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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현곤 칼럼

은행만 신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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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현곤 기자 중앙일보 편집인
고현곤 논설주간 겸 신문제작총괄

고현곤 논설주간 겸 신문제작총괄

고금리·고물가에도 사상 최대 실적을 내는 곳이 있다. 바로 은행이다. 신한·KB·하나·우리 등 4대 금융그룹은 올 1~9월 14조원 가까운 순이익을 냈다. 주목할 것은 이 기간 이자이익이 29조원을 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늘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는 틈을 타 은행이 대출이자를 많이 걷고, 예금이자는 적게 줬다는 얘기다. 은행 입장에선 금리 상승기에 이자 장사를 잘한 셈이다. 그 대가로 국민은 허리가 더 휘었다.

예대금리차(잔액기준)는 2020년 말 2.05%포인트, 2021년 말 2.21%포인트, 올 9월 2.46%포인트로 계속 커졌다. 8월부터 은행별 예대금리차를 공시했지만, 오히려 더 벌어졌다. 기준금리 인상 때 예금금리는 조정하기 쉽지 않고, 대출금리는 바로 오르는 탓이 크다. 예를 들어 2%대 정기예금을 갖고 있다고 치자. 최근 나온 4~5%대 예금으로 갈아타려면 이자를 손해 보고 중도해약을 하든지 만기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반면 대출금리(변동)는 얼마 안 가 인상된다. 이 시차에서 생기는 이자이익이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빅스텝) 때마다 은행당 5000억원에 달한다. 땅 짚고 헤엄치기다. 한은에 따르면 빅스텝을 하면 대출자의 이자 부담이 6조5000억원 늘어난다. 이 돈이 은행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4대 은행, 올 1~9월 이자이익 29조
금리 상승기에 이자장사 몰두한 탓
은행은 돈 잔치, 경영진은 연임 노려
은행 힘들때 세금으로 돕는 게 맞나

여기에다 은행이 변동금리대출(신규기준)을 2020년 68%에서 올 2분기 83%로 확 늘렸다. 금리 상승에 맞춰 이자를 더 받아내기 위해서다. 은행 경영은 지난해나 올해나 거기서 거기다. 특별히 잘한 게 없는데, 기준금리 인상에 편승해 큰돈을 번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공정과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대출금리는 주택담보·전세·신용대출 모두 7%대에 진입했다. 13년 만에 최고치다. 이달 24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또 한차례 기준금리 빅스텝이 예고돼 있다. 8%대 대출금리는 시간문제다. 내년엔 9%대 가능성도 있다. 은행은 “금리 상승기에 예대마진 확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예대마진이 시장원리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는 주장도 편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돈이 부족하니 대출금리가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이자이익이 엄청나게 발생하면 시장원리를 잠시 접어두고, 대출금리를 덜 올릴 수도 있다. 은행은 그러지 않는다.

고통 분담 대신에 돈 잔치를 벌였다. 이자 장사로 이익을 많이 낸 게 훈장이라는 듯. 4대 은행의 평균 연봉은 지난해 1억원을 넘었다. 명예 퇴직자에게 3~4년 치 연봉을 얹어줬다. 특별퇴직금 포함해 1인당 5억~10억원의 퇴직금을 준 곳도 있었다. 금융노조는 정년 65세 연장, 주 4.5일 근무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 으름장을 놓고 있다. 경영진은 이자 장사로 거둔 실적을 내세워 2연임, 3연임을 노린다. ‘고객은 왕’이라면서 불편은 외면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린 지 오래지만, 1시간 단축영업은 그대로다. 노사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시간을 끈다.

은행 산업은 대형 은행 중심의 과점 체제다. 시장 지배자이자 갑(甲)이다. 돈이 부족한 경기 침체기에는 더 그렇다. 은행 돈을 쓰는 가계·기업은 협상력이 약하다. 을(乙)이다. 은행이 이자 장사에 재미를 붙여 시장원리만 내세우면? 은행은 승리하고, 가계·기업은 패배한다. 그런데 이 싸움에서 은행이 영원히 승리할 수는 없다. 가계·기업이 과도한 이자 부담으로 쓰러지면 부메랑이 돼 은행에도 부실이 쌓인다. 잘 나갈 때 외형을 늘리다가 어려워지면 대출 조이고, 부실은 늘고…. 결국 정부에 손을 벌리는 후진적 행태가 반복돼왔다.

외환·금융위기의 혹독한 시련을 겪었으면서도 은행은 바뀐 게 없다. 그동안 종합기업금융플랫폼, 메가뱅크, 디지털, 국제화 등 논의가 무성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우물 안 개구리’ 이자 장사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64개국 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은행 및 금융서비스’는 47위로 최하위권이다. 지난해(42위)보다 더 떨어졌다.

정부도 바뀐 게 없다. 문재인 정부 때인 지난해 말 금융위원회는 보도참고자료를 냈다. 빙빙 돌려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대출금리 오른 게 은행 잘못은 아니다’는 게 요지다. 은행을 감싸는 데 급급했다. 윤석열 정부의 금융위는 달라졌나? 오십보백보인 것 같다. 정부는 은행 편이 아니라 국민 편에 서야 한다. 관치금융은 나쁘다. 하지만 은행의 탐욕에 제동을 거는 관치금융이라면 박수 쳐주고 싶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금융위기 때 받은 구제금융을 임직원 보너스로 뿌렸다. 위기를 벗어나자 이내 ‘탐욕스런 금융’으로 돌아갔다. 2011년 뉴욕에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가 벌어진 배경이다. 국내 은행도 국민에 큰 빚을 졌다. 외환위기 때 세금으로 조성한 공적자금 168조원으로 은행 회생을 도왔다. 금융위기 때는 정부가 20조원의 은행 자본확충펀드를 만들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은행이 이자 장사에 몰두하며 오만한 경영으로 복귀한 것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앞으로 은행이 어려워지면 도와주는 게 맞나? 그것도 세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