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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에 국가·자치경찰 서로 “네 탓”…혼란 키운 자치경찰제

중앙일보

입력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사고 현장에서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 등이 2차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사고 현장에서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 등이 2차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찰청의 긴급구조 지원 업무를 일차적으로 지휘·감독하는 서울시 자치경찰위원회가 이태원 압사 참사를 서울시로부터 뒤늦게 보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자치경찰위가 요청하기 전까지 경찰은 참사 사실을 자치경찰위에 공유하지 않았고, 상황을 보고받은 자치경찰위도 다음 날 아침이 돼서야 관련 안건을 심의했다. 지난해 7월부터 자치경찰제 시행으로 시·도경찰위원회가 재난 시 경찰의 긴급구조 지원 여부를 결정·감독하는 기능을 맡게 됐다. 혼잡 상황을 관리하는 경비·교통 등은 자치경찰의 업무지만 재난 현장과 맞닥뜨릴 가능성이 큰 지구대와 파출소는 국가경찰 소속이라 혼돈이 가중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참사 75분 만에…경찰 아닌 서울시 보고받아

 7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자치경찰위는 참사 당일인 지난달 29일 오후 11시 30분 서울시 안전총괄실로부터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전화로 통보받았다. 사고 발생 1시간 15분 만의 일이었다. 보고를 받은 자치경찰위는 서울청에 상황 공유를 요청했다고 한다. 김성섭 자치경찰위 사무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47분이 지난 10월 30일 0시 17분. 자치경찰위는 30일 오전 1시 34분이 돼서야 서울청 112종합상황실장으로부터 참사 현장 경력 배치 현황 등 조치 사항을 문자로 2차 통보받았다고 한다. 서울 자치경찰위가 ‘긴급’이라 이름붙인 위원회 회의는 이튿날인 10월 30일 오전 8시에야 열렸다. 현장 긴급 구조, 교통 관리, 유족 지원 방안 등에 관한 안건을 올렸고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김남영 기자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김남영 기자

시·도 자치경찰위는 자치경찰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각 시·도 산하에 설치된 상임 합의제 행정기관이다. 위원장을 포함한 두 명의 상임 위원과 나머지 5명의 비상임 위원으로 구성된다.

 재난안전법(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르면 육상 재난 관리의 세 주체는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재난관리책임기관), 소방당국(긴급구조기관), 경찰·군부대 등(긴급구조지원기관)이다. 경찰은 119가 원활히 구조 활동을 하도록 교통 통제를 하는 등 돕는 역할을 맡는다. 경찰법은 ‘안전사고 및 재해ㆍ재난 시 긴급구조지원’을 자치경찰 사무로 명시하고 있다. 자치경찰 사무에 있어서 시·도경찰청장은 각 시·도자치경찰위의 심의·의결을 통해 지휘·감독을 받게 돼 있다.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 자치경찰위의 지휘·감독권을 각 시·도경찰청장에 위임한 것으로 본다는 경찰법 단서 조항을 고려하더라도, 재난 상황에서 일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하는 서울 자치경찰위가 보고 체계에서 아예 누락된 셈이다.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은 참사 대응을 ‘긴급 구조 지원’으로 봐야 하는지, ‘112 신고 처리’로 봐야 하는지로 핑퐁을 하고 있다. 한 경찰 간부는 “서울시 자치경찰위가 서울시장에게 보고하고, 서울시장이 경찰에 뭐가 필요하다 하면 안건을 부의할 수 있게 된다”며 “서울시 자치경찰위가 빠르게 심의를 해 서울청에 안전 관리 등을 요청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 자치경찰위는 이태원 참사 대응은 국가경찰 사무라는 입장이다. 김학배 서울 자치경찰위원장은 7일 서울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사무분장에는 다중운집 행사 (신고)와 관련한 건 112 종합상황실에서 하게 돼 있고, 이건 국가경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경찰 직제에 따르면 112신고 접수 등 초동조치 지휘는 국가경찰인 112치안종합상황실장 업무로 분류돼 있다. 지역 내 다중운집 행사 안전 관리도 규정상 자치경찰이 ‘지원’만 하게 돼 있고, 국가경찰이 맡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7일 이태원 참사 현장 주변 경찰 통제선 밑에 추모꽃이 놓여 있다.   국가애도기간은 지난 5일 종료했다. 연합뉴스

7일 이태원 참사 현장 주변 경찰 통제선 밑에 추모꽃이 놓여 있다. 국가애도기간은 지난 5일 종료했다. 연합뉴스

 이 같은 혼란은 자치경찰제 시행 당시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재난 긴급구조 지원이 자치경찰 업무가 됐는데, 현장 인력 중엔 자치경찰위가 지휘할 수 있는 인원이 거의 없어서다. 반면 경찰에서 보통 가장 먼저 재난 현장에 출동하는 지구대·파출소 직원들뿐 아니라 재난관리 업무를 총괄하는 경찰청 치안상황관리관(2019년 직제 신설) 역시 국가경찰 소속이다. 현재는 국가경찰의 경우 지구대·파출소 소속 경찰이 재난 상황을 일선 서 112상황실에 보고하면 시·도경찰청 112상황실을 거쳐 경찰청 치안상황관리관에게 전달되고, 시·도경찰청장은 상급기관장들에 이를 보고하는 체계다. 서울 자치경찰위는 통상적으로 서울청에서 보고 자료를 받고 있다.

“재난 시 경찰 구체적 역할 명시해야”

 전문가들은 재난 발생 시 경찰의 구체적인 역할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국가 경찰과 자치 경찰의 조직 구성과 맡고 있는 업무·기능 등에 대해 명확하게 구분하거나 협의를 필요로 하는 대형 사건이 아직 없었다”며 “비상임 자치경찰위원도 있는 상황에서 긴급한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곽 교수는 “이번 일을 계기로 국가·자치 경찰의 업무 협조·분담이나 상호 지원 방안 등에 대해 세부적으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31일 밤 이태원 사고 합동 분향소가 마련된 홍대 거리 주변에 경찰차가 서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밤 이태원 사고 합동 분향소가 마련된 홍대 거리 주변에 경찰차가 서 있다. 연합뉴스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역시 지난해 수행한 연구에서 “한국 경찰의 위기관리는 소극적인 역할에 머물고 있으며, 시민의 안전한 생활을 보장하는 책임이 부여된 국가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법적으로 재난 발생 시 경찰의 임무나 역할에 대한 구체적인 경찰의 역할을 명확히 할 수 있는 법적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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