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체면 구긴 공수처…‘1호 기소’ 김형준 전 검사 1심 무죄

중앙일보

입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 이후 첫 번째로 기소권을 행사한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뇌물수수 혐의 사건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뇌물수수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 후 처음 기소한 김형준 전 부장검사가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뇌물수수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 후 처음 기소한 김형준 전 부장검사가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法 “직무 대가 뇌물 인정 어렵다”…1호 기소 무죄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김상일 부장판사는 같은 검찰 출신 변호사로부터 두 차례 접대를 포함 1095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 전 검사에 대해 9일 무죄를 선고했다. 그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된 박모 변호사도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공수처가 제출한 증거로는 이들의 금전 거래가 뇌물이라는 주장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했다. 김 전 검사가 박씨에게 수사상 편의를 제공했다고 볼 증거가 없고, 통상의 뇌물 거래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들이 ▶오랜 시간 친분을 유지하는 사이였고 ▶이 사건 외에도 여러 차례 금전 거래가 있었다는 점 ▶박 변호사로부터 받은 1000만원을 이후에 변제한 것으로 보이는 점을 짚었다. 친분 관계에 있던 박 변호사에게 1000만원을 빌렸다가 갚은 것일 뿐 뇌물이 아니라는 김 전 검사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또 재판부는 “김 전 부장검사가 당시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박 변호사로부터 ‘사건을 잘 처리해달라’는 명시적, 묵시적 청탁을 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어 보인다”며 “김 전 부장검사가 박 변호사에게 수사상 편의를 제공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김 전 검사는 최후변론에서 박 변호사를 두고 “인생을 15년 이상 함께 걸어오면서 가족끼리 식사도하고 아이 문제도 상의하는 사이”라며 “도덕적으로 처신을 잘못한 것과 범죄는 형사 법정에서 구별된다는 걸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김 전 검사는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으로 재직하던 2015년 초까지 박 변호사로부터 수사 편의를 제공한 대가로 이후 1095만5000원어치 금품과 유흥주점 접대를 받은 혐의로 지난 3월 기소됐다. 앞서 검찰은 2016년 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을 수사하면서 이 사건도 수사한 뒤 “대가성 입증이 어렵다”고 무혐의 처분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당시 고교 동창 스폰서 김모씨로부터 5000여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만 구속기소된 뒤 2018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및 벌금 1500만원을 확정받았다.

그러나 2019년 스폰서 김모씨가 경찰에 박 변호사가 김 전 부장검사에게 뇌물을 줬다는 의혹을 고발해 수사가 재개됐다. 경찰은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이후 검찰로부터 사건을 이첩 받은 공수처가 김 전 부장검사를 수사·기소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앞에 새로운 로고(CI)와 슬로건(표어)이 담긴 현판이 걸려 있다. 뉴스1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앞에 새로운 로고(CI)와 슬로건(표어)이 담긴 현판이 걸려 있다. 뉴스1

김형준 측 “검찰 개혁 소재”…공수처 “법리 의견 달라, 항소”  

김 전 검사 축 변호인은 선고 이후 “정치적 계산과 조직 논리에 따라 이뤄진 수사와 기소”라며 “검찰개혁을 주장하기 위한 소재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법원이 증거와 법리에 따라서 현명하게 판단을 해 주셨다”고 했다.

무죄 선고 이후 법정에서 눈물을 터뜨린 김 전 검사도 “정치적인 논리에 따라서 왜곡돼 참혹했다”며 “억울한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기에 봉사하면서 살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공수처는 무죄 선고 이후 즉각 입장을 내고 “재판부 판단 내용 중 법리적으로 의견을 달리 하는 부분이 있어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1호 기소 사건조차 무죄가 선고되면서 공수처의 수사력 부재에 대한 비판도 거세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형준 전 부장검사 기소는 공수처 신설 이후 첫 기소로 73년 만에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깬 사례로 평가된다.

공수처는 지난 8일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으로 김웅 국민의힘 의원실을 압수수색할 때 법적 절차를 어겼다는 대법원 판단을 받았다. 이에 따라 공수처의 압수수색은 전부 취소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손준성 당시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을 상대로 체포 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됐고, 이후 구속 영장을 2차례나 청구했다가 모두 기각당하며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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