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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우주시대 앞둔 항우연의 내분, 정부가 리더십 보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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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 및 제작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지난 6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서 화염을 내뿜으며 우주로 날아오르고 있다. 중앙포토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 및 제작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지난 6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서 화염을 내뿜으며 우주로 날아오르고 있다. 중앙포토

조직 개편 항의해 누리호 주역들 잇단 사퇴

우주시대 선언 정부는 지휘체계 고민해야

한국 우주시대를 이끌어야 할 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의 내부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우리 독자기술로 이뤄낸 누리호 성공의 주역인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과 보직 부장들이 사퇴한 데 이어 나로우주센터장까지 자리를 던졌다. 항우연 원장이 최근 단행한 조직 개편과 인사에 대한 반발이었다. 항우연 원장은 지난 12일 발사체연구소를 신설하고, 그 아래에 차세대발사체사업단과 한국형발사체고도화사업단 등을 두는 조직 개편을 했다.

원장은 “다양한 발사체 연구개발 수요를 효율적으로 대비하기 위한 개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퇴를 선언한 발사체본부장과 부장들은 “발사체 개발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처사”라고 반박했다. 발사체 조직을 놓고 항우연이 혼란에 빠지면서 당장 내년 5월로 예정된 누리호 3차 발사와 민간기업으로의 기술이전이 차질을 빚게 됐다.

항우연의 내부 갈등은 사실 해묵은 문제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 나로호 1, 2차 발사가 실패하면서 당시 교육과학부가 발사체 개발 조직을 직접 챙긴 게 시작이었다. 발사체본부를 과기정통부 직할로 만들어 인사권 등을 틀어쥐었다. 항우연 중심으로는 나로호가 성공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어쨌든 나로호 3차 발사는 성공했지만, 발사체본부는 원장의 관할에서 벗어나 물과 기름처럼 변해 갔다. 급기야 회식 자리에서 항공 부문 출신 전 원장이 발사체 본부 직원을 폭행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이런 갈등 뒤엔 당시 나로호 발사추진단장이었던 또 다른 전 원장의 지나친 영향력 행사가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문제는 이런 묵은 갈등과 혼란의 와중에 정부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관은 “조직 개편 의견 차로 생각한다”고 남 얘기하듯 하고 있다. 대통령실도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우주 탐사는 단순한 기술이나 산업이 아니다. 정치·외교·안보 영역까지 뻗어 있는 문제다. 1957년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올리자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10년 안에 달에 사람을 보내겠다”며 소련에 밟힌 국가적 자존심의 회복을 선언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생겨난 것도 이때다. 위기에서 나온 국가의 리더십이었다. 결국 미국은 69년 인류 최초로 달에 우주인을 보내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은 70년이나 지난 이제야 우주로켓 하나를 쏘아올렸다. 이제 초입인데, 주무 조직의 지휘체계가 혼란스러워서야 되겠는가. 누리호 3차 발사 등 고도화 사업과 민간 기술이전, 차세대 발사체 개발 앞에서 더 이상 지체와 혼란이 있으면 안 된다. 우주로드맵을 발표한 대통령실과 정부가 우주시대 컨트롤타워 문제부터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