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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생 ‘찾았다’는 사실보다 찾는 과정이 중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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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호 22면

‘중국 현대사 100년’ 소설로 쓴 작가 위화

8년의 공백을 깨고 신작 『원청』을 출간한 중국 작가 위화(62)가 15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독자들과 만났다. [사진 푸른숲]

8년의 공백을 깨고 신작 『원청』을 출간한 중국 작가 위화(62)가 15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독자들과 만났다. [사진 푸른숲]

격동의 중국 현대사를 헤쳐 나오며 상처받은 라오바이싱(老百姓), 즉 보통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따뜻한 연민의 시선으로, 때로는 날카로운 비판을 품은 넉넉한 해학으로 풀어내는 작가 위화(余華·62)가 장편 『원청』을 내고 한국을 찾았다. 기다림에 지친 독자들이 그의 이름을 잊어먹기에 충분한 시간인 8년의 공백을 뒤로 한 신작이다. 그 사이 작가는 62세가 됐다. 그의 방한은 비자 발급이 늦어져 무산 위기를 겪고, 출국 직전엔 코로나19에 걸려 고생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성사됐다. 그렇게 어렵사리 찾아온 작가를 반기듯, 서울 광화문에서 한국 독자들을 만나던 시각인 15일 오후엔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그는 “눈이 많이 내리니 『원청』이 생각나는 날” 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원청’은 특별한 뜻이 없는, 무작위로 만들어 낸 지명이다. 실제로도 존재하지 않고 소설 속에서도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으로 그려지는 가상의 도시다. 프랑스어판 제목은 ‘찾을 수 없는 도시’로 번역되기도 했다. 그런데 위화는 한국어판 서문에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원청이 있다’고 썼다. 한 중국 독자가 쓴 감상평에서 따온 말이다. 위화는 “우리 인생에는 말할 수 없는 아름다운 무언가 있는데, 찾을 수 없어도 존재하고, 찾아내지 않는 게 가장 좋다. 세상을 떠날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을 찾았느냐는 결과보다는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 ‘찾았다’는 사실보다 찾는 과정이 더 의미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 그 감상평은 작가의 의중을 제대로 읽은 것이라 할 수 있다.

8년 공백 깨고 신작 선보여

『원청』은 주인공 린샹푸가 아내 샤오메이의 “내 고향은 원청”이라는 말 한마디에 의지해 평생 원청을 찾아다니는 이야기다. 위화가 보기에 린샹푸는 “원청을 찾긴 찾았다.” 린샹푸의 유해를 고향으로 옮길 때 지나는 길에 샤오메이의 묘를 지나는 장면을 두고 한 이야기다.

위화는 『인생』·『형제』·『제7일』에 이은 이번 신작으로 중국의 지난 한 세기를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장편 소설 4편으로 100년의 중국 현대사를 그린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허기를 느끼는 듯 했다. “20세기 중국은 한민족과 마찬가지로 전쟁, 재난 등 너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중국 작가라면 반드시 써야 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해서 썼다. 사실 중국이 겪어온 한 세기 이야기를 모두 담고 싶었는데, 한 편의 소설로 다 담을 수는 없었다.”

100년 격동의 중국 현대사를 그린 위화의 장편 소설 4권. 『인생』 『형제』 『7일』에 이은 이번 신작 『원청』으로 중국의 지난 한 세기를 완성했다는 작가는 “20세기 중국은 한민족과 마찬가지로 전쟁, 재난 등 너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사진 푸른숲]

100년 격동의 중국 현대사를 그린 위화의 장편 소설 4권. 『인생』 『형제』 『7일』에 이은 이번 신작 『원청』으로 중국의 지난 한 세기를 완성했다는 작가는 “20세기 중국은 한민족과 마찬가지로 전쟁, 재난 등 너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사진 푸른숲]

위화가 작품 속에 그리는 중국은 아름다운 모습, 좋은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아름다움을 찾는 과정을 담은 이번 신작도 마찬가지다. 그의 소설 속에 담긴 중국은 날것 그대로의 중국이다. 해외에선 ‘객관적’이란 평가를 받지만, 그의 작품을 펼쳐 보면 중국의 검열을 통과하기엔 아슬아슬한 장면들의 연속이다. 그래서 꼭 물어보고 싶었다.

중국의 나쁜 모습, 부끄러운 과거를 담는 데에 부담은 없나.
“책을 출판하기 전에 늘 출판사에서는 ‘책을 낼 수 있을까’ 갸웃했지만 한 번도 문제없이 출판됐다. 『원청』은 처음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출판사에서 활짝 웃으며 얘기해 줬다. 조금 자극적인 표현도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그대로 펴낼 수 있었다. (당국의 검열 같은 건) 별로 느껴 보지 못했다.”

