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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빌려올 것인가, 훔쳐올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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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1988년 일간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 실린 컴퓨터 산업 소송 관련 기사.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운영체제 개발팀을 이끌며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이 명언을 늘 마음속에 되새겼다’고 보도했다.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한다. 반면, 위대한 예술가는 훔쳐 온다.’

그런데, 정작 피카소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훌륭한 작곡가는 모방하지 않는다. 훔쳐 온다.”(『20세기 음악』, 1967, 피터 예이츠) 피카소와 동시대를 산 20세기의 위대한 작곡가 이고리 스트라빈스키(1882~1971)가 한 말이다. 이런 버전도 있다. “미흡한 예술가는 빌려오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훔쳐 온다.”

‘무에서 유’는 수사적 표현에 불과
이미 있는 것에서 도출한 새로움
그것이 창의성과 고유성의 본질

잡스가 피카소와 스트라빈스키를 혼동한 것을 비웃지는 말자. 20세기 초 파리에서 함께 작업한 예술적 동지이자 친구로서 피카소는 스트라빈스키 드로잉을, 스트라빈스키는 엽서 뒷면에 ‘피카소를 위한 소품’을 남겼다. 게다가 ‘훔치기(?)’라면 피카소를 능가할 이가 별로 없을 터이니 잡스가 혼동할 만도 하지 않은가.

한데 스트라빈스키 역시 그 말의 원조가 아니다. “미숙한 시인은 모방하지만, 원숙한 시인은 훔친다.”(T S 엘리엇, 1888~1965) 시인이 작곡가로, 예술가로 바뀌었을 뿐 똑같은 말 아닌가? 언행일치(言行一致)라고 해야 할지, 뻔뻔하다고 해야 할지….

이쯤 되니 동해안 미시령 너머에 즐비한 순두부 식당 중 진정한 원조가 어느 집인지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심정으로 인터넷을 뒤져본다. 이런, 19세기 영국 저널리스트 W H D 애덤스(1828~1891)가 ‘모방하는 자와 도용하는 자’(1892)라는 글에 이렇게 썼단다. “위대한 시인은 모방하고 개선하는 반면, 부족한 시인은 훔쳐 와 그것을 망친다.” 도용(盜用)과 표절(剽竊), 즉 ‘정신적 산물을 훔치는 짓’에 대한 날 선 비판이다. 그러면 그렇지, 저들이 왜곡된 가치관을 지닌 것이지, 어떻게 파렴치한 도둑질을 위대한 시인이나 예술가, 심지어 컴퓨터 엔지니어가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할 수 있겠나.

그런데 저들이 이룬 업적은 실로 위대하지 않은가. 그러니 그것을 그릇되다 치부하기에 앞서 본의를 살펴보아야겠다. ‘모방·도용·빌리기·훔치기.’ 모방은 뒤따르는 이가 앞선 이를 따라가는 유일하고 비교적 쉬운 길이다. 언젠가 추월할 날이 오리라는 기대를 하고 최선을 다해 쫓아가지만, 거기에는 고유성이 없다. 지식과 기술을 습득해 드디어 추월한다고 해도 노선을 달리하지 않는 한 ‘따라쟁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빌리기는 어떤가. 원제작자의 허가(라이선스)를 받아 생산한 공산품쯤 되지 않겠나. 아무리 열심히 해도 빌려온 것이 내 것이 될 수는 없으니까.

도용? 남의 것을 내 것인 양 내세워보았자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부끄러움뿐이다.

이제 남은 것 하나는 훔치기. 법적·윤리적 차원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짓을 저들은 왜 한목소리로 창의력의 근원이라고 했을까.

‘훔쳐 온 것’과 ‘따라 한 것, 빌려온 것, 몰래 쓴 것’의 가장 큰 차이는 결과물 소유권의 소재에 있다. 훔쳐 온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한 소유권은 그 도둑(?)에게 귀속된다. 언젠가는 드러난다고? 천만에. 엘리엇이 “나쁜 시인들은 그들이 취한 것을 손상하지만, 훌륭한 시인들은 그것을 더 나은 것, 적어도 ‘다른 것’으로 만든다”라고 했듯이, 창의적인 이는 그것을 자신 외에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수준으로, 최소한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없는 수준으로, 특허가 있다면 그것을 회피해서라도 본래의 것 이상의 결과물을 기어이 만들어내고야 만다. 그리하여 도둑이 아니라 최고의 작가·예술가·엔지니어로 자리매김한다.

“해 아래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지혜의 왕 솔로몬의 말이다. 그러니 스트라빈스키와 잡스가 말한 ‘훔치기’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가져와 새로이 해석하고 조합하여 고유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위대한 성취의 기반임을 웅변하기 위해 선택한 자극적 단어일 뿐이다.

‘빌리지 말고 훔치라’는 도발적 발언은 “창의성(고유성)의 비결은 그 출처(소재)를 감추는 방법을 아는 것”이라는 말(발언자 미상)과 만나 온전히 그 의미를 드러낸다. ‘무(無)에서 유(有)’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본래의 것을 초월한 그 무엇을 성취하는 것이 창의성과 고유성을 향한 왕도(王道)라고 말한다. 그것이 그들의 비결이라고 솔직하고 용감하게 고백한다.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