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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균 접촉해도 안 걸리는 사람…비밀은 장 점액에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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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3월 예멘 사나에서 콜레라 예방을 위해 노동자들이 소독을 실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19년 3월 예멘 사나에서 콜레라 예방을 위해 노동자들이 소독을 실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설사와 탈수 현상으로 심하면 사망에 이르는 콜레라.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연간 130만~400만 명의 환자가 발생, 2만1000~14만3000명이 목숨을 잃는 심각한 수인성 전염병이다.

올해도 중동의 시리아·레바논,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 카리브 해 섬나라 아이티 등지에서는 콜레라가 창궐했다.

그런데 절반 정도의 사람은 콜레라균에 노출돼도 콜레라 증상을 나타내지 않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왜 그럴까.

바로 사람의 장(腸) 점액에 들어있는 성분 때문이다.
이 성분이 콜레라 발병과 관련된 유전자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미국 MIT와 스탠퍼드 대학 등의 연구팀은 13일 세계 유명 학술지인 '엠보(EMBO·유럽 분자생물학 기구)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점액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O-글리칸 성분이 콜레라 감염을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콜레라를 일으키는 비브리오 균(Vibrio cholerae) 균. [위키피디어]

콜레라를 일으키는 비브리오 균(Vibrio cholerae) 균. [위키피디어]

점액 속 O-글리칸 성분 때문

박테리오파지에 감염되면서 독소를 생산하게 되는 비브리오 균. [자료: EMBO Journal, 2022]

박테리오파지에 감염되면서 독소를 생산하게 되는 비브리오 균. [자료: EMBO Journal, 2022]

연구팀은 "이 성분은 병원균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콜레라 독소 유전자가 발현하는 것을 차단한다"며 "향후 글리칸 성분을 장에 전달해 콜레라 감염을 예방하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리칸(glycan)은 포도당 같은 다양한 단당(單糖)이 서로 사슬처럼 연결된 것을 말하는데, 글리칸이 단백질에 연결되는 방식에 따라 O-글리칸과 N-글리칸으로 구분된다.
O-글리칸은 당 분자가 단백질의 세린(Ser) 또는 트레오닌(Thr) 아미노산 잔기에 부착된 경우다.

점액 속의 이 O-글리칸이 콜레라균이 박테리오파지에 감염되는 것을 막는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콜레라를 일으키는 비브리오(Vibrio cholerae)는 독소를 생산하는 변이주(strain)와 생산하지 않는 변이주로 구분된다.

독소를 생산하지 않는 균이 CTX파이(CTXφ)라는 박테리오파지(세균 감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그때부터 독소를 생산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세균이 만든 독소가 사람의 대장 상피세포를 공격하면 콜레라 증상이 나타난다.

박테리오파지 수용체 유전자 억제

비브리오 균을 박테리오파지 감염으로부터 막아주는 다양한 O-글리칸들. 글리칸 중에서도 코어 2(Core 2) 그룹에 속하는 것들이 뚜렷한 감염 방지 효과를 나타낸다. [자료: EMBO Journal, 2022]

비브리오 균을 박테리오파지 감염으로부터 막아주는 다양한 O-글리칸들. 글리칸 중에서도 코어 2(Core 2) 그룹에 속하는 것들이 뚜렷한 감염 방지 효과를 나타낸다. [자료: EMBO Journal, 2022]

박테리오파지가 콜레라균에 감염하는 부위는 세포 표면의 선모(線毛, pilus)의 TCP 수용체다.

TCP 수용체가 없으면 박테리오파지는 세균 세포 안으로 침투하지 못하고, 콜레라균은 독소를 생성하지 못한다.

연구팀은 글리칸이 TCP 수용체에 영향을 준다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진행했다.
실제 실험에서는 사람과 유사한 돼지 장에서 분리한 점액 성분을 사용했다.

연구팀은 0.5% 농도의 점액 성분을 투여했을 때 박테리오파지의 세균 감염이 억제되는 것을 확인했다.
O-글리칸은 TCP 수용체를 생산하는 콜레라균의 유전자를 최대 30분의 1 수준으로 억제했다.

개별 단당류를 투여했을 때는 박테리오파지의 감염을 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로부터 클리칸의 복잡한 사슬구조가 중요하다는 것도 확인했다.
글리칸은 단당의 종류·수에 따라 코어(core) 1 또는 코어 2 구조를 가진 그룹으로 구분되는데, 코어 1보다는 복잡한 구조를 지닌 코어2가 콜레라 감염을 차단하는 효과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소 유전자 발현도 막아 

유니세프 보건요원들이 지난 10월 18일 레바논 북부 아크카르 주 바니네 마을에서 발생한 콜레라 발병과 관련해 시리아 난민 캠프의 텐트와 욕실을 소독하기 위해 염소와 물을 섞고 있다. AP=연합뉴스

유니세프 보건요원들이 지난 10월 18일 레바논 북부 아크카르 주 바니네 마을에서 발생한 콜레라 발병과 관련해 시리아 난민 캠프의 텐트와 욕실을 소독하기 위해 염소와 물을 섞고 있다. AP=연합뉴스

점액의 글리칸 성분은 독소 자체를 생산하는 유전자(ctxA 및 ctxB)도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브리오 콜레라균이 사람의 장내 상피세포에 감염하면, 상피 세포는 사이클릭 AMP(cAMP)라는 분자를 과잉 생산하기 시작하고, 이로 인해 엄청난 양의 물을 배출해 심각한 설사를 일으킨다.

연구팀은 글리칸을 첨가해 '무장해제'한 비브리오 균이 접촉하더라도 상피세포가 사이클릭 AMP를 생성하지도 않고, 탈수 현상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발견했다.

연구팀은 "비브리오 균에 노출된 사람 중에서 절반 정도만 실제 콜레라에 걸리는데, 이는 점액이라는 방어체계가 손상되고, 특정 구조를 지닌 글리칸이 부족할 때 감염이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감염되는 사람 역시 점액이 없지는 않기 때문에 실제 어떤 차이 때문에 감염이 일어나는지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콜레라 예방·치료에 희망

지난달 11일 아이티 포르토프랭스에서 '국경 없는 의사회'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한 여성이 콜레라에 걸린 딸 주위를 맴도는 파리를 수건으로 쫓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11일 아이티 포르토프랭스에서 '국경 없는 의사회'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한 여성이 콜레라에 걸린 딸 주위를 맴도는 파리를 수건으로 쫓고 있다. AP=연합뉴스

연구팀은 항생제와 함께 글리칸을 감염 부위에 전달하는 방법에 관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글리칸을 폴리머나 나노입자에 담아 장으로 보낼 수 있는지를 탐색하고 있다.

한편, 박테리오파지는 비브리오 콜레라균 외에 다른 여러 병원균의 병독성에도 기여한다.
살모넬라 균(Salmonella typhimurium)과 보툴리누스 균(Clostridium botulinum), 장출혈성 대장균(EHEC) 등에서는 세균 DNA에 끼여 들어가 있던 박테리오파지 유전자가 독소 생산에 관여한다.

연구팀은 "이들 박테리오파지 관련 독성 유전자 발현에 점액 글리칸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파악하는 것도 향후 연구의 중요한 영역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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