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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알몸김치 몰아낼 의병…6시간만에 10t 완판된 '못난이 김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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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충북 괴산군 청천면 한 배추밭. 농민 장흥석(69)씨가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씨에 아직 잎이 새파란 배추를 살피고 있었다. 지난 8월 20일께 같은 동네에 사는 장씨 친형이 심은 배추다. 4620㎡(1400평) 규모 밭에 수확을 포기한 배추 수천 포기가 그대로 있었다.

[e즐펀한토크] 최종권의 충청기사 왔슈

올가을 배춧값 반토막 
올가을 전국적으로 배추가 과잉 생산되면서 판로를 찾지 못해 골칫덩이 신세가 됐다. 산지 배춧값은 예년의 반 토막났다. 이 밭에서 300m 떨어진 장씨 밭에도 멀쩡한 배추가 보였다. 장씨는 “양지에 있던 배추라 얼지도 않았고, 속도 꽉 찼다”며 “마을을 돌다 보면 계약 재배 물량 외에 여분으로 심은 배추가 많이 남아있다. 아무리 싸도 사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밭에 썩게 놔둔다”고 했다.

지난 13일 충북 청주시 김치제조업체 예소담 청주공장에서 직원들이 못난이 김치를 만들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13일 충북 청주시 김치제조업체 예소담 청주공장에서 직원들이 못난이 김치를 만들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판로 막힌 배추로 '못난이 김치' 생산

이날 오전 괴산 청천·청안면에는 산지 폐기를 코앞에 둔 배추를 수확하는 작업반이 돌고 있었다. 이 배추를 가져다 이른바 ‘못난이 김치’를 만들기 위해서다. 못난이 김치는 지난 1일 충북도가 상표 등록한 김치 브랜드다.

배추생산량 증가에 따른 가격 급락으로 제때 수확하지 못한 배추를 활용해 만들었다. 농가가 시세보다 싼 가격에 배추를 팔면, 김치 제조업체는 큰 이윤을 남기지 않고 김치를 파는 방식이다.

덕분에 못난이 김치는 시중에 파는 국내산 김치보다 20~40% 싸다. 가격은 한 상자당 2만9500원으로 책정됐다. 1만5000원∼2만원선인 중국산 김치보단 다소 비싸지만, 3만5000원~5만원대를 웃도는 국산 김치와 비교하면 훨씬 저렴하다.

지난 13일 충북 괴산군 청안면 백봉리의 한 배추밭에서 못난이 김치 생산을 위한 수확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최종권 기자

지난 13일 충북 괴산군 청안면 백봉리의 한 배추밭에서 못난이 김치 생산을 위한 수확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최종권 기자

시세보다 20~40% 저렴…6시간 만에 10t 완판

작업반은 장씨 배추밭을 비롯해 괴산 일대를 돌며 쓸만한 배추를 찾아 김치 공장으로 날랐다. 청안면 백봉리에서 만난 윤두영 예소담 회장은 “대설주의보가 예고된 상황이라 사실상 오늘이 마지막 수확일”이라며 “김장철이 보름 정도 지났지만, 배추 품질이 좋아 김치 담그기에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농장주는 “싼값에라도 배추를 팔면 인건비라도 건질 수 있다”며 수매에 동의했다고 한다.

충북도는 지난 1일 시범사업으로 김치 20t을 충북 지역 안테나숍과 구내식당·적십자 등에 공급했다. 2차 납품은 한국 외식업중앙회 회원사를 대상으로 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지난 12일 외식업중앙회 가족공제회 사이트에서 주문을 받은 지 6시간 만에 계약 물량 10t이 완판됐다.

지난 13일부터 10㎏들이 김치 1000박스가 전국 식당에 차례로 공급됐다. 김치 생산은 충북에 있는 김치 제조업체인 ‘예소담’과 ‘이킴’이 맡았다. 김현옥 충북도 식품안전팀 주무관은 “이름만 못난이지 국내산 배추와 엄선한 속재료를 썼기 때문에 가격과 질 모두 충족하는 착한 김치”라며 “농민을 돕고, 국산 김치 확산에 도움이 된다는 취지로 인해 외식업중앙회로부터 호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충북 괴산군 청천면 배추밭에서 장흥석씨가 판로가 막힌 배추를 살피고 있다. 최종권 기자

지난 13일 충북 괴산군 청천면 배추밭에서 장흥석씨가 판로가 막힌 배추를 살피고 있다. 최종권 기자

김영환 “못난이 김치는 중국산 대항하는 의병김치” 

못난이 김치는 김영환 충북지사 제안으로 탄생했다. 그는 지사가 되기 전부터 버리는 농산물을 값싸게 사서 활용할 방법을 고민했다고 한다. 지난달 중순 괴산 청천면 주민들로부터 “중국산 저가 김치와 완제품 김치 선호도 현상으로 인해 괴산에서 생산하는 많은 양의 배추가 매년 밭에 방치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김 지사는 “김장철 막바지에 덜 자란 배추가 B급 취급을 받아 출하되지 못하고 폐기된다는 말을 들었다”며 “이 같은 배추는 며칠만 있어도 속이 꽉 찬 A급이 된다. 버리는 농산물을 쓸모 있게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못난이 김치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못난이 김치를 ‘의병김치’라고도 했다. 그는 “알몸 김치, 방부제 파동 등 중국산 저가 김치가 김치 종주국의 위상을 위협하고 있다”며 “못난이 김치를 통해 ‘김치만은 우리 것을 먹자’는 김장의병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3일 충북 청주시 소재 김치제조업체 예소담 청주공장에서 못난이 김치를 만들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13일 충북 청주시 소재 김치제조업체 예소담 청주공장에서 못난이 김치를 만들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북도, 못난이 감자·고구마·사과 등 품목 확대 

이번에 납품한 못난이 김치는 충북도내 김치 제조 업체가 위탁을 맡아 덤으로 생산한 물량이다. 업체 측은 마진 없이 김치를 팔았다고 한다. 배추를 싸게 사들여 매입 단가는 낮췄지만, 김치 소비자가에 영향을 미치는 작업반 인건비와 배추 운송 비용 지원 등이 고려되지 않았다. 못난이 김치 제조·판매를 위해 제조업체가 일부 희생을 감수하는 구조다.

충북의 배추 생산이 10월~11월에 몰려있다는 점에서 못난이 김치를 연중 생산할 수 있는 안정적인 배추 수급도 과제다. 배추 작황이 부진하면 팔지 못한 배추를 구해다가 시세보다 저렴한 김치를 만드는 것도 예단하기 어렵다.

이정기 충북도 농식품산업팀장은 “못난이 김치 사업은 배추 생산량과 관계없이 수확을 포기하거나, 판로가 막혀 어려움을 겪는 농민을 돕자는 취지”라며 “배추 수급 현황 등을 고려해 생산 물량과 시세를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배추 수확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공공인력 형태의 도시농부와 생산적 일손봉사 인원을 투입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 충북도 관계자들이 김치공장 앞에서 못난이 김치 첫 출하를 축하하고 있다. 사진 충북도

지난 1일 충북도 관계자들이 김치공장 앞에서 못난이 김치 첫 출하를 축하하고 있다. 사진 충북도

못난이 김치를 생산하는 업체에 국내외 마케팅을 돕거나 수출 선적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충북도는 김치 사업 외에 내년부터 못난이 상표를 단 사과·감자·고구마 등 농작물을 출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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