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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주유소 100곳 넘을 듯…정유·철강도 업무개시 명령 초읽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일 경기도 수원시의 한 주유소에 휴업 안내문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일 경기도 수원시의 한 주유소에 휴업 안내문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계속해서 공급을 채근하고 있는데 회사에선 ‘언제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답변만 돌아오네요. 더는 영업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직원들에게 내일 출근하지 말라고 했어요.”

서울 서대문구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A씨는 4일 중앙일보와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푸념했다. 그는 화물연대 파업 여파로 기름을 구하지 못하자 이날 주유소 문을 닫았다. 지금으로선 내일도 사정이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인근의 또 다른 주유소도 사흘 전에 겨우 구했던 휘발유가 또다시 바닥을 드러내면서 두 번째 ‘개점휴업’에 들어갔다.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 이후 물동량이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항만과 시멘트 업계와는 달리 정유·철강·석유화학 업종에서는 ‘물류 마비’에 따른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유·철강·석유화학 등에서만 약 3조원 규모의 출하 차질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특히 전국 주유소의 기름 수급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주말을 넘기면서 기름이 동난 주유소는 전국적으로 100곳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기준으로 전국의 재고 소진 주유소는 총 88곳이었다. 서울·경기 54곳 등 수도권이 가장 많았으며 강원 10곳, 충남 10곳, 충북 6곳 등이었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실제로는 재고가 바닥났지만 집계에 제대로 포함되지 않은 주유소를 포함하면 재고가 바닥난 곳은 100곳이 넘을 듯하다”며 “처음 우려했던 것보다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4일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 컨테이너 야적장에 컨테이너들이 쌓여있다. 송봉근 기자

4일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 컨테이너 야적장에 컨테이너들이 쌓여있다. 송봉근 기자

이날도 기름 소비량이 많은 수도권 지역과 직영 주유소 중심으로 휴업 사례가 이어졌다. 정유사들은 개인 사업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자영 주유소에 우선적으로 기름을 공급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화물연대 미가입 차량을 구하기 위해 애를 먹고 있다.

특히 화물연대 측이 육상 운송을 막고 있어 상당수의 기름이 우회로를 통해 공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원한 한 대형 정유사 관계자는 “파업 영향을 받지 않는 송유관이나 선박 운송 등을 통해 일단 기름을 옮긴 뒤 수송 업체가 찾아오면 그때그때 공급해주면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석유화학 업계는 컨테이너 운송 인력 확보와 운반 등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출하량이 평소와 대비해 5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지난 10일간 석유화학 업계의 누적 출하 차질 물량 규모는 약 7만1000t으로 금액으로 환산하면 1조173억원에 달한다.

지난달 27일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포항철강산업단지에 화물차량들이 운행을 멈춘 채 서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포항철강산업단지에 화물차량들이 운행을 멈춘 채 서 있다. 연합뉴스

철강 업계 역시 누적 출하 차질 규모가 총 1조원어치를 넘었다. 국내 5대 철강사인 포스코와 현대제철, 동국제강, 세아제강, KG스틸의 출하 차질액만 9000억원에 달한다. 파업이 이어지면서 지난 6월 총파업 때보다 손실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중소형 철강사들은 적재 공간이 부족해 제철소 내 도로나 공터에 철강재를 쌓으면서 버텨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세아베스틸 관계자는 “부분적으로 공장 가동을 중지하는 쪽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 “정유와 철강 등 운송 차질이 발생한 업종에 대해 업무개시 명령 발동을 위한 준비를 마쳤으며 면밀한 모니터링을 통해 국가 경제 위기 우려 시 즉각 명령을 발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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