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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싸놓고 밤 샜어요"…뜬 눈으로 가슴 졸인 민통선 주민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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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전 이후 처음 북한의 미사일이 NLL(북방한계선)을 넘던 지난 2일 민통선 인근 주민들은 급히 대피에 필요한 짐을 싸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공습경보가 내려진 울릉도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지난 3일 경기도 연천군 중면 중부전선 민통선(민간인 출입통제선) 내 횡산리를 찾아 주민들을 만났다. 태풍전망대 아래쪽에 위치한 횡산리는 중부전선에서 북한과 가장 가까운 마을이다. 27가구 57명이 살고 있다. 김학용 이장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 강도가 점점 높아져 가니 민통선 주민들은 너무 불안하다”며 “울릉도 공습경보 직후 마을 주민 50여명 전원이 마을 입구 지하에 있는 ‘민방공 대피소’로 긴급 대피할 채비를 마치고 여러 시간 마음을 졸였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민통선 횡산리 마을 민방공 대피소. 전익진 기자

지난 3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민통선 횡산리 마을 민방공 대피소. 전익진 기자

“8년 만에 처음으로 짐 싸놓고 대피 준비”

 횡산리 마을 민방공 대피소는 128㎡ 규모다. 지하에는 비상 발전기, 급수시설, 방폭 문, 방폭 밸브, 창고, 방송 청취시설 등이 갖춰져 있다. 이날 오후에는 시설을 관리하는 연천군 공무원 3명 나와 긴급 시설점검을 하고 돌아갔다. 이날도 주민들은 전날에 이어 대부분 집에 머물며 뉴스 속보를 통해 북한군의 추가 도발 여부를 살피는 모습이었다.

지난 2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김학용 이장은 “지난 2일 북한의 추가 도발 시 마을에 포탄이 떨어지는 상황을 상정해 민통선 바깥으로 마을 주민 전체를 긴급 대피시키기 위한 ‘전시 주민 대피계획’을 군부대와 긴급 점검했다”며 “연일 긴장감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3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민통선 내 임진강 장군여울 '두루미 탐조대'. 태풍전망대 관광 전면중단 여파로 관광객이 없는 모습. 전익진 기자

3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민통선 내 임진강 장군여울 '두루미 탐조대'. 태풍전망대 관광 전면중단 여파로 관광객이 없는 모습. 전익진 기자

마을에 포탄 떨어질 시, 민통선 바깥 대피 점검도  

 그는 “주민들이 대피를 위해 짐을 싸기는 8년 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2014년 10월 10일 북한이 대북전단 풍선에 고사총 사격을 가하면서 면사무소 마당 등에 총탄이 날아들자 주민들은 면사무소 옆 대피소로 피신했다. 당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남북이 군사적으로 긴박하게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날 마을 인근 민통선 내 밭에서 만난 출입영농자 이모씨는 “북한이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탄도미사일을 처음 발사한 것도 모자라 3일에는 미국을 겨냥한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까지 쏘아대니 걱정이 태산”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거듭된 위협 속에서도 탈북민 단체들은 대북전단을 접경지역 일대에서 계속 살포하고 있어 더 좌불안석”이라며 “북한이 핵실험 마저 강행한다면 접경지역의 긴장이 극에 달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3일 오후 연천군 중면행정복지센터 대피소. 왼쪽에 지난 2014년 10월 10일 북한이 대북전단 풍선에 고사총 사격을 가하면서 생긴 ‘낙탄지’가 보존돼 있다. 전익진 기자

3일 오후 연천군 중면행정복지센터 대피소. 왼쪽에 지난 2014년 10월 10일 북한이 대북전단 풍선에 고사총 사격을 가하면서 생긴 ‘낙탄지’가 보존돼 있다. 전익진 기자

“미사일 도발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vs “남북 간 대화 단절이 긴장 악화”  

 북한의 잇따른 탄도미사일 도발의 해결 방법에 대한 의견은 횡산리 주민들 사이에도 분분했다. 주민 박모씨는 “우리 정부도 물러서지 말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북한이 더는 까불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주민 김모씨는 “최근 남북 간 대화가 단절된 게 긴장을 풀지 못하는 원인”이라며 “국지적 도발로 이어지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막바지 가을걷이가 한창이어야 할 횡산리에 밭에는 주민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마을 입구 안보 관광명소 2곳도 텅 빈 모습이었다. 지난 2일 북한의 탄도 미사일 도발 직후부터 태풍전망대 관광을 전면 중단한 때문이다. 휴전선 남측 11개 전망대 중 북한과 가장 가깝다는 대풍 전망대도, 생태공원인 ‘임진강 평화습지원’에도 방문객은 없었다. 습지원 옆 미술 전시관인 ‘연강 갤러리’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두루미 월동지인 장군 여울 옆에 마련된 망원경이 갖춰진 ‘두루미 탐조대’에도 인적은 없었다. 강 안쪽 수심이 얕은 여울엔 재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3호) 3마리가 물속에 서 있다.

태풍전망대 및 열쇠전망대 위치도. 사진 경기도

태풍전망대 및 열쇠전망대 위치도. 사진 경기도

민통선 내 태풍전망대 안보관광 전면 중단  

 임진강 평화습지원 이광길 소장은 “지난 2일 북한이 속초 인근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이후 태풍전망대 출입이 금지됐고 방문객의 발길이 완전히 끊겼다”며 “이달 초부터 재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3호)가 월동을 위해 날아오기 시작해 현재 50여 마리가 빙애여울 일대에서 서식 중이고 이달 중순쯤이면 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2호)도 날아올 때인데 대목을 놓쳤다”고 말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태풍전망대를 찾은 일부 관광객들이 태풍전망대 앞 민통선 초소까지 왔다가 차를 돌리기도 했다.

지난 2014년 10월 10일 북한이 대북전단 풍선에 고사총 사격을 가하면서 생긴 연천군 중면행정복지센터 마당 ‘낙탄지’의 지난 3일 모습. 전익진 기자

지난 2014년 10월 10일 북한이 대북전단 풍선에 고사총 사격을 가하면서 생긴 연천군 중면행정복지센터 마당 ‘낙탄지’의 지난 3일 모습. 전익진 기자

이런 가운데 북한은 3일 밤에도 해상 완충 구역으로 포 사격을 벌여 주민들은 뉴스 속보를 지켜보며 불안한 밤을 보냈다. 4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3일 오후 11시 28분쯤부터 강원 금강군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포병 사격 80여 발을 가했다. 탄착 지점이 9·19 합의에 따른 해상 완충 구역 내부 수역으로 또다시 9·19 합의를 위반한 것이다. 군은 이에 포격이 군사합의 위반임을 알리고 즉각 도발 중단을 촉구하는 경고 통신을 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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