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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처럼 가고 싶다” 바람의 건축가 예술혼 꽃피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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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7호 18면

제주 ‘유동룡미술관’ 개관

이타미 준(유동룡)이 건축한 4개의 제주 미술관 프로젝트 중 석(石) 미술관. [사진 김용관]

이타미 준(유동룡)이 건축한 4개의 제주 미술관 프로젝트 중 석(石) 미술관. [사진 김용관]

지난 6일 제주도 한림읍 용금로 저지예술인마을에 재일교포 건축가 유동룡(예명 이타미 준. 1937~2011)을 기리는 ‘유동룡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1937년 재일교포로 태어난 유동룡은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를 받고, 일본의 최고 건축상인 무라노도고상 아시아 문화환경상 등을 수상한 세계적인 건축가다. ‘이타미 준(ITAMI JUN)’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며 끝까지 귀화하지 않았던 그는 건축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그런 유동룡에게 제주도는 제2의 고향이다. 누구보다 제주의 바람과 하늘, 대지와 바다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던 그는 하늘에서 보면 잘 영근 포도송이처럼 보이는 ‘포도호텔’을 비롯해 방주교회, 수(水)·풍(風)·석(石) 미술관, 두손(지중·地中) 미술관을 지었다. 모두 제주를 찾는 이들에게 유명한 곳이다.

건축가 딸 유이화씨가 설계 도맡아

이타미 준(유동룡)이 건축한 4개의 제주 미술관 프로젝트 중 두손(지중) 미술관. [사진 김용관]

이타미 준(유동룡)이 건축한 4개의 제주 미술관 프로젝트 중 두손(지중) 미술관. [사진 김용관]

2003년 한 인터뷰에서 “제주도 바닷가에 조그만 작업실을 짓고 파도처럼 가고 싶다”고 했던 유동룡의 바람처럼 제주 한귀퉁이에 ‘유동룡미술관’이 살포시 들어섰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조응하는 방식, 지역 풍토와 역사를 고민하며 건축을 풀어갔던 유동룡의 철학에 바탕을 둔 미술관 설계는 유동룡의 딸이자 건축가인 유이화(ITM 유이화 건축사무소 대표)가 맡았다.

연면적 약 675㎡, 지상 2층 규모로 설계된 건물 내부에는 3개의 전시실과 라이브러리, 교육실, 아트숍, 티 라운지가 있다. 개관을 맞아 준비한 첫 전시는 유동룡의 40여년 건축 작업을 회고하는 ‘바람의 건축가, 이타미 준’. 재일교포 건축가로 유동룡이란 본명 대신 예명 이타미 준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을 회고하며, 건축가인 동시에 글과 그림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였던 아티스트로서의 유동룡을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됐다.

건축가 유동룡(예명 이타미 준)

건축가 유동룡(예명 이타미 준)

전시공간뿐 아니라 1층 라이브러리와 티 라운지에서도 유동룡의 세계와 조우할 수 있다. ‘먹의 공간’이라는 이름의 라이브러리에선 유동룡이 쓴 책과 그가 영감을 받은 작가들의 책을 볼 수 있다. 티 라운지 ‘바람의 노래’에선 평소 차를 즐겨 마시며 자신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스레 차를 대접했던 유동룡의 마음처럼, 제주도 녹차를 비롯해 말차·홍차와 차를 기반으로 준비한 다양한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 아트숍에선 유동룡의 건축 드로잉으로 만든 아트 프린트 작품과 의자, 젊은 창작자들이 유동룡에게서 받은 영감으로 만든 상품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아트 상품을 판매한다. 유이화 대표는 “건축가를 비롯해 젊은 아티스트들을 응원하고 그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방주교회. [사진 김용관]

방주교회. [사진 김용관]

유동룡미술관에는 유동룡의 건축물을 촬영한 여러 장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는데 그중 김용관 건축사진가의 사진도 있다. 그는 이번 미술관 개관에 맞춰 사진집도 출간했다. 유동룡이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방주교회, 수(水)·풍(風)·석(石) 미술관, 두손(지중·地中) 미술관을 완공했을 때 촬영한 사진들만 묶은 것이다. 유동룡의 건물이 피사체가 되고, 그 건물을 김용관의 카메라가 담았으니 두 사람의 혼신의 노력이 함께 담긴 사진집이다. 그래서 제목도 『이타미 준·김용관-사진으로 쓰는 서신』이다.

