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수처에 '모욕죄' 고소?…본인들이 만든 법도 모르는 민주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이 14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이 14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즉각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소하는 건 물론 국무위원의 막중한 자리에 걸맞는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

지난 7일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신을 ‘직업적 음모론자’라고 공개 비난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겨냥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황 의원은 “한 장관이 국회회의장에서 국회의원을 특정하며 모욕적인 표현을 함으로써 완벽하게 모욕죄를 저질렀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그런데 여기엔 결정적인 오류가 있었다. 황 의원은 한 장관을 공수처에 모욕죄로 고소하겠다고 밝혔지만, 공수처의 수사 대상 범죄엔 ‘모욕죄’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범죄’를 규정한 공수처법 2조 3항은 직무유기·직권남용·뇌물수수·뇌물공여·피의사실 공표 등만을 적시한다.

착오를 뒤늦게 깨달은 황 의원은 이튿날인 8일 오전 10시경 해당 페이스북 글에서 ‘공수처’ 단어를 황급히 삭제했다. 이어서 황 의원은 한 장관에 대한 고소장을, ‘공수처’가 아닌 서울경찰청에 접수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2019년 12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 374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 개의를 알리자 발언대를 에워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문정권 범죄은폐처 공수처'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문희상 국회의장이 2019년 12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 374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 개의를 알리자 발언대를 에워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문정권 범죄은폐처 공수처'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성균관대에서 법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황 의원의 이런 모습에 민주당에선 “우리 당이 밀어붙였던 당론 법안인 공수처법을, 우리 당 의원조차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다는 게 한심하다”(민주당 관계자)는 말이 나왔다.

이 관계자는 “공수처법은 당초 제정될 때 그 수사대상 범죄를 ‘직무 관련성’이 높은 범죄로 한정했다. 모욕죄를 공수처에 고소한단 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2019년 12월 본희의에서 ‘동물국회’란 비난을 받으면서도, 공수처법을 강행 처리했다.

지난 7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준비위원회 1차 강령분과 토론회에서 안규백 당시 전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준비위원회 1차 강령분과 토론회에서 안규백 당시 전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69석의 의석으로 막강한 ‘입법권력’을 행사하는 민주당이 법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8월 전당대회 준비위원회가 정당의 헌법 격인 당헌을 개정하는 과정에서도 ‘법알못’(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 의원들이 속출했다. 전준위는 당시 ‘기소 시 당직 정지’ 당헌 80조를 ‘하급심 유죄 시 직무 정지’로 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하급심’이란 용어를 놓고 대혼선을 일으켰다. 전용기 전준위 대변인은 개정안 의결 뒤 브리핑에서, “하급심은 1심을 가리킨다”고 밝혔지만, 이어 안규백 전준위원장이 “하급심은 2심을 포함하는 개념이라, 2심 유죄 시 당직 정지로 봐야 한다”는 상충된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의견이 분분한 끝에, 개정안상 문구인 ‘하급심’을 오직 1심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내부 정리하며, 대혼선은 일단락됐다.

당시 전준위 소속이었던 한 의원은 “이미 ‘하급심’이란 단어로 당헌 개정안을 의결한 상황에서, 이후에 하급심 의미를 놓고 다시 토론을 벌여야 했던 게 촌극이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인은 “하급심은 통상 확정판결을 내리는 대법원을 제외한 1,2심을 말한다”며 “애초에 하급심은 법전에서 정의된 단어도 아니고 관용적으로 쓰는 말인데, 그런 애매한 단어를 당헌에 적시해 의결한 것부터가 문제”라고 말했다.

당내에선 “대개 보좌진들이 법제실과 상의해 법을 만들다 보니, 정작 입법기관인 의원들은 법을 잘 모르는 게 다반사”란 지적도 나왔다. 변호사 출신 보좌진은 “이미 6년 넘게 의원 생활을 한 재선 의원이 법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모르고 있길래 당황한 적이 있다”며 “5000만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입법가들이 이렇게까지 법에 무지하다는 건, 조문을 모르는 사람이 재판하는 것보다도 더 무서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