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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농협 적금에 5000억 폭격…초유 사태 부른 '디지털 금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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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너무 빨라진 '디지털 금융'이 양날의 칼이 됐다. 고객 유치가 쉬워져 좋지만, 너무 많이 몰리거나 쉽게 떠나버리기도 해 금융권이 골치를 썩이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고금리를 빠르게 쇼핑하는 ‘금리 노마드족’을 작은 상호금융이 감당하지 못해 해지를 요청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지난 한 주간 동경주농협·남해축산농협·합천농협, 그리고 사라신협이 고객들에게 적금 해지를 요청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오프라인 전용 고금리 상품을 온라인으로 팔거나, 온라인 비대면 상품에 계좌 개수 제한이나 최대 가입 한도를 두지 않다 보니 너무 많은 돈이 몰려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이제 시골 작은 농축협의 특판 상품까지 온라인 재테크 카페에서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여기에 현장에 갈 필요가 없다 보니 과거보다 예상하지 못할 속도로 전국에서 돈이 몰린다. 실제 동경주농협은 특판 상품을 연 지 단 하루 만에 만기 시 돌려줘야 할 돈이 5000억원 수준으로 몰렸다.

금융감독원 측은 "10명이 되지 않는 작은 조합에 비대면으로 큰돈이 몰려 문제가 된 상황"이라며 "비대면이란 환경 변화에 더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했는데 부족한 부분이 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7일 남해축산농협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과문 캡쳐.

7일 남해축산농협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과문 캡쳐.

금융회사 입장에선 비대면으로 편해진 고객 유치가 양날의 칼이 되고 있다. 최근까지 저축은행은 하루에도 금리를 경쟁적으로 올리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금리를 실시간으로 비교하며 0.1%포인트라도 높으면 예금을 옮기는 금리 노마드족 때문이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최근에 가입한 예금을 해지하는 사람도 있고, 무엇보다 만기가 돌아올 때 금리가 높은 곳으로 옮기기 때문에 무리해서라도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비대면 거래의 가속화에 따른 이런 '머니무브'는 금융 정책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당초 올해 말 선보이기로 했던 '온라인 예금상품 중개업' 출시를 내년 상반기로 미뤘다. 예금 상품 중개업은 알고리즘 분석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예금상품을 비교·추천해주는 서비스다. 금융위 측은 "금융권의 유동성 관리 어려움이 증대되고 있는 만큼 출시 시점을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비교 서비스가 금리 노마드족을 자극해 과도한 자금 이동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5년 12월 비대면 계좌개설이 허용된 이후 은행권의 비대면 계좌개설 비율은 2017년 44.4%(1685만건)에서 2021년 76.1%(3533만건)로 수직 상승했다. 국민 10명 중 8명은 비대면으로 계좌를 만든다는 의미다.

금융당국은 비대면 가속화로 인한 빨라진 자금 이동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 본다. 다만 비대면 금융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업계가 내부 시스템을 다시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번 특판 사태는 체계적인 상품 관리 시스템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어플리케이션 등 외연 확대에만 치중하지 말고 내부를 점검할 때"라고 말했다.

한편, 금감원은 특판 해지 요청 사태를 본격적으로 점검하기로 했다. 금감원 측은 "시스템적으로 추가 보완할 수 있는 방식이 있는지를 농협·신협·수협·새마을금고·산림조합 등 모든 상호금융협회에 보고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우선 농협중앙회는 지난 7일부터 지역 조합이 기본금리와 우대금리를 합쳐 연 5% 이상의 예·적금 상품을 팔 경우 중앙회의 승인을 거치도록 조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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