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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분수대

LTV·DS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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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현주 경제부 기자

최현주 경제부 기자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왕 영공은 평소 총애하는 여인에게 남장을 시키고 감상하는 별난 취미가 있었다. 왕이 남장 여인을 좋아하자 이를 질투한 궁중 여인들이 너도나도 남장했고 소문이 퍼지자 일반 백성 중에서도 남장 여인이 늘어났다. 이에 놀란 영공이 ‘궁 밖 남장 여인을 처벌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사정은 여전했다. 영공이 노하자 현인(賢人)으로 불리는 재상 안영이 진언했다. “궁 안의 여인에겐 남장을 허용하며 궁 밖의 여인에게는 못하게 하니 ‘밖에는 양머리를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과 같으니 궁 안부터 단속해야 한다.” 겉은 훌륭해 보이지만, 속은 변변찮다는 뜻의 양두구육(羊頭狗肉) 유래다.

정부의 대출 규제 완화가 속도를 내고 있다. 규제지역 해제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은 최대 70%, 총부채상환비율(DTI)도 60%까지 확대됐다. 이달 1일부터 15억원 초과 아파트도 주택담보대출(무주택자·1주택자)을 받을 수 있고, 전 정권에서 적폐 대상으로 봤던 다주택자·임대사업자에 대한 대출 규제 완화도 검토하고 있다.

잇따른 대출 한도 완화 조치에 숨통이 트일 법도 한데 시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대출 규제 중심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가 있어서다. LTV가 집값을 기준으로 대출 한도를 정한다면 DSR은 소득이 기준이다. DTI도 소득을 기준 삼지만, DSR이 더 엄격하다. 이들 규제는 소득을 기준으로 빚의 상한선을 정한다. 이때 빚은 크게 담보대출 원리금과 기타대출(학자금·마이너스·자동차 할부·카드론 등)로 나뉜다. DTI는 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액과 기타 대출 이자 상환액을 빚으로 본다. DSR은 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액은 물론 기타 대출의 원리금까지 모두 빚으로 본다. 소득이 기준인 만큼 적게 벌수록 불리하다. 연 소득이 1억원인 고소득자가 14억원에 아파트를 산다면 이전에는 4억6000만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었지만, 이달부터 LTV 50%를 적용하면 7억원까지 받을 수 있다. 같은 조건으로 연 소득 5000만원이라면 LTV 50%를 적용해도 4억6000만원뿐이다. 이미 DSR 40% 한도가 꽉 차서다.

번 만큼만 빚을 지라는 취지는 맞다. 다만 대출 규제 푼다며 생색을 내고 실제로는 DSR로 발목 잡는 양두구육 정책은 정부에 대한 신뢰에 흠집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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