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부동산發 경제위기 올라…文정부 세제·대출 규제 다 푼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가 21일 발표한 ‘2023년 경제정책방향’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두 가지다. 위기 극복 그리고 경제 재도약이다. 무게 중심은 위기 극복에 쏠려 있다.

[2023년 경제정책방향]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합동 브리핑에서 “내년 해외발(發) 복합위기가 경제 전반에 걸쳐 본격화되며 상당 기간 어려움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부동산ㆍ물가ㆍ수출 등 다각도에서 닥쳐올 위기 방어에 초점이 맞춰진 이번 경제정책방향의 주요 내용을 풀어봤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21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원희룡 국토부 장관(왼쪽), 김주현 금융위원장 등과 함께 2023년 경제정책방향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21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원희룡 국토부 장관(왼쪽), 김주현 금융위원장 등과 함께 2023년 경제정책방향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동산

가파른 집값 추락이 금융ㆍ거시경제 전반의 ‘시스템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정부는 사전 대응에 나선다. 부동산 경기 연착륙을 유도하는 방향이다. 문재인 정부 때 치솟는 주택 가격을 잡겠다며 전방위로 강화한 부동산 세제와 대출 규제가 대거 풀린다.

다주택자에게 최대 12% 세율을 매기는 취득세 중과 제도가 완화된다. 현행 8%인 3주택자(조정대상지역 2주택자) 대상 취득세율은 4%(조정지역 2주택자 1~3%)로 낮아진다. 4주택(조정지역 3주택) 이상, 법인에 매겨지던 12% 취득세율은 6%로 내려간다. 내년 관련 법이 개정되더라도 시행 시점은 이날로 소급 적용된다.

내년 5월까지 한시로 유예한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 기간은 2024년 5월까지 1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단기 양도세율은 2020년 수준으로 돌아간다. 분양권이나 주택ㆍ입주권을 샀다가 1~2년 이내에 되팔아도 60~70% 높은 양도세율을 더는 물지 않는다는 의미다. 보유 기간이 1년 미만일 때에만 45% 세율을 적용받는다. 양도세 중과 등 부동산 세제 전반을 아우르는 개편 방안도 추진된다. 내년 세제 개편안에 담길 예정이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추 부총리는 “고금리, 심리 위축에 따른 부동산 시장 경착륙 방지를 위해 규제 패러다임을 전면 전환하겠다”며 “다주택자를 주택시장 내 공급의 주체로 보고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규제를 정상화하기 위해 취득세ㆍ양도세 중과와 규제지역 내 대출 규제 등을 완화하겠다. 민간 등록임대를 복원하고 세제 혜택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부동산 대출 규제도 대폭 완화된다. 규제지역 다주택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금지 규제가 폐기된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상한 30%를 적용받는다. 내년 초 서울ㆍ경기 등지 규제지역이 추가로 해제되고,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도 축소될 예정이다. 실거주, 전매 제한 규제도 문 정부 이전인 5년 전 수준으로 낮아진다. 생활 안정, 임차 보증금 반환 목적의 주담대(보유 주택) 규제도 풀린다. 2억원 한도, 3개월 전입 요건(임차 보증금 용도)이 사라진다.

주택 공시가격 제도도 수술대에 오른다. 내년 1주택 재산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은 현행 45%보다 낮은 수준으로 내려간다. 정부는 연구용역, 외부 검증, 기초자료 보강 등을 거쳐 내년 하반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발표할 계획이다. 재건축 활성화 차원에서 안전진단 합리 방안이 내년 1월 시행된다. 또 3기 신도시 분양 물량은 사전 청약 의무 완화 등을 통해 분산하기로 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2020년 대폭 축소된 민간 등록임대 제도도 부활한다. 전용 면적 85㎡ 이하 장기(10년) 아파트 매입 임대 등록을 다시 받기로 했다. 새로 아파트를 매입 임대하는 사업자에게 주택 면적에 따라 50%(60~85㎡)에서 85~100%(60㎡ 이하) 취득세 감면 혜택을 준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양도세 중과 배제, 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 법인세 추가 과세(양도 차익의 20%포인트) 배제 등 혜택도 다시 받을 수 있다. 대신 임대 사업자 난립을 막기 위해 2채 이상 신청했을 때만 신규 등록을 허용하기로 했다.

◇에너지ㆍ생계비

정부는 2026년까지 에너지 공기업 누적 적자, 미수금을 털어내기 위해 단계적 요금 현실화에 나설 계획이다. 전기ㆍ가스 등 공공요금 연쇄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내년에도 이어질 물가난 대비 차원에서 정부는 각종 생계비 대책을 내놨다.

경유와 액화석유가스(LPG) 유류세 인하, 경유 유가연동보조금 지급 기간을 내년 4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유연탄과 액화천연가스(LNG) 개별소비세 감면, 농축수산물 할당관세 적용 조치도 늘려 시행한다. 전기요금 복지 할인은 확대하고, 에너지 바우처 지원 단가는 인상하기로 했다.

