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몸보다 큰 소·말도 사냥…제주 중간산 들개 2000마리 공포 [e즐펀한토크]

중앙일보

입력

들판에 울려 퍼진 들개의 울부짖음 

야생화 된 제주 들개가 포획틀 안에 갇혀있다. 최충일 기자

야생화 된 제주 들개가 포획틀 안에 갇혀있다. 최충일 기자

‘으르렁~웡웡워웡’ 지난달 25일 오전 9시 30분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들녘. 날카로운 개 울음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울음소리를 따라 가보니 길이 1.5m, 높이 0.8m, 폭 0.5m 정도의 포획틀 안에 들개 한 마리가 갇혀있었다. 가까이 가 살펴보려 하니 이빨을 드러내고 크게 짖으며 경계했다. 전날 이곳에 포획틀을 놓은 제주시 유기동물 구조팀은 “개가 대형견만큼 크지는 않지만 사람 손을 타지 않았고 야생성이 강해 물 수 있다. 들개는 조심해야 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천적 없어…포획틀 등 이용해 잡아야 

제주 중산간에 설치된 들개 포획틀 틀 안에는 들개를 유혹할 햄과 소시지 등이 뿌려져 있다. 최충일 기자

제주 중산간에 설치된 들개 포획틀 틀 안에는 들개를 유혹할 햄과 소시지 등이 뿌려져 있다. 최충일 기자

이곳에는 이런 포획틀 7개가 설치됐다. 포획틀 주변 반경 1m정도부터 틀 안까지 들개가 좋아하는 햄이나 소시지를 줄지어 뿌려 유인해 잡는다. 개가 틀 속으로 들어가면 철창이 자동으로 닫힌다.

포획틀은 주민 요구로 설치됐다. 주민들은 들개가 나타나 마을을 배회하자 두려움에 떨었다. 제주도에 들개 천적은 없다. 인간을 제외하고 제주 자연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다. 자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아 잡아들이는 방법을 택했다. 이날 이곳 포획틀 안에 들개 4마리가 잡혔다.

경계심 강하고 야생성 강해 

마취된 채 유기동물 구조팀 그물에 잡힌 제주 들개. 최충일 기자

마취된 채 유기동물 구조팀 그물에 잡힌 제주 들개. 최충일 기자

하지만 구조팀은 계속 긴장했다. 포획틀 주변에 부모견 혹은 우두머리가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구조팀이 주변을 살피자 200m쯤 떨어진 곳에 정말 어미로 추정되는 들개가 있었다. 포획틀에 잡힌 것보다 확연히 컸다.

구조팀장은 자동차를 타고 다가가 마취총을 쐈다. 마취총은 원형 파이프에 블로우건 주사기를 넣고 입 또는 압축공기를 이용해 발사하는 장비(블로우건)를 쓴다. 마취총을 맞은 들개는 300~400m 정도를 달아나다 결국 쓰러졌다. 쓰러졌지만 마취가 완전히 되지 않았는지 심하게 몸부림을 쳤다. 구조팀원 정아름(29·제주시)씨는 “야생에서 오래 살아남은 들개는 경계심이 크고 의심이 많아 먹이가 있어도 틀 안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며 “특히 성체는 송아지나 망아지까지 사냥할 정도로 크고, 야생성이 살아있어 부득이 마취할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송아지·망아지까지 사냥”

제주에서 최근 들개에게 사냥당한 흑염소 사체. 사진 제주 유기동물 구조팀 제공

제주에서 최근 들개에게 사냥당한 흑염소 사체. 사진 제주 유기동물 구조팀 제공

제주에서 들개가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은 10여년 전부터다. 현재 제주 전역에 2000여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기동물 구조팀 관계자는 "반려동물 숫자가 늘면서 유기견도 덩달아 늘었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들개로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들개끼리 번식을 한 다음 무리를 이룬다는 점이다. 보통 3~5마리씩 무리생활을 하며 가축 사냥에 나선다. 구조팀에 따르면 자신보다 몸집이 3~4배 큰 소나 말까지 공격을 한 적도 있다. 그래서 성체보다 작은 송아지나 망아지 등은 이들에게 사냥감이 된다. 더 작은 염소나 닭 등은 손쉬운 먹잇감이다.

번식 늘어나며, 가축피해 키워

야생에서 큰 새끼 들개들이 동물 사체를 뜯어먹고 있다. 사진 제주 유기동물 구조팀

야생에서 큰 새끼 들개들이 동물 사체를 뜯어먹고 있다. 사진 제주 유기동물 구조팀

실제 제주시에서 들개 피해 가축을 파악한 결과 매년 피해가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닭 79마리, 한우 4마리, 말 4마리, 염소 8마리, 오리·거위 32마리가 폐사했다.들개 피해 건수는 2018년과 2019년 각 10건, 2020년 11건, 지난해 14건, 올해 15건으로 갈수록 늘고 있다.

제주시는 들개 번식이 왕성해지면서 공격성까지 강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조류에 집중됐던 가축 피해가 소·말 등 대형 가축까지 범위가 확산하고 있어서다. 2019년에는 닭 483마리와 기러기(청둥오리) 50마리 등 작은 조류 피해뿐이었다. 하지만 2020년 들어 닭(143마리) 외에 송아지 5마리와 한우 4마리, 망아지 1마리 등 대형 동물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해에도 닭(542마리)‧토끼(21마리) 외에 한우 2마리와 염소 6마리 등 비교적 몸집이 큰 가축들이 들개 공격을 받았다는 신고가 늘었다. 다행히 아직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336마리 포획…발생 줄일 동물 등록 강화 

최근 제주 중산간 농장에 나타난 들개 무리. 사진 제주 유기동물 구조팀

최근 제주 중산간 농장에 나타난 들개 무리. 사진 제주 유기동물 구조팀

이에 제주시는 2020년 하반기(7~12월) 93마리, 2021년 430마리,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336마리의 들개를 포획했다. 포획된 들개는 동물보호소로 보낸다. 또 들개 발생을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한 실외견 중성화 수술비 지원, 동물등록제 강화, 유기동물 입양 활성화, 견주 대상 홍보 강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제주시 관계자는 “한해 두 번 번식이 가능하고, 점차 피해가 늘어나는 만큼 들개문제를 해결할 근본적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들개 출몰신고가 잦은 마을‧목장 주변에 포획틀 30개를 설치해 집중 포획에 나서고, 유기견 방지를 위해 동물 등록도 강화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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