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반쪽된 ‘K칩스법’…업계 “반도체 빙하기 우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국내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K칩스법’(반도체특별법)이 여야의 당 초안을 대폭 후퇴한 채 국회 문턱을 넘어서자 미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5일 반도체 업계와 재계·학계 등은 국회가 지난 23일 K칩스법의 양 날개인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데 대해 “이러다가 ‘반도체 빙하기’가 오게 생겼다” “미래 인재 키우기가 물 건너갔다”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이날 대기업의 세액공제 규모(기존 6%)는 여당안(20% 공제)은 물론 야당안(10% 공제)에도 미치지 못한 8%로 ‘찔끔’ 상향됐다. 중견기업 8%, 중소기업 16%는 그대로 유지된다.

양향자 무소속 의원은 이날 “설비투자 세액공제 확대는 국가적 관점에서 경쟁력을 따져 접근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특화단지를 지정해 줘도 세액공제가 낮아 생태계 구축이 상당히 위축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반도체특별위원회에 참여했던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당시 법안을 만들 때 세액공제율 20%를 제시했다”며 “대통령실에서 공제율 하향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고 의견을 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K칩스법, 기재부가 뒤통수쳤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기획재정부는 여당안(대기업 20%)이 통과될 경우 2024년 법인세 세수가 2조6970억원 감소한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일각에선 “민생법안 처리에 반도체법안을 끼워팔기했다”며 “기재부가 뒤통수쳤다”는 얘기도 나왔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국회와 정부가 단기적인 세수 감소 효과에 매몰된 듯하다”며 아쉬워했다.

미국과 일본 등 경쟁국은 세제 혜택을 ‘당근’ 삼아 반도체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25%의 세액공제를 해주는 ‘반도체 칩과 과학법’(칩스법)을 제정했다. 중국은 반도체 기업의 공정 수준에 따라 법인 소득세를 50~100% 감면하고 있으며, 2025년까지 1조 위안(약 187조원)을 반도체 산업에 지원한다. 대만도 반도체 기업의 연구개발(R&D) 세액공제율을 15→25%로 상향하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박재근(한양대 교수) 반도체디스플레이학회장은 “한국은 보조금은커녕 세액공제율도 낮다”며 “지금 투자 시기를 놓치면 2~3년 뒤엔 기술이 있어도 생산하지 못해 시장을 빼앗기게 된다. 한번 시장을 잃으면 돌이킬 수 없다”고 말했다. 김용석 교수는 “기업 입장에선 사업 여건이 좋은 쪽에 투자가 쏠릴 수밖에 없다”라며 “돈과 사람이 빠져나가면 ‘반도체 빙하기’에 몰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액공제와 함께 전문인력 양성, 인허가 간소화 등도 대폭 후퇴하거나 공전을 이어가고 있다. 당초 첨단산업특별법 개정안에는 ‘수도권 대학의 정원 규제와 무관하게 반도체 등 전략산업 관련 학과의 정원을 늘린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당정 협의 과정에서 ‘수도권대 특혜’ 논란이 일며 대학 내 정원에서 조정하는 방향으로 후퇴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