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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시시각각

일본의 침체, 강 건너 불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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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일본의 추락이 확연하다. 세계 2위 경제 대국 자리를 2010년 중국에 내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그 양상을 들여다보자. 먼저 일본인의 경제력이다. 일본은 올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대만에 추월당하고, 한국과는 간발의 차로 역전을 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3590달러로 일본(3만4360달러)과의 격차는 770달러에 불과하다.

 그런데 각국의 물가 수준을 반영한 구매력 평가(PPP) 기준에선 일본이 체면을 구긴다. 한국은 대만과 함께 5만 달러를 넘었지만, 일본은 진입하지 못했다. 실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임금을 보면 어떨까. 한국인의 평균 임금이 일본을 추월한 지는 벌써 한참 됐다. 한국은 지난 30년 임금이 해마다 올랐지만, 일본은 임금이 오르지 않아 결국 2015년부터 한국에 역전당했다. 2020년 한국의 평균 임금은 당시 환율로 4만1960달러로, 일본의 3만8515달러보다 3445달러가 많았다(OECD 통계).

돈 펑펑 푼 아베노믹스 부작용 분출
도쿄 집값 급등, 서민들 더 가난해져
개혁 안 하면 한국도 일본 전철 밟아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기를 상징하던 신칸센이 후지산을 배경으로 달리고 있다.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기를 상징하던 신칸센이 후지산을 배경으로 달리고 있다.

 일본의 최근 몸부림은 2013년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시작한 아베노믹스였다. 세 개의 화살(재정확대, 금융완화, 구조개혁)로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둔 건 사실이다. 아베노믹스 전보다 주가가 두 배 오르고, 완전고용에 가까울 만큼 취업률도 높아졌다. 여성의 경제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여성 고용률이 많이 늘어나고 양육 환경도 좋아지면서 2015년부터 대졸 여성의 출산율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베노믹스는 일본 국민을 더 가난하게 만들었다. 결정적 패착은 재정확장과  금융완화였다. 아베노믹스가 시작할 무렵, ‘정부는 돈을 찍어도 파산하지 않는다’는 현대화폐이론(MMT)이란 가짜 경제이론이 마침 등장해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 부작용은 최근 40년 만의 인플레이션으로 돌아왔다. 일본에선 지난 8년간 도쿄 시내 주택 가격이 50% 가깝게 급등했다. 2013년 5000만 엔대였던 신축 맨션 평균 가격은 8293만 엔에 달한다. 일본이 1990년을 정점으로 버블 경제의 직격탄을 맞았다면, 이번에는 30년 만에 지난 8년간 아베노믹스에 의해 또다시 미니 버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피해는 서민에게 집중되고 있다. 집값 폭등 탓에 부유층이 아니면 도쿄에서 집을 살 수 없게 됐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올해 1월 도쿄 23개 구 인구는 1327만 명으로 26년 만에 줄어들었다. 한 시민은 이 신문 인터뷰에서 지난해 말 도쿄에서 도치기현으로 이사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집은 훨씬 넓어졌고 재택근무 덕분에 생활이 쾌적해졌다. 이제 도쿄는 (집값 때문에) 거주할 수 없다.” 요코하마의 한 시민은 “도쿄에서 집을 사는 건 일부 부유층의 특권일 듯싶다”고 했다. 요코하마에서도 6000만 엔대 주택이 속출해 내 집 마련의 꿈이 멀어지고 있단다.

 일본은 1960년대 1억 인구 총중산층을 표방하면서 한때 미국을 넘보던 경제 대국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안전자산으로 꼽히던 엔화의 추락은 당연한 귀결이다. 원인은 모두 알려져 있다. 혁신을 통한 경쟁력 강화와 노동·교육 개혁 같은 정공법을 피하고 돈 풀기를 통해 좀비기업이 연명한 결과다. 경제에는 도깨비방망이가 없다. 저출산의 여파로 인구가 늙은 것도 경제의 신진대사를 끊었다.

 한국은 일본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해소, 반(反)기업 정책 타파, 노동·교육개혁은 말로만 외칠 뿐이다. 글로벌 100대 유니콘의 절반이 한국에선 사업을 할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은 반도체 드림팀이라는 칼을 뽑았다. 한국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도 반도체강화법을 입안했지만, 야당이 “대기업 특혜”라며 발목을 잡고 있다. 일본이 한국보다 가난해졌다는 소식에 우쭐하며 정신줄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조만간 닥쳐올 한국의 미래가 일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