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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 어쩌죠" 초조…'100일 기침' 백일해 백신 석달째 품귀

중앙일보

입력

지난 10월 5일 독감 접종 경험이 있는 어린이와 임신부 대상으로 무료 예방접종이 시작된 5일 오전 서울시내 한 소아청소년과의원을 찾은 어린이가 독감 예방주사 접종을 받고 있다. 뉴시스

지난 10월 5일 독감 접종 경험이 있는 어린이와 임신부 대상으로 무료 예방접종이 시작된 5일 오전 서울시내 한 소아청소년과의원을 찾은 어린이가 독감 예방주사 접종을 받고 있다. 뉴시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둔 김모(45ㆍ경기 과천)씨는 지난달 28일 아들의 백일해 백신 접종을 위해 집 근처 가정의학과와 내과를 방문했다가 허탕을 쳤다. 두 곳 모두 “백일해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백신인데 제약사 사정으로 당장은 물량이 없다”고 했다. 백신이 들어오면 연락을 주겠다고 한 병원에 대기 등록을 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며 다른 병원에 연락을 돌려보라고 당부했다. 집으로 돌아온 김씨는 다섯 군데 병원에 연락을 돌린 후에야 집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소아청소년과 의원에 재고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31주차 임신부 이모(30ㆍ서울 마포)씨는 27~36주 사이에 백일해 백신을 맞아야 하지만, 일주일째 대기 중이다. 평소 다니던 산부인과에선 “일단 급한 산모들부터 접종하고 있어 기다려달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씨는 “몸이 더 무거워질까 걱정이 된다”며 “지인이 주변 내과에서 접종을 받았다기에 그쪽에 문의를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석 달째 품귀…임신부·청소년 접종 지연

지난해 2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한 임신부가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2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한 임신부가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백일해 백신 품귀 현상이 석 달째 계속되고 있다. 지난 9월 이후 적지 않은 학부모와 임신부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백일해는 ‘100일 동안 기침을 한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호흡기 질환이다. 코로나19와 같은 법정감염병 2급에 속한다. 청소년이나 어른은 기침과 콧물, 미열 등 경미한 증상을 보이지만, 영유아들은 폐렴과 호흡 곤란, 발작을 일으킬 수도 있다. 질병관리청은 생후 2ㆍ4ㆍ6개월에 기본 예방접종을, 만 11~12세 때와 임신 27~36주차 때 추가 접종을 받도록 하고 있다.

백일해 백신은 크게 영유아가 접종하는 DTaP(디탭, 디프테리아ㆍ파상풍ㆍ백일해 예방 백신)과 청소년 및 성인용 Tdap(티댑, 파상풍ㆍ디프테리아ㆍ백일해 예방 백신)이 있다. 품귀 현상이 발생한 건 후자인 티댑이다.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은 백신 제약사 두 곳(GSKㆍ사노피파스퇴르)에서 공급 차질이 빚어지면서다.

유일하게 공급하던 사노피, 한 달간 공급 중단 

먼저 문제가 생긴 건 GSK로 지난해 11월 ‘허가 관련 자료 보완’ 등을 이유로 국내 출하가 일시 중단됐다. 그나마 상반기에는 방역 당국이 사노피에 물량을 늘려달라고 요청하면서 수요를 맞추고 있었지만, 지난 9월 초 사노피마저 품질 검사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돼 한 달간 백신 공급이 중단됐다.

실제 질병청의 ‘월별 Tdap 백신 공급량과 접종량’ 자료에 따르면 티댑 백신은 지난 7월 19만9784만명분이 들어온 후 9월까지 추가 물량이 들어오지 않았다. 7월 이전 이월된 물량과 더하면 총 24만여명분으로 같은 기간 접종량인 23만여명을 간신히 맞추는 수준이었다. 한 달간 고비를 넘기고 10월에는 35만5000여명분이, 11월에는 2만5000여명분의 백신이 추가로 들어왔다. 숫자로만 보면 10~11월 접종 예상치인 17만3000여명의 2배 되는 물량이었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유통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내과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GSK는 1년째 들어오지 않고 있고, 사노피는 가끔가다 10명 정도 분량이 들어오는데 그것도 일주일이면 후다닥 나간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내과에서는 “유통사 쪽에서도 양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우리가 요구하는 만큼 물량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질병청 “10월 34만명분 들어와…GSK도 공급 시작”

다만 질병청은 지난 9월에는 물량 수급에 문제가 있었지만, 10월부터 백신 공급이 다시 시작되면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질병청 관계자는 “10월에 34만명분이 들어왔고 지난주부터는 GSK에서도 다시 공급을 해주고 있다”라며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중심으로 충분한 양의 백신이 공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은 내과나 가정의학과를 중심으로 공급 지연이 일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백일해 백신은 독감처럼 정부가 사전에 물량을 구입해 제공하는 ‘사전 현물공급’ 방식이 아니라 각 의원에서 개별적으로 구매해 공급을 받는 상황이라 유통 과정에 일일이 개입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독감 백신처럼 안정적인 수급을 위해 백일해 백신 역시 ‘사전 현물공급’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질병청은 “독감과 같이 시급을 따지거나 수요가 많은 백신이 아니기 때문에 의료기관들과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전 현물공급보다는 비상상황에 대비하는 의미로 백신을 일정량 비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성관 우리아이들병원 이사장은 “소아·청소년은 치료도 중요하지만, 질병을 예방하는데 백신이 가장 필요하다. 코로나나 독감 백신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아이들에 대한 백신도 그만큼 공급이 원활하게 질병청에서 신경을 써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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