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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주체 못할 뭔가 있다면” 베니스 2관왕 오른 식인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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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본즈 앤 올’로 급부상한 신인 테일러 러셀(왼쪽), 공동 주연 티모시 샬라메.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본즈 앤 올’로 급부상한 신인 테일러 러셀(왼쪽), 공동 주연 티모시 샬라메.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올 9월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신인배우상 2관왕을 차지한 영화 ‘본즈 앤 올’이 지난달 30일 개봉했다. 이탈리아 출신 거장 루카 구아다니노가 할리우드 청춘 스타 티모시 샬라메와 다시 뭉친 작품이다.

두 사람이 처음 함께해 미국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은 첫사랑 로맨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에, 구아다니노 감독이 동명의 이탈리아 고전 영화를 리메이크한 신체 훼손 공포물 ‘서스페리아’(2019)를 절묘하게 더한 듯한 로드무비다. 2016년 미국도서관협회 주관 알렉스상을 받은 미국 작가 카미유 드 안젤리스의 동명 소설이 토대가 됐다.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1980년대 경제 호황기를 무대로 사회에서 ‘허용되지 못한’ 부적응자들의 욕망을 카니발리즘(동족포식)에 빗대 표현했다.

주인공은 아빠와 단둘이 사는 16살 소녀 매런(테일러 러셀). 매런의 입속에서 사라진 보모의 고막이 발견됐을 때부터 도망치는 삶이 시작됐다.

새로 전학 간 학교의 여자아이들과 한 아이의 집에 모인 그날 밤에도 매런은 친구가 될 뻔한 소녀의 매니큐어 바른 손을 다정하게 애무하다 맹수로 돌변한다. 입과 턱이 피투성이가 된 채 돌아온 딸을 아빠는 차에 부리나케 실어 최대한 먼 동네로 도망친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매런이 깨어나기 전 딸에게서 달아난다. 매런에게 식인 습성을 물려준 엄마에 관한 녹음 테이프만 남긴 채.

이후 영화는 엄마를 찾아 나선 매런이 뜻밖에 자신과 ‘같은 냄새’를 풍기는 식인 동족 ‘이터’들을 차례로 만나는 여정을 쫓는다. 괴이한 방랑자들 가운데 붉은 고수머리의 청년 리(티모시 샬라메)는 매런과 동행하며 특별한 관계가 된다.

아직 부모에게 정신적으로 얽매인 나이의 두 사람이, 인육으로 허기를 채우는 장면들은 혐오스럽기보단 위태롭게 다가온다. 매런과 리는 먹잇감을 신중하게 고른다. 가급적 기다리는 가족이 없는, 자신들과 같은 사회 부적응자·외톨이를 잡아먹으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사냥 과정은 당대 미국의 신자유주의 돈 잔치에서 소외돼있던 힘없고, 늙고, 병든 존재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홀로 쓸쓸히 죽어갔을 이들이 자신을 먹으려는 자들에 의해 비로소 발견된다.

구아다니노 감독은 “매런을 오랜 미국 문학 전통 속 방랑자, 구도자로 봤다. 매런은 80년대의 소외되고 권리를 박탈당한 어린 소녀이자, 발견의 동력이 되는 인물의 상징적 면모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우리 인간도 이성과 본능이 공존하는 ‘동물’이다. 이 영화가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만일 내 안에 내가 주체하지 못하는 뭔가가 있다면 이 감정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다른 이의 시선 안에서 언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상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화 속 1980년대 미국 중서부 도시들은 실제 메릴랜드·오하이오·네브래스카·인디애나·켄터키까지 다섯 개 주에서 촬영했다. 타인의 피와 살로 굶주림을 채우는 본능의 순간에도 인물들의 깊은 고독감을 표현해낸 배우들의 연기도 볼거리다.  ‘스파이 브릿지’(2015)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마크 라이런스, ‘듄’ ‘작은아씨들’ 등 장르를 넘나드는 티모시 샬라메 뿐 아니라, 이번 영화로 베니스영화제 신인배우상을 받은 테일러 러셀의 감정 연기도 빼어나다. 상영등급은 청소년 관람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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