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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서 수십만원에 거래…절판된 ‘첫 시집’ 복간했더니 불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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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유진목의 『연애의 책』. 왼쪽은 절판된 2016년 삼인시집선, 오른쪽은 올해 복간된 문학동네 포에지 시리즈. 복간 3주도 되기 전에 중쇄를 찍었다 [사진 삼인, 문학동네]

유진목의 『연애의 책』. 왼쪽은 절판된 2016년 삼인시집선, 오른쪽은 올해 복간된 문학동네 포에지 시리즈. 복간 3주도 되기 전에 중쇄를 찍었다 [사진 삼인, 문학동네]

절판됐던 시집이 복간되자마자 1쇄 1500부가 다 팔리고, 3주도 채 되기 전에 중쇄를 찍었다. 지난달 21일 펴낸 문학동네 포에지 시리즈 57권, 유진목 시인의 『연애의 책』 이야기다.

문학동네 포에지는 절판된 시인들의 첫 시집을 새로 펴내는 복간 시리즈로, 각 출판사마다 신간 위주로 꾸리는 시집 시리즈와 다르다. 가까이는 2008년 펴낸 신동옥의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와 곽은영의 『검은 고양이 흰 개』부터 멀게는 1979년 발간된 김승희의 『태양미사』, 장석주의 『햇빛사냥』, 고정희의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등까지, 14∼43년 전 시집들이 다시 독자를 만났다. 2016년 삼인출판사의 ‘삼인 시집선’으로 초판이 나왔던 『연애의 책』은 포에지 시리즈 중에선 ‘새싹’에 속한다.

『연애의 책』은 ‘삼인 시집선’의 첫 책이었지만 시리즈가 이어지지 못했다. 판권 계약 5년이 끝난 뒤 시집의 생명력이 쇠했다고 판단한 유진목 시인은 계약을 종료했고, 책은 공식적으로 절판됐다. 이를 본 문학동네 임프린트 난다의 김민정 대표가 “아깝다”며 바로 복간을 제안해 만들어졌다.

2020년 하반기 시작한 포에지 시리즈는 김 대표가 “학교 다닐 때 공부했던 시집들을 요즘 학생들에게 추천하려고 했더니, 없어진 경우가 너무 많아 한국 시의 역사가 사라지는 게 아까워서” 시작한 시리즈다. 절판 시집은 헌책방에서 2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기도 한다. 시인 스스로 초판 시집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함민복 시인도 “『우울씨의 일일』(1990)은 나도 전자책으로밖에 못 보는데, 헌책방에 갔더니 25만~35만원 하더라”고 전했다고 한다.

포에지 시리즈는 ‘복간’이 목적이라 보통의 시집과 달리 해설이나 추천사 없이 시인의 말, 복간판 시인의 말, 시만 담았다. “서투른 대목이 눈에 띄어도 덧칠을 하지 않았습니다. 인생의 시기마다 그때에만 쓸 수 있는 시가 있으니까요.” (나희덕), “내 서가에조차 하나 남은, 세상에 몇 남지 않았을 시집을 되살려준다는 제안이 고맙고 당황스러웠다. 새로 입력한 교정지를 읽으니 자주 낯이 뜨거워져서 크게 고치거나 빼고 싶기도 했지만 애써 손대지 않았다. 그때의 내가 더 옳을 것이다.” (이희중)

시인들은 쑥스러워하면서도 대부분 최소한의 교정만 보고 초판본 그대로 펴냈다. 다만 재출간 제안을 해도 시인 자신이 “시가 너무 엉망이고, 부끄러워서 그냥 사라진 채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고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첫 시집을 다시 보고 싶어하는 원로 시인들 가운데 ‘잃어버린 자식 찾은 것 같다’는 말을 하는 분이 많다”고 전했다. 총 60권 중 41권 이후로는 최승자 『연인들』, 허수경 『내 연인은 오래되었으나』 등처럼 첫 시집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절판 시집도 시리즈에 섞여 있다. 김 대표는 “절판된 ‘첫 시집’을 어느 정도 건져냈다. 첫 시집이 아니더라도 의미 있는 절판 시집을 계속해서 복간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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