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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 출신 의대 교수 ‘국내 유일 PET 의료장비 기업’ 만들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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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창업의 길 38.  브라이토닉스이미징  

이재성 브라이토닉스이미징 대표가 28일 오전 서울 성동구 브라이토닉스이미징 사무실에서 뇌PET 장비를 시연해보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재성 브라이토닉스이미징 대표가 28일 오전 서울 성동구 브라이토닉스이미징 사무실에서 뇌PET 장비를 시연해보고 있다. 김경록 기자

공대생이 의학과 인연을 맺어 의공학자가 되고, 글로벌 의료장비 대기업과 맞서는 스타트업 창업자가 됐다. 지난 20일 서울대에서 열린 ‘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 국제심포지엄’에서 혁신창업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받은 브라이토닉스이미징의 이재성(49) 대표(서울대 의대 교수) 이야기다. 그는 공대생 출신이다. 1992년 서울대 전기공학부에 입학했다. 당시만 해도 서울대에서도 공대 입학 점수가 의대보다 높던 시절이었다. 학부 시절 의학에도 관심이 있어 3학년 겨울방학에 서울대병원 핵의학과에서 인턴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게 인연이 돼, 대학원을 전기공학과 대신 의용(醫用)생체공학 협동과정으로 진학했다. 인턴 시절 한국 최초로 서울대병원에 들어온 양전자방출단층촬영시스템(PET)이 이후 그의 전공이 됐다. 서울대에서 의용생체공학으로 석ㆍ박사학위를 딴 뒤 미국 존스홉킨스대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2005년 모교로 돌아와 의대 핵의학교실 교수가 됐다. 그는 2009년 세계 최초로 현대 디지털 PET의 핵심 기술인 실리콘광증폭기(SiPM)를 활용한 PET을 개발했다. 디지털PET은 기존 아날로그 PET보다 해상도와 영상 품질이 뛰어나다. 2016년 창업한 브라이토닉스이미징은 이런 연구ㆍ개발(R&D)의 결과물이다. 지난 28일 중앙일보 취재진이 서울 성수동 SK V1타워 17층에 터를 잡은 브라이토닉스이미징을 찾았다. 이 대표가 교수로 있는 의대 연구실의 박사 제자들이 임직원으로 포진하고 있었다.

브라이토닉스이미징은 어떤 회사인가.
디지털 양전자방출단층촬영 시스템(PET) 기술을 중심으로 한 의료기기 회사다. 스타트업이지만 국내에서 PET을 개발하고 제조ㆍ판매하는 회사는 우리가 유일하다. 2016년 창업 이후 최근까지 실험쥐와 같은 소동물용 PET을 생산하고 있지만, 고령자를 위한 치매 진단용 PET을 조만간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뇌 PET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이끄는 기업이 되는 게 1차적 목표다.

(사무실 안쪽으로 높이 2m쯤 되는 의료장비가 놓여있었다. 의자 위쪽으로 구멍이 크게 뚫린 원통 모양의 장치가 달려있었다. 의자에 앉아 원통 안쪽으로 머리를 집어 넣으면 뇌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장비다. 내년 안으로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인증을 받는 것이 목표다. 대당 가격은 100만 달러(약 12억7000만원), 기존 대형 PET 장비의 4분의1 수준이다. )

브라이토닉스이미징 제품군

브라이토닉스이미징 제품군

왜 치매환자용 PET인가.
우리 사회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치매 환자의 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 중이다. 현재 국내 노인의 약 10%가 치매 환자다. 오는 2050년이 되면 치매 환자의 수가 300 만 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치매의 주종인 알츠하이머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병의 진행 정도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해 주는 뇌 PET 검사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멘스ㆍGEㆍ필립스 등 병원 의료장비를 장악하고 있는 기존 거대 의료장비 대기업과 경쟁하기 위한 나름의 틈새시장이다.
차별화된 혁신기술은 뭔가.  
브라이토닉스이미징은 PET 중에도 디지털 PET 기술에 특화돼 있는 회사다.  2009년 서울의대 핵의학교실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실리콘광증폭기(SiPM) 기반 디지털 양전자단층촬영 시스템(PET) 기술을 상용화한 거다. 덕분에 기존 아날로그 방식보다 공간 해상도와 분해능 등 여러 분야에서 성능이 좋아졌다. 반도체 기반이라 MRI와 동시에 찍는 게 가능하다. 또 인공지능(AI)을 이용한 핵의학 영상 분석도 우리만의 차별화된 기술이다. 이런 업적을 인정받아 지난달 국제전기전자공학회 의료영상기술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PET와 MRI는 각각 다른 장점이 있다. 암세포를 촬영한다고 할 때 PET은 세포의 분자적인 특성을 주로 본다면, CT나 MRI는 병변의 모양이 어떻게 변했는지 해부학적 정보를 주로 보는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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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창업을 선택했나.
세계 최초로 실리콘광증폭기(SiPM) 기반 디지털 양전자단층촬영 시스템(PET) 기술을 개발하고 나니 기술 이전을 해달라는 외국 획사들의 요구가 많았다. 그 중에 이스라엘의 MRI 스타트업도 있었다. 그들은 우리 PET 기술을 이전받아 MRI와 PET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소형 동물용 영상장비를 만들고 싶어했다.  마침 2015~2016년 스탠퍼드대학에 방문교수로 가게 된 것도 창업에 영향을 미쳤다. 스탠퍼드는 정말 엄청나게 창업을 많이 했다. 가장 뛰어난 학생ㆍ연구자들이 창업을 하고, 덜 뛰어난 사람들이 구글ㆍ페이스북 같은 곳에 취직을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기왕 R&D를 기술사업화를 할거면 직접 창업을 해서 제품을 공급하는 게 기술이전보다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 스타트업과 협업해 미국 국립보건원(NIH) 등에 우리 PET제품을 납품하는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굳이 이스라엘 스타트업과 협업을 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이스라엘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 네트워크가 엄청난다. 이스라엘 스타트업과 협업하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데 강점이 많다.  
교수직과 스타트업 대표직을 같이 수행 중인데, 1인 2역 힘들어보인다. 
사실 되게 힘들다. 퇴근하고 집에 가도 일하고, 주말도 없고, 휴가도 없다. 학교와 회사 양쪽을 다하기 위해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병원 핵의학과에 소속돼 있기 때문에 의료장비 도입, 관리 영상분석 등 병원 일과 연구도 많이 바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의과대학의 강의부담이 다른 곳보다 좀 덜하다는 점이다. 한 학기에 대학원 수업 한 두 과목하고, 학부 실습수업 정도만 하면 된다.”
이재성 브라이토닉스이미징 대표가 28일 서울 성동구 브라이토닉스이미징 사무실에서 임직원들과 함께 했다. 주요 임직원들은 이 대표처럼 공대 출신에 의대 협동과정을 거친 후배이면서 제자들이다. 김경록 기자

