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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용하의 이코노믹스

공유지의 비극…건강보험 진료비 올해 100조원 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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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비상등 켜진 건강보험 재정

건강보험 재정에 비상등이 켜졌다. 2022년 건강보험 진료비가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한다. 2016년 64조5768억원이었던 진료비가 2021년 93조5011억원으로 1.45배 증가했고, 올해 상반기 진료비가 전년동기 대비 11.6% 증가한 50조845억원임을 비추어 볼 때, 2022년 전체로 100조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건보재정 불안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건강보험 통합과 의약분업 과정에서 홍역을 치렀던 건보재정이 인구의 초고령화가 진전되면서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2023년 1조4000억원 적자로 전환된 이후, 적자 규모가 점차 확대되어 2027년 6조8000억원, 2028년 8조9000억원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2021년 말 기준 20조2400억원이었던 건강보험 적립금이 2028년 -6조4000억원을 기록한다.

‘2020~2060년 건보 장기 재정전망’에 따르면, 2040년에는 누적 적자가 678조원, 2050년 2518조원, 2060년 5765조원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국민건강보험법 제73조에 의한 건강보험료율 상한 8%를 전제하였을 때 예상되는 수치이고, 수지 적자가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건강보험료율을 2022년 현재 소득대비 6.99%에서 2060년경에는 24% 내외 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

건보는 공공재, 이용자 절제 안 해
병원, 진료 많이 할수록 수입 증가

건보 적립금 2028년 적자로 전환
누적적자 2060년 5765조원 전망

국고지원 늘려도 임시방편일 뿐
의료남용 막고 지급체계 고쳐야

의료·노인장기요양보험 모두 위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른 의료급여 지출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사회보장재정통계센터의 ‘2021년도 사업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8조5287억원이 지출된 의료급여는 2030년 17조2025억원, 2060년에는 52조9621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비중은 2021년 0.4%에서 2030년 0.59%, 2060년에는 0.88%까지 커진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별개 법으로 관리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정지출의 증가속도는 더 가파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급여지출은 2010년 2조3916억원에서 2021년 10조1840억원으로 증가했다. 장기적으로 2021년 소득대비 0.79%인 장기요양보험료율을 2060년 6% 내외로 인상해야 늘어나는 지출을 감당할 수 있을 전망이다.

2060년대에는 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보험료율 합계만 해도 소득대비 30% 수준이어서 지속가능성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제4차 중장기 사회보장 재정 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보건부문 공공복지지출의 GDP 비중은 2020년 5.0%, 2030년 6.6%, 2040년 8.9%, 2050년 11.4%, 2060년 12.9%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2020년 기준으로 보건부문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5.3%임을 고려하면 낮지 않다.

기대수명 83.5세 vs 건강수명 66.3세

건강보험 진료비가 빠르게 증가하는 제1차적 요인은 노인 인구 증가라고 할 수 있다. 전체 진료비 중 노인 의료비 비중은 2016년 38.7%에서 2021년 43.4%로 높아졌다. 1년에 1%포인트가량이 늘어나는 구조다. 노인 인구 비율은 2016년 13.5%에서 2021년 16.6%로 변동했다. 통계청 전망대로 노인 인구 비율이 2070년에 46.4%로 높아지면, 노인진료비의 대폭적 증가는 불가피하다.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2020년 83.5세로 세계적 수준이지만 건강수명은 66.3세로 생애 기간 중 유병 기간이 17.2년이 된다는 점은 건강한 장수를 위한 국가 차원의 건강증진 정책이 더욱 강화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우리 건강보험은 진료할 때마다 진찰료·검사료·처치료·입원료·약값 등에 따로 가격을 매긴 뒤 합산해 진료비를 산정하는 행위별 수가제(fee-for-service)를 의료보험 도입 당시부터 채택하고 있다. 행위별 수가제는 진료의 양에 따라 비용 지급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의료공급자의 과잉진료를 유인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에 포괄수가제(diagnosis related group)는 진료 내용이 유사한 입원 환자군에 대해 사전에 일정한 급여액을 정해 진료비를 지급하기 때문에 지급 단위의 포괄화로 의료기관의 진료비 산정과 심사가 간소화될 수 있다.

의료기관 입장에서 행위별 수가제는 진료량 최대화를 추구할 수 있고 포괄수가제는 진료비용 최소화를 추구할 수 있다. 따라서 보험재정 안정화 측면에서 포괄수가제가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정해진 비용 범위 내에 진료가 이루어지므로 의료서비스 질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 지불 보상체계 조정은 보험자·의료소비자·의료공급자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므로 대승적 차원의 합의가 요구된다.

본인부담금 제도로 도덕적 해이 막아야

건강보험을 적용받는 환자의 의료이용 행태도 의료이용량을 늘릴 수 있다. 보험 없이 환자가 의료비 전액을 지급한다면 이용하지 않았을 의료서비스를 보험이 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이용할 때 진료비 지출이 증가할 수 있다. 보험이론에서는 이를 도덕적 해이로 보아 보험의 시장실패 원인 중의 하나로 꼽는다. 보험가입자의 남용을 억제하기 위해 진료비 일부를 본인이 부담토록 하는 본인 부담금 제도가 활용된다.

그러나 건강보험의 본인부담금과 비급여를 덜어주는 목적으로 판매되는 민영 의료보험으로 도덕적 해이를 저지할 수 있는 기제가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진료비가 증가하고, 민영 의료보험도 부실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민건강보험과 민영 의료보험의 비용 효과적인 역할 조정이 요구된다.

의료서비스는 자유재가 아닌 경제재로서 정상적인 비용을 지급하고 정상적인 편익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건강보험 제도가 의료서비스를 모호한 공공재로 만들면서 ‘공유지의 비극’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공유지의 비극은 공공자원의 이용을 개인의 자율에 맡긴 결과 서로 이익을 극대화함에 따라 자원이 남용되거나 고갈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따라서 아예 영국이나 스웨덴과 같이 의료서비스를 완전 공공재화 하든지, 아니면 경제재로서 보험시장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고령자 늘수록 지속 가능성 더 낮아져

재정 안정화 대책으로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국민건강보험법과 건강증진법을 보면 정부는 건보료 예상수입액의 14%에 해당하는 금액을 일반회계(국고)에서 지원하고, 건강증진기금에서 6%를 지원토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규의 일몰 시한은 2022년 말이어서 국고 지원이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정부 지원을 늘리면 보험료 인상 부담의 일부는 완화되겠지만, 국고도 국민 세금으로 조달된다는 점에서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현재의 국고 부담 수준을 낮추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일몰 규정을 없애는 방안은 검토해야 한다. 한편 건강보험료율 8% 상한 규정 역시 사수하는 것이 이미 불가능해진 만큼 새로운 재정 안정화 방안 마련 시 삭제 검토가 필요하다. 다만, 국민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과 같이 국고가 극히 미미하게 투입되는 사회보험도 공공기금으로 관리되고 있는 만큼, 예상수입액의 20% 상당을 국고와 건강증진 부담금에 의존하고 있는 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은 당연히 기금화해서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건강보험 재정은 지금까지 이럭저럭 버텨왔지만,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인구의 절반이 고령자가 되는 미래에서는 지속가능성을 확신하기 어렵다. 건강보험은 당사자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므로 재정 안정화를 위한 제도 개편이 힘들지만, 죄수의 딜레마 게임처럼 당사자가 서로 신뢰하지 않으면 공멸할 수도 있다는 판단하에 한발씩 양보해 지속 가능한 건강보장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를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 만큼, 이번에는 제대로 된 개혁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