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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빈살만 안보·경제 공조…“중동 내 미국 영향력 쇠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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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3박 4일간의 사우디아라비아 순방 일정을 마치고 지난 10일 귀국했다. 시 주석은 순방 기간 17개 아랍 국가의 정상급 인사와 연쇄 회담을 갖고 아랍권과의 우호 관계를 다졌다. CNN은 이날 “시 주석의 사우디 국빈 방문으로 수년에 걸쳐 진전된 양국 관계가 절정에 달했다”면서 “중국과 아랍 국가들은 파트너십 강화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다”고 평가했다.

시 주석은 지난 9일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과 4000단어가 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양국이 전략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고, 에너지·정보통신·인프라를 망라하는 30개 이상의 협약을 체결한다는 내용이다. 협약의 경제적 가치는 1100억 리얄(약 39조2600억원)에 달한다고 외신은 전했다. 양국은 또 이란 핵 문제, 예멘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주요 의제에 대해 뜻을 같이했다.

시 주석은 전날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의 회담에서 양국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협정에 서명했다. 또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와 사우디 국책 사업 ‘비전 2030’ 협력 강화에도 합의했다.

시 주석이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가 흔들리는 틈새를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과거 석유의 안정적 수급을 원하는 미국과, 안보에서 도움을 원하는 사우디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최근 중동에서 미국의 안보 보장이 흔들리면서 사우디 등 아랍 국가들은 미국과의 전통적인 합의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고 CNN은 전했다.

시 주석은 아랍 국가들에 석유와 가스 수입 확대를 약속하면서 안보와 국방 분야의 협력 의지를 피력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석유 구매국이다.

시 주석은 석유와 가스를 위안화로 구매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중국이 원유 거래 시 미국 달러화로 결제하는 관행에 균열을 일으키기 위한 시도로 해석된다. 아직 사우디 등 걸프 산유국들은 위안화 결제에 동의하진 않았다. 중동 정치·경제 평론가인 알리 시하비는 “중국은 사우디의 최대 고객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면서 “위안화 결제가 가까운 시일 내 시행되진 않겠지만, 궁극적으로는 허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과 사우디는 인권 문제로 서방의 비판을 받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시 주석은 이러한 연결고리를 이용해 사우디 등 중동 국가들과 ‘내정 불간섭 원칙’에 합의했다. 이에 사우디 등 아랍 지도자들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고, 홍콩·신장위구르자치구 문제에서 중국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 주석은 팔레스타인의 독립국 건설, 유엔 정식 회원국 가입을 지지하는 등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원을 지속해서 늘리겠다고 밝혔다. 에너지 정보 회사인 에너지 인텔리전스의 석유수출국기구(OPEC) 담당 수석특파원 아메나 바크르는 “중국은 다른 서방 국가보다 훨씬 덜 비판적이면서 강력한 파트너”라고 말했다.

미국은 “각 나라는 각자 관계가 있으며, 시 주석이 중동에 간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샤오진 차이 아랍에미리트 샤르자대 교수는 “(시 주석의) 이번 방문으로 중동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실질적으로 확대한 것은 아니지만, 이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지속해서 쇠퇴한다는 신호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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