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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부르카 금지법’ 선택권 박탈 이란과 뭐가 다른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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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호 18면

김진경의 ‘호이, 채메’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란 당국에 체포된 후 사망한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을 애도하고 이란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가 지난달 22일 베를린에서 열렸다. [AP=연합뉴스]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란 당국에 체포된 후 사망한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을 애도하고 이란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가 지난달 22일 베를린에서 열렸다. [AP=연합뉴스]

스위스에서 일명 ‘부르카 금지법’이 시행을 앞두고 있다. 부르카는 무슬림 여성이 쓰는 몸 전체를 덮는 베일로 눈 부분은 망사로 되어 있다. 지난해 3월 국민투표에서 찬성 51.2%로 아슬아슬하게 통과된 이 법안은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것을 금지’하는 게 주된 내용이다. 법안에 이슬람이라는 단어는 없지만 사실상 부르카나 니캅(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덮는 베일) 착용이 불가능해져 부르카 금지법으로 불린다. 특정 종교 복식을 법으로 금지하는 게 차별 아니냐며 투표 전부터 논란이 많았다. 스위스 정부는 법 위반 시 벌금 1000스위스프랑(약 144만원)을 부과할 예정이라고 지난 12일 밝혔다.

스위스의 부르카 금지법은 현재 이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과 묘하게 대비된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얼굴은 드러내고 머리만 둘러싸는 베일)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체포된 뒤 지난 9월 16일 사망했다. 한쪽에서는 부르카를 쓰면 처벌하고, 다른 쪽에서는 히잡 잘못 썼다는 이유로 사람이 죽는다. 스위스와 이란, 약 5000㎞ 떨어진 두 나라의 상황은 거울에 나타난 반영 같기도 하다. 내가 오른손을 들면 거울 속 이미지는 왼손을 든다. 반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같다. 베일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것은 부차적 질문이다. 베일을 쓰지 말라고, 혹은 쓰라고 명령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이것을 먼저 물어야 한다.

미·영 지원받은 팔레비 왕조, 베일 금지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란 당국에 체포된 후 사망한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을 애도하고 이란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가 지난달 22일 베를린에서 열렸다. [EPA=연합뉴스]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란 당국에 체포된 후 사망한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을 애도하고 이란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가 지난달 22일 베를린에서 열렸다. [EPA=연합뉴스]

스위스와 이란 양쪽 사회를 모두 잘 아는 사람의 생각은 어떨까. 수소문 끝에 스위스에 거주하는 사만 헤크마티(35)를 소개받아 지난 10월 27일 만났다. 사만은 이란 북서부 쿠르드족의 거주지인 쿠르디스탄 출신이다. 사망한 여성 아미니의 고향과 같다. 이란 하메단대학의 토목공학과 학생이던 그가 스위스로 이주한 건 22세이던 2009년이다. 당시 대통령 부정선거 의혹으로 이란 전역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잔혹한 진압을 직접 겪고 충격을 받아 유학을 결심했다. 사만은 스위스 취리히공과대학(ETH)에서 토목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현재 관련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인터뷰 닷새 전인 10월 22일 그는 독일 베를린에서 벌어진 이란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 약 10만 명이 참가한, 유럽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현 이란 정부에는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스위스를 비롯한 유럽의 가치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도 않는다”는 사만에게 이란 사태 및 스위스의 부르카 금지법에 관해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스위스에 거주하는 이란인 사만 헤크마티는 스위스의 부르카 착용 금지법에 대해 “누가 쓰라 말라 강제할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사진 사만]

스위스에 거주하는 이란인 사만 헤크마티는 스위스의 부르카 착용 금지법에 대해 “누가 쓰라 말라 강제할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사진 사만]