국내 건축가들이 가장 사진 찍고 싶어 하는 사진가지만 개인 사진집을 낸 건 처음인데,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김용관을 만나기 전까지 유동룡은 일본이든 한국이든 자신의 건축물 사진은 당대 일본 최고의 건축사진가 무라이 오사무에게만 맡겼다. 그런데 김용관을 만나고부터 국내 건축사진은 김용관의 몫이 됐다.

6일 개관한 ‘유동룡미술관’ 외관. [사진 김용관]

6일 개관한 ‘유동룡미술관’ 외관. [사진 김용관]

사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매끄럽지 못했다. 2006년 건축잡지 ‘공간’에서 유동룡 특집을 꾸밀 때, 편집기자가 김용관을 추천했다. 유동룡은 우선 만나서 건축 전반에 관한 이야기부터 하자고 제안했지만 김용관은 이를 거절하고 자신의 해석대로 사진을 찍겠다 고집을 부렸다. “유 선생께 뭔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건데, 그걸 받아주신 거죠.(웃음) 유 선생님도 초창기에 무라이 선생에게 무작정 가서 ‘내 건축 사진을 찍어 달라’ 청을 했다더군요. 젊은 건축가의 패기를 무라이 선생이 지켜본 것처럼, 저의 사진을 지켜봐주신 거죠. 나중에 들었는데 ‘내가 아무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걸 알고 찍었지’ 칭찬하셨대요.”

풍·석 미술관 사진 중 겨울 눈밭 배경의 사진에도 각별한 이야기가 있다. “촬영은 여름에 다 끝났는데, 겨울 아침 TV뉴스에서 제주에 폭설이 내렸다는 거예요. 초자연이 만든 설경 안에 건물이 무심히 들어앉은 모습이 떠오른 순간 바로 공항으로 달려갔죠. 실제로 그곳에 눈이 쌓였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그런데 눈앞에 내가 생각한 그 장면이 실제로 있더라고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같은 느낌이랄까. 최고 경지에 오른 분이 오히려 힘을 빼고 단정하고 담백하게 지은 건축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눈밭을 배경으로 하면 그 분위기를 더욱 살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건축물 오래 바라보면 확신 생겨”

건축사진가 김용관

건축사진가 김용관

후에 눈밭 사진을 본 유동룡은 “건축가조차 상상하지 못한 장면을 선물해줬다”며 김용관을 몇 번이나 안아줬단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타미 준 회고전’이 열렸을 때 관람객의 발길이 오래 머물었던 사진도 바로 이 눈밭 사진이다.

“지금도 여러 건축가의 작품을 찍으면서 ‘이럴 때 이런 각도로 촬영하면 참 멋있겠다’ 늘 상상은 하지만, 그 순간 내가 거기 있어야 가능한 일이죠. 그래서 유동룡 선생님과 함께한 이 사진집 사진들은 사진이 좋고 나쁨을 떠나 ‘살아생전 이런 경험을 또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소중해요.”

김용관은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넘어오는 변화를 체감한 사진가다. 더 좋아진 장비로서 디지털 카메라를 받아들였지만, 피사체를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은 여전히 처음 사진을 배울 때처럼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한다. 돌·나무 등의 물성에 충실하며 자연과 충분히 교감하는 데 정성을 다했던 유동룡처럼, 김용관 역시 건물 하나를 찍을 때마다 오랫동안 충실하게 건물을 들여다보며 머릿속으로 수십 장의 밑그림을 그린다. “이용자·설계자의 입장을 각각 그려보는 거죠. 그렇게 오랫동안 바라보다 어느 순간 ‘이 그림이다’ 확신이 생기면 셔터를 누르죠.”

많은 사람들이 김용관의 사진을 보면 ‘담백함’과 ‘힘’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고 한다. 정직하게 찍은 정면 사진들에서 거침없는 담대함을 넘어 담백함을 느끼고, 숙고 끝에 찾아낸 각도와 앵글로 찍은 디테일(클로즈업) 컷에선 김용관만의 힘을 느끼게 된다는 것. 사진집 『이타미 준·김용관-사진으로 쓰는 서신』에서 기록을 넘어 예술이 된, 김용관 사진의 진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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