이재성 브라이토닉스이미징 대표가 28일 서울 성동구 브라이토닉스이미징 사무실에서 임직원들과 함께 했다. 주요 임직원들은 이 대표처럼 공대 출신에 의대 협동과정을 거친 후배이면서 제자들이다. 김경록 기자

그럼 언제 회사 일을 하나.
대학 규정상 일주일에 8시간만 회사일을 겸직할 수 있게 돼 있다. 성수동 회사에 실제로 와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다. 보통 화요일이나 수요일날 온다. 대신 필요할 때는 화상회의도 많이 한다. 그간 같이 연구하고 일해온 후배이면서 제자들이 회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 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가 돌아가는 거다.   

(브라이토닉스이미징의 직원은 26명이다. 이 중 서울대 의과학 박사인 고근배 최고기술책임자(CTO)와 김경윤 이사 등 의과학박사만 5명에 달한다. 이재성 대표 역시 의공학 박사다.)

너무 바쁘게 사는 거 아닌가. 창업한 교수들이 팍팍해진 삶의 질 때문에 후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들었다.
사실 창업하기 전에도 바쁘게 살기는 했다. 학회나 협회 일을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많이 줄였다. 그렇게 만든 시간을 회사에 투자하는 거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대학에 원하는 것이 있다면.
예전보다 창업 지원이나 분위기가 좋아진 편이긴 하다. 하지만 교수들은 회사 경영을 해본 경험이 없다. 법무ㆍ노무ㆍ세무 등 회사를 처음 세울 때 어려가지 일들이 많다.  창업한 후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더 많이 해주면 좋겠다. 그러려면 대학 기술지주회사 인력도 더 늘려야 할 거 같다. 교수가 창업을 할 때 회사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상당히 제한돼 있는 점도 제도적으로 풀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시류에 따라 창업지원에 대한 변화가 잦은 것도 문제다. 지금은 되는 것이, 나중엔 안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부에 얘기하고 싶은 것도 있겠다.
최근 들어 투자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현실은 정반대다. 정부는 모태펀드 규모를 줄이고, 이제는 민간시장 위주로 돌아가라고 하는데 시기상조가 아닌가 싶다. 지금처럼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는 정부가 예전보다 더 투자를 해서 지금껏 성장해온 스타트업들이 죽지 않게 살려줘야 한다. 스타트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정부 R&D 과제가 많이 필요하다. 중소기업 R&D 수준을 불신하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은 스타트업들의 연구수준도 굉장히 좋아졌다.
그 외 바람이 있다면.
우리나라 창업 생태계에 가장 약한 부분이 기술형 혁신창업 기업을 받아줄 수 있는 인수ㆍ합병(M&A) 시장이 작다는 거다. 창업 후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상장 전이라도 삼성이나 현대차 같은 대기업들이 인수해 스타트업의 몸집을 키우고 글로벌 시장에 들어가는 데 도움이 될 거다. 이런 사례가 나오면 마중물이 돼 스타트업 생태계에 선순환이 일어날 거다. 국내 대기업들도 이제는 이런 오픈이노베이션 방식으로 신성장 엔진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 시작한 사진 촬영과 인터뷰는 직원들이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오후 12시40분에야 끝났다. 이 대표는 서둘러 혜화동 서울의대로 가야한다며 일어섰다. 점심식사는 건너뛴다. 이제 교수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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