베를린 시위는 어땠나. 거기까지 간 동기는.
마음 같아선 당장 이란에 가서 시위에 동참하고 싶다. 그럴 여건이 안되어 베를린에 갔다. 나처럼 유럽 각지에서 온 이란인들이 많았다. 비록 이란 밖에 나와 살지만 조국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주시한다는 걸, 우리가 분노하고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이란 반정부 시위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다양성이다. 현 시위를 페미니즘 시위로만 보는 건 축소 해석이다. 아미니의 죽음이 시위를 촉발한 건 맞지만 사람들은 현 종교 정부의 부패와 무능함, 권위주의에 총체적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베를린 시위 현장에는 수많은 이란 남성은 물론이고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군주제 지지자, 쿠르드족, 종교인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이란인들이 모여 각자의 깃발을 들고 한 목소리로 현 정부를 규탄했다. 평소라면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할 집단들이 하나가 되었다. 여성뿐 아니라 모두가 분노하고 있다.”
현재 이란에 있는 가족과는 어떻게 소통하는가.
이란에서는 사실상 누구나 VPN (Virtual Private Network, 가상 사설망)을 이용한다. 정부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다. 72세인 나의 어머니도 휴대폰 대리점에 부탁해 VPN을 다운받은 뒤 나와 왓츠앱 메신저로 연락한다. 어머니가 보내 주는 쿠르디스탄 시위 영상, 또 수많은 이란인이 VPN을 이용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현지 시위 영상을 보며 사태를 파악하고 있다. 이란 내 미디어는 물론이고 서구에서 이란 사태를 보도하는 방식도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소셜 미디어를 통해 더 정확한 정보를 얻는다. 가족 모두 현 시위를 적극 지지한다. 어머니는 이슬람혁명(1979) 당시 30대로 고등학교 교사였다. 전통적 복장을 하지 않고 반항하다 학교에서 해고당했다. 아버지는 혁명 초기에 쿠르드족을 돕다가 1년 동안 징역을 살았다. 어머니는 히잡을 안 썼다는 이유로 2014년에 도덕 경찰에게 잡혀간 적도 있다.”
히잡 안 쓰는 어머니를 보며 자란 당신은 스위스의 부르카 금지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누가 쓰라 말라 강제할 사안이 아니다. 말도 안 되는 법이다.”
스위스인 다수가 지지한 법인데.
다수의 결정은 늘 옳은가? 다수가 정하면 꼭 따라야 하나? 그게 민주주의라고 하는데, 그러면 다수가 파시스트를 지지해도 따라야 하나? 기본권까지 다수결로 정할 수는 없다. 무슨 옷을 입을지 말지 스스로 정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권에 해당한다. 나는 베일이 이슬람교와 직접적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꾸란에 구체적 베일 착용 규정은 없다. 베일은 중동의 기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전통 복장이다. 사람에 따라 이 복장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베일=이슬람’이라는 구도를 만든 건 정치 세력이다. 1920년대에 미국과 영국의 지원을 받으며 근대화를 추진한 이란 팔레비 왕조는 베일을 야만적이라며 금지했는데 당시 여성들은 서구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뜻으로 일부러 베일을 썼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수립된 새 정부는 반서구를 표방하며 베일 착용을 강요했다. 복잡한 정치 상황에서 여성은 선택권을 잃었다. 스위스 정부의 베일 금지도 마찬가지다. 선택권을 박탈했다는 점에서 이란 정부와 뭐가 다른가.”
법안 주도자들은 무슬림 여성들에게 베일 벗을 자유를 준다고 한다.
베일을 속박이라 보는 유럽인들은 해변에서 옷 벗고 햇볕을 쬐는 게 자유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이념적으로 세상의 꼭대기에 있다고, 다른 지역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종교든 환경이든, 이슈의 방향을 자신들이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중동을 걱정하는 게 아니다. 서구의 가치를 중동에 팔고 싶어한다.”

보통 이란인들, 비합리적 제재로 고통

사만은 지난달 22일 베를린 시위에 참여했다. [사진 사만]

사만은 지난달 22일 베를린 시위에 참여했다. [사진 사만]

서구와 이란의 정치적 대립으로 생기는 문제는 베일만이 아니다. 현재 유럽과 미국은 대이란 추가 제재에 들어갔다. 제재로 인한 이란 사회의 변화는.
제재가 실제 누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장기적으로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생각해야 한다. 미국과의 핵 협상 실패 이후 이란 경제는 침몰하고 있다. 매년 이란을 방문할 때마다 느낀다. 문 닫는 가게가 늘고, 사람들의 얼굴에 분노와 슬픔이 어려 있다. 항암제 등 필수 의약품을 구할 수 없는 건 큰 문제다. 유럽에 사는 이란인들의 네트워크가 있어서 여기서 구할 수 있는 건 보내 준다. 하지만 외부 도움에는 한계가 있다. 어이없는 경험이 있다. 스위스에 몇 년 전 모바일 송금 서비스 트윈트(Twint)가 생겼을 때, 친구가 나에게 시험 삼아 1스위스프랑(약 1400원)을 보내려고 해 봤다. 근데 안 되더라.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 친구가 며칠 뒤 스위스 은행에서 경고장을 받았다. 이란과 금융 거래를 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내용이었다. 알고 보니 친구가 휴대전화에 내 이름을 사만 이란(Saman Iran)이라고 저장해둔 게 문제였다. 이란이라는 키워드 때문에 나와 친구 모두 스위스 거주자임에도 단돈 1스위스프랑도 오갈 수 없었던 것이다. 비합리적인 강경 제재로 고통받는 건 보통의 이란인들이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까.
아직 최악이 아니다. 이번 시위 시작 40일 만에 약 200명이 사망했다는데, 이란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보다 훨씬 잔인하게 대처할 수도 있다. 2019년 연료값 상승으로 촉발된 시위 때는 이틀 만에 수백명이 사망했었다. 정부가 ‘자제’ 중인 이유는 현 시위를 서구 사회가 주시하고 있어서다. 고통이 있겠지만, 나는 장기적으로 이란 역사의 발전을 믿는다. 용감한 시민들이 악랄한 정부보다 강하다.”

김진경 스위스 거주 작가, 한국에서 일간지 기자로 일했다. 스페인 남자와 결혼해 스위스 취리히로 이주한 뒤 한국과 스위스의 매체에 글을 기고해 왔다. 저서로 『오래된 유럽』이 있다. 현재 취리히대학에서 인터넷 플랫폼과 그것을 둘러싼 사회의 변화에 대해 공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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