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령그물에 당한 거북...'멸종위기종 천국'은 충격 그 자체였다 [영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립공원연구원과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등 민관 합동으로 홍도 수중 생태계를 조사하는 중에 발견된 쓰레기들. 국립공원연구원 해양연구센터

국립공원연구원과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등 민관 합동으로 홍도 수중 생태계를 조사하는 중에 발견된 쓰레기들. 국립공원연구원 해양연구센터

3일 경남 통영시 영운항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지났을까.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섬이 나타났다. ‘갈매기의 섬’이라는 뜻의 홍도(鴻島)다.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 홍도는 제335호 천연기념물이자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섬이다. 쿠로시오 해류로부터 갈라져 나온 대마난류가 흐르는 길목에 있어서 종다양성이 풍부하고 희귀한 해양생물들이 많이 사는 멸종위기종의 천국으로도 불린다. 기후변화에 따른 해양생태계의 변화를 직접 볼 수 있어 연구 가치도 높은 곳이다.

하늘에서 본 한려해상국립공원 홍도의 모습. 국립공원연구원 해양연구센터

하늘에서 본 한려해상국립공원 홍도의 모습. 국립공원연구원 해양연구센터

“홍도는 따뜻하고 영양염이 풍부한 대마난류가 우리나라 동남쪽에서 처음 맞닥뜨리는 지역으로 나팔고둥, 검붉은수지맨드라미 같은 국가보호종들이 많이 살고 있어요. 푸른바다거북이나 범고래, 흑범고래 같은 대형 해양생물도 자주 출현하죠.”

함께 배에 탄 이유철 국립공원연구원 해양연구센터 박사가 설명했다. 이날 섬에는 잠수복을 입은 4명의 연구원을 포함해 10여 명의 다이버가 모였다. 홍도의 수중 생태계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국립공원공단 국립공원연구원과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등 민·관이 함께한 첫 합동 조사다.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은 “이 일대가 최근 들어서 낚싯배들이 몰리는 등 생물 다양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늘고 있고, 실제 훼손된 흔적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며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해양 전문가와 다이버들이 합동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물로 뒤덮인 멸종위기 산호들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된 빨강해면맨드라미 등 다양한 산호들이 홍도 바닷속에 서식하고 있다. 국립공원연구원 해양연구센터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된 빨강해면맨드라미 등 다양한 산호들이 홍도 바닷속에 서식하고 있다. 국립공원연구원 해양연구센터

실제 홍도의 바닷속은 어떤 모습일까. 다이빙 자격증을 가진 중앙일보 취재기자도 직접 조사팀을 따라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수심 10m 아래로 내려가자 다양한 산호들이 어우러진 화려한 바닷속 풍경이 펼쳐졌다. 주황빛의 유착나무돌산호는 물론 바다의 소나무로 불리는 해송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모두 멸종위기 Ⅱ급으로 지정된 해양생물이다.

홍도 수중 생태계를 조사하는 중에 발견된 그물을 제거하는 모습. 국립공원연구원 해양연구센터

홍도 수중 생태계를 조사하는 중에 발견된 그물을 제거하는 모습. 국립공원연구원 해양연구센터

하지만, 희귀한 해양생물들이 만든 바닷속 풍경에 취한 것도 잠시, 이내 낚시꾼과 어민들이 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각종 쓰레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얇은 그물로 뒤덮인 산호들은 여기저기 잘려나간 흔적들이 보였다. 다이버들이 가위로 그물을 잘라냈지만, 산호와 엉켜있는 탓에 떼어내기조차 쉽지 않았다.

민범식 해양연구센터 박사는 “그물이 산호에 걸리면 계속 물살에 따라서 움직이면서 마치 채찍처럼 산호뿐 아니고 다른 생물들을 다 쓸어서 죽이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해양생물들에게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섬 주변서 선상 낚시…잘린 닻들 바닥에 쌓여”

취재기자가 홍도 수중 생태계를 조사하는 중에 발견된 폐어구를 잡고 있다. 국립공원연구원 해양연구센터

취재기자가 홍도 수중 생태계를 조사하는 중에 발견된 폐어구를 잡고 있다. 국립공원연구원 해양연구센터

홍도 바닷속에서 발견된 폐어구에 문어가 갇혀 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홍도 바닷속에서 발견된 폐어구에 문어가 갇혀 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바닥에는 버려진 그물 등 폐어구들이 여기저기 깔려 있고, 물고기들은 폐통발에 갇힌 채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에서 유실된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닻들도 쌓여 있었다.

수중 조사에 참여한 김연희 통영스쿠바캠프 대표는 “홍도는 갯바위 낚시가 금지됐기 때문에 갯바위에다가 줄을 묶고 닻을 내린 상태에서 선상 낚시를 한다”며 “닻을 걸고 낚시를 하다 보니까 닻이 바위에 걸리거나 바다로 유실이 돼서 저렇게 쌓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수거 업체가 바지선의 크레인 장비를 동원한 끝에 바다에 가라앉아 있던 폐어구와 닻들을 마침내 물 밖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

해양쓰레기 수거업체가 홍도 수중 생태계를 조사하는 중에 발견된 닻을 끌어올리고 있다. 국립공원연구원 해양연구센터

해양쓰레기 수거업체가 홍도 수중 생태계를 조사하는 중에 발견된 닻을 끌어올리고 있다. 국립공원연구원 해양연구센터

유령그물에 걸려 질식사한 바다거북 

홍도 인근 해역에서 그물에 걸려 폐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바다거북을 다이버들이 발견했다. 통영스쿠바캠프

홍도 인근 해역에서 그물에 걸려 폐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바다거북을 다이버들이 발견했다. 통영스쿠바캠프

실제로 낚싯줄이나 그물 등 어업 활동에서 버려진 폐어구들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다양한 해양생물을 죽음에 빠뜨린다. 이런 현상을 ‘유령어업(Ghost Fishing)’이라고 부른다. 지난달 호주 태즈메이니아대 등 공동 연구팀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어업 활동 과정에서 바다에 버려지는 그물의 길이는 지구를 18바퀴 이상 돌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남해안은 어종이 풍부해 전 세계적으로 어업이나 낚시 활동이 집중된 해역 중 하나로 꼽힌다. 여기서 버려진 유령그물이 수십 년 동안 해양생물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홍도 인근 바다에서 유령그물에 몸이 걸려서 질식해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멸종위기 바다거북이 다이버들에게 발견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자망이라고 부르는 얇은 그물에 바다거북이 걸린 채로 죽어 있었다”며 “물고기를 잡으려고 100m 이상 길게 치는 그물인데 태풍이나 바다 조류에 휩쓸려 잘리거나 유실되는 경우가 많아 해양생물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말했다.

“바닷속은 국립공원 규제 사각지대…긴급 조치 시급” 

홍도 주변에서 어업 활동 중인 어선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홍도 주변에서 어업 활동 중인 어선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전문가들은 국립공원 중에서도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홍도가 오히려 해양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지적한다.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섬과 달리 섬 주변 바다는 낚시나 어업 활동은 물론 잠수 장비를 착용하고 물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머구리 작업도 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풍부한 바다 생태계를 가진 홍도가 오히려 낚시꾼과 다이버, 어민들의 집중 표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 사무국장은 “해상(海上)은 국립공원인데 해중(海中)은 자연공원법의 적용을 안 받다 보니 그 사각지대에서 남획이나 쓰레기 오염 같은 위험 요인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일시적으로 낚시나 어업 행위를 금지하는 긴급 조치를 한 뒤에 정부 차원의 실태 조사와 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