌓여 있는 책과 잡지들은 거실과 식당을 구분하는 일종의 칸막이 역할을 한다. [사진 이종근]

안뜰이 채광과 환기에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그 넓이는 더 많은 생활공간을 창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바닥에 쌓여 있는 책과 잡지들은 거실과 식당을 구분하는 일종의 칸막이 역할을 한다. [사진 이종근]

서촌 일대에 있는 한옥들은 필지가 작기 때문에 좁은 공간을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서 소장이 처음으로 한옥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바로 한옥의 독특한 양식에 따른 건축의 어려움 때문이었는데, 이 창성동 가옥에서는 그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 마당의 규모를 축소해 햇빛이 가득한 ‘라이트 박스’로 변형시켰다. 그 덕에 생활공간은 안뜰에 더 가깝게 위치하게 되었고, 처마의 길이를 줄이는 방법으로 자연 채광을 극대화했다.

이 집은 고전적 건축 기법을 사용해 작은 공간이 좀 더 큰 공간으로 이어지도록 지어졌다. 이 기법은 인식의 허점을 찔러 같은 공간도 더 넓게 느껴지도록 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주방은 비록 작지만 에어컨과 세련된 주방기구들뿐만 아니라 충분한 수납공간과 선반들을 갖추고 있다. [사진 이종근]

이 집은 고전적 건축 기법을 사용해 작은 공간이 좀 더 큰 공간으로 이어지도록 지어졌다. 이 기법은 인식의 허점을 찔러 같은 공간도 더 넓게 느껴지도록 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주방은 비록 작지만 에어컨과 세련된 주방기구들뿐만 아니라 충분한 수납공간과 선반들을 갖추고 있다. [사진 이종근]

붙박이장과 창고는 집의 외벽을 따라 설치했으며, 서 소장의 지극한 요리 사랑에 맞추어 탄생한 현대적인 부엌에도 붙박이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좁은 부엌을 넓고 사용하기 편리하게 설계했다. 이처럼 집주인이 독신으로 살며 처음 이 한옥을 개조할 당시부터 현재의 가족을 꾸리기까지 이 창성동 가옥은 많은 변화와 진전을 보여왔다.

부엌에서 식당으로 이어지는 풍경은 개방형 선반들을 비롯한 붙박이 가구들이 좁은 공간 안에서도 얼마나 단정하고 알뜰하게 설치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진 이종근]

부엌에서 식당으로 이어지는 풍경은 개방형 선반들을 비롯한 붙박이 가구들이 좁은 공간 안에서도 얼마나 단정하고 알뜰하게 설치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진 이종근]

이 가옥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한때 마당이었던 공간을 활용해 만든 긴 유리 복도이다. 비록 생활공간은 아니지만 콘크리트 바닥 위에 삼면이 유리로 둘러싸인 이 공간은 필립 존슨의 글래스 하우스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서 소장은 자신이 좋아하는 햇빛을 복도와 통로에 잘 들게 하기 위해 좁은 남향 창문에 세모난 덮개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탁 트여 있지 않은 공간은 욕실뿐이다. 전통과 과격하게 결별한 형태로 구성된 이 집은 하나로 이어지는 큰 공간을 가구 배치를 통해 용도에 따라 분리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사진 이종근]

이 집에서 유일하게 탁 트여 있지 않은 공간은 욕실뿐이다. 전통과 과격하게 결별한 형태로 구성된 이 집은 하나로 이어지는 큰 공간을 가구 배치를 통해 용도에 따라 분리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사진 이종근]

서 소장이 개조한 이 가옥의 또 다른 특징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운 공존이다. 한옥의 미적인 매력과는 별개로, 전통적 요소를 수용하는 것은 비용을 절감해줄 뿐만 아니라 예산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단계적인 개조가 가능하도록 해준다. 한옥 리모델링은 대체로 뼈대를 남기고 전체를 보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집주인인 서 소장은 느긋하게 외부 형태를 보존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솜씨 좋은 요리사이기도 한 이 한옥의 건축가는 20세기 중반의 복고풍 분위기를 내는 친밀한 느낌의 식사 공간을 집안의 한 부분에 만들어 놓았다. [사진 이종근]

솜씨 좋은 요리사이기도 한 이 한옥의 건축가는 20세기 중반의 복고풍 분위기를 내는 친밀한 느낌의 식사 공간을 집안의 한 부분에 만들어 놓았다. [사진 이종근]

대문 밖에서 바라보면 영락없이 허름한 고택이지만, 이와 대비되는 하얀색의 현대식 대문은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하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감각과 전통을 공존시킨 이 창성동 집은 도시형 한옥 중에서도 매우 눈에 띄는 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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