올해 말 끝날 예정이었던 대중교통 신용카드 소득공제율 상향(40→80%) 조치는 내년 6월까지 연장된다. 예컨대 연간 총급여의 25%를 넘어서는 신용카드 사용액 중 대중교통에 쓴 돈이 상반기와 하반기 각각 80만원이라면, 원래 공제액은 64만원(160만원의 40%)이다. 이번 연장 조치로 공제액이 96만원(상반기 80만원의 80%+하반기 80만원의 40%)으로 늘어난다.

정부는 또 현행 5억원(취득 당시 기준 시가)인 장기 주택저당차입금 이자상환액 소득공제 대상 주택 기준을 6억원으로 올릴 예정이다. 소득공제 한도를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서울 중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 전기계량기가 설치돼 있다. 뉴스1

서울 중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 전기계량기가 설치돼 있다. 뉴스1

내년 1학기 학자금 대출금리는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고, 유치원 유아 학비는 2025년까지 3년 더 지원할 계획이다. 햇살론 등 서민금융상품의 대출 한도를 한시로 증액하는 조치는 내년에도 이어진다. 고정금리 전세자금대출 상품을 늘리고, 월세 세액공제 대상 주택 기준은 3억원에서 4억원으로 올린다. ‘빌라왕 사건’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범정부 ‘법률 지원 태스크포스(TF)’도 가동된다.

소비 진작, 여가 확대 차원에서 정부는 대체 공휴일을 늘리기로 했다. 부처님 오신 날, 성탄절이 추가됐다. 올해 성탄절(25일)처럼 법정 공휴일이 일요일이면 바로 다음 날인 월요일이 대체 공휴일로 지정되는 식이다. 다만 올해 성탄절은 해당하지 않는다. 내년부터 적용된다.

현재 특별재난지역에서 한 자원봉사(용역 기부)만 기부금 세액 공제 대상인데 이를 학교나 병원, 국가, 지방자치단체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정부가 구체적인 세제 지원 방안과 세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현행 기부금 인정 가액은 1일 8시간 기준 5만원이다. 봉사 활동에 필요한 유류비ㆍ재료비 등도 포함한다.

◇수출ㆍ투자

내년 수출 경기는 추락이 예고돼 있다. 이에 대비해 정부는 내년 무역 금융 지원을 역대 최대 규모인 360조원으로 늘린다. 수출입 기업을 대상으로 환변동 보험 할인, 외화 유동성 공급, 금리ㆍ한도 우대 등 지원에 나선다. 체코ㆍ폴란드 등 원자력 발전소 수주에도 주력한다. 2027년 방위산업 수출 4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정부 지원을 확대한다.

경기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컨테이너들이 쌓여있다. 뉴스1

경기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컨테이너들이 쌓여있다. 뉴스1

투자 ‘가뭄’을 막기 위해 내년 투자 증가분에 대한 세액 공제율을 10%로 상향한다. 금융 부문에서의 시설투자 자금 지원은 내년 역대 최대 규모인 50조원으로 잡았다. 경쟁 제한성이 적은 인수ㆍ합병(M&A)은 신고 면제도 해준다.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면세업계 지원을 위해 특허 수수료 경감 조치를 내년에도 시행하는 방안을 정부가 검토 중이다.

‘레고랜드’ 충격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금시장 활성화 대책도 나왔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금융상품에 회사채와 K-OTC 내 비상장 중소ㆍ중견기업 주식이 추가된다. 예ㆍ적금, 공모펀드, 상장주식에 한정됐던 비과세 품목에 회사채가 더해졌다. 또 하이일드 펀드(국내 채권에 60% 이상 투자, BBB+ 이하 채권을 45% 이상 편입)에도 세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저신용 등급 채권 투자 활성화 목적이다.

미래 먹거리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정부는 ‘신성장 4.0’ 프로젝트 가동한다. 자율주행, K-클라우드로 대표되는 국가 데이터 인프라 구축, 첨단 반도체 산업단지 구축 등 미래 성장 산업 15대 분야를 중심으로 정부는 투자 확대에 나선다. 2032년 달착륙선을 발사한다는 목표도 함께 담았다. 다만 ‘신성장 4.0 전략’에 정부가 얼마나, 어떻게 투자할지 구체적 방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민간 중심 투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다.

정부는 이번 경제정책방향에서 ‘위기 극복’을 문패로 내걸었지만 문 정부 때 만든 부동산 관련 규제를 풀고 기존 지원책을 유지하거나 확대하는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다주택자 세 감면은 국회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 동의 없이는 시행 자체가 어렵다. 재정 긴축, 감세를 기조로 내건 탓에 재정 확대를 통한 경기 떠받치기도 기대하기 힘들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가계부채 급증, 인구 고령화, 금리 상승 등 장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이번 정부 대책에서 강력한 구조조정이나 구체적인 경제위기 대응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적 경기 위축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 그에 따른 물가난과 양극화, 서민 고통이 내년 심각한 수준에 이를 것”이라면서 “그에 반해 정부 대책은 감세, 긴축에 초점에 맞춰져 있고 금리 여건 때문에 국채 발행을 통한 재정 뒷받침도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우 교수는 “경기 둔화 강도에 비해 정부 대책은 그에 못 미치고 있어 여느 때보다 한층 우울한 내년이 예상된다”고 짚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