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채나 육류 등이 병원성 대장균에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박테리오파지를 활용하는 방법이 관심을 끌고 있다.
세균을 공격하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 파지)는 사람에게는 무해하다.
미국 식품의약처(FDA)에서도 일부 파지를 식품에 사용하도록 허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캐나다 맥마스터대학 연구팀은 5일(현지 시각)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국제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파지를 활용, 식품의 세균을 죽이는 획기적인 방법을 공개했다.
파지를 엮어 파지 담는 그릇 만들어
연구팀은 우선 파지 가운데 M13 파지를 이용해 아주 미세한 구슬인 '마이크로 젤(microgel)'을 만들었다.
마이크로젤은 실제 대장균을 죽이는 별도의 파지를 담는 그릇 역할을 하게 된다.
파지 M13은 실처럼 가늘고 길게 생겼다. 폭은 6.6nm(나노미터, 1nm=10억분의 1m)이고, 길이는 880nm다.
유전자 DNA를 단백질 껍질이 둘러싼 구조다.
연구팀은 화학물질을 첨가해 M13의 단백질 껍질을 서로 붙였다.
연구팀은 반응을 시킨 M13 용액을 벌집 모양의 틀(주형)에 넣어서 굳혀 구슬을 만들었다.
붕어빵을 만들 듯이 폴리스타이렌 필름으로 만든 주형을 이용해 지름 20㎛(마이크로미터, 1㎛=100만분의 1m) 안팎의 작은 구슬 형태의 마이크로젤을 만든 것이다.
상추·육류에서 항균 효과 확인
연구팀은 마이크로젤에 대장균을 죽이는 파지 HER262를 담아서 '항균 작용'이 일어나는지를 확인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상추 1g당 100만 마리가 되도록 병원성 대장균(O157:H7)을 뿌린 다음, 여기에 다시 파지 HER262를 담은 마이크로젤을 분무했다.
그런 다음 상추를 랩으로 덮고 9시간 동안 실온에 둔 다음, 상추에서 세균을 떼 숫자를 측정했다.
마이크로젤을 처리하지 않은 상추는 9시간 후 g당 대장균이 3300만 마리에 도달했지만, 마이크로젤을 뿌린 상추는 세균이 g당 100마리 미만으로 거의 감지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떨어졌다. 최대 10만 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한 것이다.
쇠고기 스테이크에 대해서도 비슷한 실험을 진행했다.
물만 뿌린 고기에는 대장균이 g당 2억5000만 마리가 검출됐는 데 비해 마이크로젤을 뿌린 고기에는 g당 대장균이 140만 마리로 줄었다.
이는 마이크로젤이 대장균의 99.44%를 죽였다는 의미다.
마이크로젤 스프레이 1mL에는 3만 개의 마이크로젤이 들어있었고, 마이크로젤 하나 속에는 38만 개 이상의 HER262 파지가 들어있는 것으로 계산됐다.
식품 영향 없이 세균 효과적 제거
연구팀은 파지를 식품에 뿌리면 다른 처리를 하는 것보다 식품에 영향이 거의 없다고 설명한다.
또, 파지 배양액을 직접 뿌리는 것보다 마이크로젤 형태로 뿌리는 경우 장점이 많다고 덧붙였다.
우선, 파지를 직접 뿌리는 경우 건조해져 생물 활성을 잃어버릴 수 있는데, 마이크로젤 형태로 뿌리면 수분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젤을 이용할 경우 좁은 면적에 아주 높은 농도의 파지를 투여할 수 있다.
또, 다양한 종류의 파지를 함께 투여할 수 있고, 항체나 분자량이 작은 화학물질 등 항균물질을 추가로 실어 보낼 수도 있다.
대장균뿐만 아니라 살모넬라나 리스테리아 등 다른 식중독을 유발하는 세균에 대해서도 이들을 공격하는 파지를 개별적으로 또는 혼합해서 마이크로젤에 담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젤은 크기가 큰 전달체에 비해 표면적이 더 커서 박테리오파지와 세균 숙주 사이의 접촉 면적을 증가시켜 항균 효능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세계적으로 매년 6억 명이 오염된 식품 섭취로 인해 질병에 걸리고 연간 42만 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대장균 오염이 주요 요인으로 간주한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항균 마이크로젤이나 패치를 식품 등에 활용한다면 세균 오염을 효과적으로 억제해 식중독 감염과 사망 피해, 그와 관련된 경제적 손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