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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기울어진 운동장’ 의혹 민주당의 공영방송법안 단독 처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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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회 과방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4일 국회 소통관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와 관련한 방송법 개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과방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4일 국회 소통관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와 관련한 방송법 개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당 소위 단독 처리에 여 “방송 영구장악 시도”

방송 개혁 필요성 공감하나 합의안 도출 통해야

더불어민주당이 29일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방송법 등 4개 법률 개정안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법안소위에서 단독 의결했다. 개정안은 현재 9~11명인 공영방송 이사회를 21인 규모의 운영위원회로 개편토록 했다. 국회(5명), 시청자위원회(4명),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6명) 외에 방송기자연합회·한국PD연합회·방송기술인연합회 등 직능단체도 2인씩 모두 6명의 운영위원을 추천한다. 100명으로 구성된 ‘사장 후보 국민 추천위원회’가 후보를 추천하면 운영위가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사장을 선임하는 내용도 담겼다.

단독 의결을 두고 여야는 격하게 충돌했다. 민주당은 “정권이 공영방송을 좌지우지하는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한 법안”이며 “공영방송을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노력”이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국민의힘은 “민주노총 언론노조의 공영방송 영구장악 법안”이라며 “또 하나의 의회 폭거”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정치 성향이나 진영을 떠나 공영방송의 개혁, 정권과 방송의 관계 재정립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국민은 드물 것이다. 정권 교체 때마다 공영방송 수뇌부에 대한 새 정부의 물갈이 시도와 반대 측의 저항이 거칠게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이 동원한 꼼수와 무리수로 인해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신뢰도는 한없이 추락했다.

그동안 공영방송 이사는 법적인 근거 없이 여야가 7대4, 또는 6대3으로 나눠 추천해 왔다. 이런 ‘정치적 후견주의’를 청산하자는 민주당의 주장이 그럴듯해 보이는 건 과거 공영방송 쟁탈의 흑역사를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에서 운영위원 추천 자격을 부여받는 직능단체, 시청자 기구 등의 정치적 성향이 진보 진영에 치우쳐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현실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을 앞세웠지만 사실은 진보세력의 공영방송 영구집권을 위한 시도라는 여당의 주장도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친민주당이나 친민주노총 언론노조 인사로 운영위를 채우려는 고도의 계략이 담겨 있다고 여당은 의심한다. 야당 시절인 2016년 공영방송 이사회를 13명으로 구성하고 3분의 2 찬성으로 사장을 선임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냈다가 집권한 뒤엔 처리에 소극적이었던 민주당의 전력도 이번 법안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법안 처리 절차도 우려스럽다. 공영방송 개혁이란 화두의 무게감을 고려하면 소위에서의 단독 처리는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여야 협의체나 국회 내 특위, 또는 사회적 논의 기구를 통해 국민이 수긍할 만한 합의안 도출 과정을 밟는 게 순리다.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의 맞대응 카드로 활용하거나 정쟁의 도구로 삼기에 공영방송의 정상화 여부는 우리 사회에 미치는 파괴력이 너무나 큰 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