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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식? 또 다른 주입식 교육"…서울대 기숙대학 논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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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기숙사의 모습. 사진 서울대학교 홈페이지 캡쳐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기숙사의 모습. 사진 서울대학교 홈페이지 캡쳐

 서울대학교가 내년 1학기부터 ‘기숙 대학’을 시범적으로 도입한다. 15일 서울대에 따르면 학교는 현재 관악캠퍼스 기숙 대학 시범사업(LnL·Living and Learning)에 입주할 학부 재학생 선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선발된 재학생 26명은 추후 선발할 신입생 248명과 내년 2월부터 관악학생생활관 906동에서 1년간 함께 생활하게 된다. 서울대는 기숙 대학에 총 13개 반을 두고, 한 반을 신입생 18~20명, 재학생 2명, 대학원생 조교 1명으로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기숙 대학이란 학생들이 거주하는 기숙사가 일종의 별도 단과대가 되어 기존 교과목 외의 강의 등을 실시하는 형태를 일컫는다. 해외에선 대표적으로 영국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가 기숙 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선 연세대가 2013년부터 기숙 대학을 전면 도입해 신입생들이 송도캠퍼스에서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생활하도록 하고 있다.

서울대는 기숙 대학 학생들로 하여금 내년 1학기에 매주 수요일 오후 7~9시에 진행되는 2학점짜리 별도의 토론형 수업을 듣도록 할 계획이다. 수업은 박태호 서울과기대 교양학부 교수, 이현정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등 여러 명의 교수가 2주마다 돌아가며 진행한다. 2학기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주제를 정해 과목을 설계하고 세미나를 진행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서울대는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 정서경 작가 등의 외부 초청 강연을 기획하는 한편, 반별로 체육대회나 세계 음식 문화체험 등 비교과 프로그램을 매달 1~2개씩 제공할 방침이다. 서울대 관계자는 “‘언택트’ 상황에서 대면 인간관계 형성 공백기를 겪어 온 학부생들에게 거주 연계형 교육은 다양한 인간관계와 학문적 관심사 공유의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며 “LnL 시범사업은 2023학년도부터 2027학년도까지 5개년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는 2007년 장기발전계획 보고서에서 ‘거주 대학’을 지향점으로 밝히는 등 기숙대학 도입을 추진해왔지만, 학생들이 2016년 학교 본부를 점거하는 등 강력히 반발하자 사업을 철회했다.

“또 다른 주입식 교육” 우려 목소리도

서울대 관악캠퍼스 정문. 이병준 기자

서울대 관악캠퍼스 정문. 이병준 기자

학교 안팎에선 기숙 대학 도입을 두고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서울대 교수는 기자와 만나 “(교육) 프로그램을 어떻게 할 건지, 그걸 하기 위해 인력을 얼마나 투입할 건지, 예산을 어떻게 만들 건지, 실제 어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할 건지를 다 준비해야 하는데, 학내에서 진지하게 논의된 적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오세정 총장은 지난 2018년 총장 선거 당시 ‘기숙대학 단계적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실무 논의가 시작된 건 지난해 말부터였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명예교수는 서울대 기숙대학에 도입될 프로그램들을 두고 “이 활동들이 기숙형 대학의 특화된 프로그램이라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학생들이 자발적인 활동을 통해 자신의 소질이나 기술, 지식을 키우도록 해야 한다. 대학이 여건을 만들어주는 건 좋지만 직접 개입해 뭔가 집어 넣어주려 하는 건 또 다른 주입식 교육”이라고 말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기숙 프로그램은 주로 전문직종 양성에 필요하다. 낮엔 수업하고 저녁엔 강연이나 봉사활동 등을 통해 소명의식을 가진 전임 교사 등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 교육대학이나 의대, 사관학교 등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기숙 대학 실시의 목적이 뚜렷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기자가 만난 서울대 학생 대부분은 기숙 대학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숙대학 도입 논의에 참여했던 김지은 전 총학생회장은 “관악캠퍼스에서 기숙대학을 실시할 때 재학생들의 (기숙사) 수용률이 줄어드는 문제점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이런 점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기숙대학 시범사업은 적절하다”고 말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해외 유수 대학 사례의 장점을 모아 대학생활과 교육에 최적화된 서울대만의 기숙 대학 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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