작가는 담담하게 말했다. “(중국 내에서 나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지만) 사실 나는 욕 먹는 게 즐겁다. 전쟁, 토비(土匪) 이야기를 소설에 많이 쓰지만 젊은 독자들도 할아버지, 할머니 등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기 때문에 다들 공감해 준다. ”

과거 인터뷰에서 “중국은 소설보다 현실이 더 황당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여전히 그렇다. 코로나19로 두 달간 계속된 상하이 봉쇄 이후, 언제 갑자기 봉쇄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베이징 사람들이 사재기를 했다. 그래서 ‘상하이 사람들은 봉쇄된 뒤 물자(배급)를 기다리는데, 베이징 사람들은 물건을 쌓아 놓고 봉쇄를 기다린다’는 우스갯소리가 퍼졌다. 작가로서 한 사회를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일부 독자의 사회에 대한 견해는 바꿀 수 있다”며 “더 많은 독자가 문학을 통해서 사회에 대한 견해를 바꾸게 된다면 사회는 조금씩 변해 갈 것이다.”

작가의 설명대로 신작 『원청』은 굴곡의 중국 현대사를 그린 전작들의 연장 선상에 있다. 그러니 전작들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1992년 작품 『인생』은 문화대혁명(1966~1976) 이전의 이야기다. 부유한 지주의 외아들이었던 푸구이가 도박꾼에게 꼬여 하룻밤에 전 재산을 잃고 농사꾼으로 전락한 인생을 통해 사람이 고난을 견뎌내고, 끝까지 살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묻는 작품이다. 책 소개에서는 ‘운명과의 장난 같은 줄다리기, 늘 끌려다니기만 하는 불공평한 줄다리기’로 푸구이의 인생을 표현하기도 한다. 중국어판 제목은 『살아간다는 것』이다. 중국 장이머우 감독이 1994년 공리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 제47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원청』을 펴내면서 ‘『인생』을 썼던 위화가 돌아왔다’고 광고를 할 정도로 중국 대중의 한 세대를 점령했던, 중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소설 중 하나다. 올해만 80만 부, 30년 동안 2000만 권이 팔렸고 해적판은 5000만 권이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인생』을 쓸 때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
“처음 『인생』을 쓰기 시작했을 때에는 3인칭, 방관자의 시점으로 썼는데 아무리 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1인칭으로 바꾸고 나서 순조롭게 완성했다. 이건 문학의 기법적인 선택이기도 하지만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선택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푸구이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행복한 일도 많았다. 죽긴 하지만 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인생은 즐거움으로 가득 찬 삶이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대통령이 위풍당당해 보이지만 사실 고민이 많을 수도 있고, 거지라도 만원짜리 한 장만 생기면 더없이 행복할 수도 있다. 행복이든 고난이든 모두 다 자기 자신의 감정이고, 다른 사람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물질적인 것으로는 채워질 수 없고, 내가 ‘행복하다’ 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형제』는 문화대혁명 이전의 이야기를 다룬 『인생』에서 이어지는 작품이다. 위화는 “『인생』과 『형제』의 대비는, 유럽에선 100년에 걸쳐 이뤄진 발전을 중국은 40년 만에 겪고 완전히 달라진 두 세계를 보여 주는 것”이라며 “해외에 나가서 내가 어릴 때 겪은 이야기와 문화대혁명 이후 겪은 일을 쭉 이야기하면 ‘이게 한 사람의 경험이 맞냐’며 굉장히 놀란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후 『제7일』에서는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점점 개방되는 중국 사회의 모습을 담아낸다. 『제7일』에서 주인공 양페이가 사고로 죽은 뒤 저승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떠도는 7일간 사회의 부조리를 유머러스하게 전달하거나, 『허삼관 매혈기』 에서 평생 피를 팔아 가족을 지탱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는 작가의 능력은, 그를 해마다 노벨상 시즌이면 거론되는 세계적 작가로 만들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여러차례 거론되는데.
“(후보가 된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광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상을 받은 적이 없는데 무슨 노벨상을 받겠냐”

30년간 2000만 권 판매 베스트셀러 작가

『원청』은 가장 최근작이지만 시기 순으로는 가장 앞선 신해혁명(1911년) 즈음의 역사를 다룬다. 1998년부터 쓰기 시작하며 쌓은 자료 조사 요약 노트만 노트 7권 분량이라고 했다. 23년간 끊임없이 쓰고 고친 결과물에 대해 위화는 “이걸 읽는다고 중국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20세기 역사는 반드시 써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며 “많은 고난이 있던 시기를, 중국인들은 ‘살아온’ 것이 아니라 힘들게 ‘겪어 왔다’는 걸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원청』이 통과하는 신해혁명과 그 이후의 시기를 “현재의 중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시기”라고 평가했다. 위화는 “정부가 역할을 하지 못하는 무정부 상태에서 토비가 날뛰던 시기의 역사가 오늘의 중국에 굉장히 귀한 역사라고 생각한다”며 “『원청』의 주인공들은 특수한 시기를 산 인물들, 스스로 자기 운명을 개척하려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 인물들”이라고 덧붙였다.

1983년 단편소설 ‘첫 번째 기숙사’로 등단한 위화는 내년이면 데뷔 40주년을 맞는다. 자신에게 ‘원청’은 위대한 작품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20대 때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읽으며 ‘나도 나중에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원청을 통해 완성한 것 같다고 말했다.

“40년 동안 작가 인생도 원청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찾진 못했지만 다른 것들을 많이 찾았고 작가로서의 인생은 행운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원청을 찾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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