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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석만의 시선

흔들리는 강철대오, MZ노조의 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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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윤석만 논설위원

윤석만 논설위원

민주노총이 흔들린다. 화물연대의 16일간 총파업이 소득 없이 끝나고, 계획했던 총력투쟁 또한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대형노조의 불참으로 동력을 잃었다. 여기에 포스코노조는 아예 금속노조 탈퇴를 결정했다. 민주노총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강철 같던 투쟁 대오가 흐트러진 건 무엇 때문일까.

이는 MZ노조의 부상과 관련이 깊다. 이들은 586세대가 주축인 민주노총의 정치적이고 강경한 투쟁 방식을 싫어한다. 대신 탈이념적이며 실용·합리적인 소통을 중시한다. 지난달 30일 공공부문 파업의 시작점이었던 서울 지하철 노조의 총파업이 하루 만에 끝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득 없이 끝난 화물연대 총파업
강경·정치투쟁 청년 지지 못 받아
14개 MZ노조 협의체 구성 첫발

민주노총 산하의 서울교통공사 제1 노조는 강경투쟁을 고수했다. 상급단체인 공공운수노조의 현정희 위원장까지 찾아와 파업을 독려했다. 그러나 MZ세대가 주축인 ‘올바른노조’가 끝까지 저지하며 동력을 떨어뜨렸다. 이들의 조합원 수(2000여명)는 제1 노조(1만 여명)의 20%밖에 안 되지만 대오를 흔들기엔 충분했다.

‘올바른노조’는 그 동안 ‘한미연합훈련 반대’ 같은 민주노총의 정치투쟁에도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시나브로 이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며 지난해 8월 노조 설립 당시 350명이었던 조합원은 지금 6배가 됐다. 창립 직후 만났던 송시영(30) 위원장은 “‘노동자의 권익 대변’에 집중하겠다”고 다짐했었다. 11일 그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봤다.

파업에 불참한 이유는.
“우리는 교섭권이 없어 교섭 주체가 아니다. 그러나 제1 노조의 파업은 명분이 없다고 판단했다. 2018년 불법 정규직 전환으로 공사 정원이 1600여명 늘어나 이 때문에 사측이 인력감축안을 내놨다. 기존 노조원들이 우리를 ‘변태 일베’나 ‘사측의 개’라고 욕했지만, 우리는 노조의 본질에만 충실하며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어떤 성과가 있었나?
“‘메기 효과’다. 예전엔 직원들이 민주노총의 말을 절대적으로 여겼지만 지금은 맹신하지 않는다. 정치적 선동에 ‘속았다’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게 우리 조합원이 된 40·50대만 200명이 넘는다. 쟁의 방식도 국민적 공감대를 얻으며 주장해야지, 폭력적이고 강경 투쟁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결국 노조에 대한 인식만 안 좋아질 뿐이다.”
20·30대는 왜 민주노총에 부정적인가?
“‘이석기 석방’ 같은 정치적 구호로 투쟁하는데, 노조는 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펼치면 그만이다. 서울시장·대통령 선거 때는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 서명과 선거인단 투표까지 촉구했다. 특정 후보를 대놓고 지지했는데, 정략적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면서 기득권은 내려놓지 않고 자기 생각만 옳다며 ‘꼰대’처럼 남에게 강요한다.”

송 위원장의 말처럼 MZ세대는 민주노총의 강경하고 정치적인 투쟁에 염증을 느낀다. ‘민주’라는 이름을 팔아 파업 불참자에게 쇠구슬을 던지고, ‘객사하라’는 현수막까지 내건다. 툭하면 생산현장을 마비시켜 산업근간을 흔들고 비노조원들의 밥줄까지 끊으려 한다. 민주노총이 MZ세대에게 ‘내로남불’의 정치집단으로 보이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20·30대 노동자들이 독자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10일 14개 기업의 MZ노조가 협의체 구성을 위한 첫발을 떼는 등 새로운 노동운동의 싹을 틔우고 있다. 교육계에서도 MZ세대가 중심인 교사노조연맹이 민주노총 산하인 전교조 회원 수를 따라잡았다.

이는 민주노총의 시대가 막을 내려가고 있음을 뜻한다. 1960~70년대 영국에서 교회·근위대와 함께 해럴드 맥밀런 전 총리가 ‘언터처블(untouchable)’로 꼽았던 탄광노조도 그랬다. 총파업으로 1969·1974·1979년 집권 내각을 무너뜨릴 만큼 위세가 대단했지만, 1984년 아서 스카길 위원장이 주도한 51주 파업을 끝으로 와해되다시피 했다.

강경한 정치투쟁으로 변질된 노동운동은 파국으로 끝난 경우가 많다. 노조 본연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국민 다수로부터 외면당했기 때문이다. 한때 민주화 운동과 흐름을 같이 한 민주노총도 시대정신을 다해 간다. 지금은 제 주장만 내세우고 떼법을 동원하며 울타리 밖 노동자들과 청년 세대의 진입을 가로막는 기득권으로 비칠 뿐이다.

움베르트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서 “선지자를 두렵게 여기고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라”고 했다. 제 생각만 옳다는 독선과 선의를 가장한 위선은 “많은 사람을 같이 죽게 하거나, 때로는 자기 대신 죽게 만들기 때문”이다. MZ세대가 이를 잘 안다. 흔들리는 강철대오는 이제 한낱 덧없는 장미의 이름뿐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