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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직원들 “탈북 선원 조사, 빨리 끝내고 북송돼 당황” 진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검찰이 문재인 정부에서 발생한 ‘북한 선원 강제북송 사건’과 관련해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연이틀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당시 우리 정부가 실시한 합동조사가 이례적으로 일찍 종료된 배경에 서 전 원장의 지시가 있었다고 보고 있다. 국정원 직원들로부터 “조사를 빨리 끝낼 사안이 아니었다”는 취지의 진술도 확보했다고 한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부장검사 이준범)는 27일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서 전 원장을 불러 조사했다. 서 전 원장은 문 정부 시절 또 다른 대북 사건인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직권남용 혐의(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로 지난 9일 구속기소 됐다.

검찰은 ▶선원들이 자필 귀순의향서까지 작성해 귀순 의사를 명확히 밝힌 점 ▶탈북민 조사가 통상 2주 걸리는데 이례적으로 조사 기간(사흘)이 짧았던 점 ▶당시 청와대가 북한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할 동기가 있던 점 등에 비춰 ‘탈북민 강제 북송’ 사건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은 합동조사에 참여한 국정원 직원들로부터 “당시에도 ‘이렇게 끝낼 일이 아니다’는 말이 많았다. 북송이 결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검찰은 이 사건의 범행 동기로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ASEAN) 정상회의를 주목하고 있다. 선원들은 11월 2일 북방한계선으로 넘어왔고, 문 정부는 11월 5일 ‘인원 및 선박 인계’를 북측에 통지했다. 이날은 문 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초청 친서를 보낸 날이다. 탈북민 문제에 민감한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해 국정원이 합동조사를 급히 마무리하고, ‘귀순’ 등 표현이 빠진 보고서를 통일부에 전달했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이에 대해 서 전 원장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고 한다.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당시 대북라인 핵심 인사들 역시 검찰 수사를 ‘정치적 의도’라며 공세를 취하고 있다. 문 정부 청와대 관계자는 “선원들이 바다에서 이틀간 도망 다니다 북방한계선을 넘어왔고, ‘죽어도 조국(북한)에서 죽자’는 말을 한 건 확인된 사실”이라며 “동료를 살해한 범죄자인 데다 귀순 의사가 일관성이 없어 신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정부의 의사결정이 ‘자의적’이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전의 행적과 관계없이 귀순 의사가 확실한 경우, 탈북민의 법적 지위에 준해 법적 절차를 밟아야 했는데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조만간 정 전 실장을 불러 당시 청와대의 보고 과정을 따져볼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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