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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진상규명 위해 이태원 영상 ‘바이럴’?…“저작권·초상권 침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기록으로 남길 영상이다. 주변에 최대한 공유하자.”
원 제작자가 소셜 미디어(SNS)에서 이미 삭제한 이태원 참사 현장 영상을 ‘공익성’을 명분으로 재생산해도 될까.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서울경찰청 수사본부 수사관들이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일대에서 발생한 핼리윈 대규모 압사 참사 현장을 합동감식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서울경찰청 수사본부 수사관들이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일대에서 발생한 핼리윈 대규모 압사 참사 현장을 합동감식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무슨 일이야

29일 이태원 참사 이후 SNS에서는 당시 상황을 묘사한 글과 사진·영상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최초 작성자가 게시물을 삭제한 이후에도 ‘삭제 영상 풀 버전’, ‘재 업로드’ 등의 제목으로 재상산돼 유튜브·인스타그램·틱톡 등에서 바이럴 되고 있는 것.

대표 사례 중 하나는 사건 현장에 있던 한 인터넷방송 진행자가 실시간으로 촬영한 영상물이다. 그가 급박한 상황에서 다른 시민에게 도움을 준 모습이 찍혔고, 고통을 부르짖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고스란히 담겼다. 해당 영상은 실시간 방송이 종료된 후 삭제됐지만, 다른 유튜버가 해당 영상을 ‘얼굴 흐리게 처리 기능을 활용했다’면서 공유했다. 최초 영상을 촬영한 당사자의 동의를 구했다는 설명은 없다.

이 영상을 본 이들은 ‘사건의 경위를 알고 진상을 규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혼자 보지 말고 가족, 친구 등에게 최대한 공유하자’며 영상 공유를 적극적으로 독려했다. 그러나 일부는 “가슴이 아파서 못 보겠다”는 반응도 있다. 이 영상 외에도 사고 당시 현장에서 구조대가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영상과 사진이 다양한 SNS에서 확산하는 중.

 재생산된 이태원 참사 관련 영상에 올라온 댓글들. 유튜브 캡쳐

재생산된 이태원 참사 관련 영상에 올라온 댓글들. 유튜브 캡쳐

이게 왜 중요해

◦ 저작권·초상권 침해 : 영상 제작자의 동의 없는 유포나 재생산은 원칙적으로 저작권법 위반 소지가 있다. 삭제 영상에도 저작권은 존재한다는 것. 또 영상에 얼굴이 노출되는 피해자들의 초상권 침해 문제도 있다. 전홍규 변호사(법무법인 해랑)는 “삭제한 영상을 제작자 동의 없이 올린 경우라면 저작권 위반으로 처벌될 소지가 있고, 원작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무조건 내려야 한다”면서 “영상에서 식별 가능한 이들에게는 모두 초상권이 있기 때문에, 동의 없이 촬영한 사람들을 그대로 노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 공익성 vs 호기심 : 바이럴 영상에 공익성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나.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은 “이 경우 ‘공익’은 호기심에 더 가까워보인다”면서 “영상 확산으로 인해 침해되는 (피해자의) 사익과 인권 침해 소지가 더 크기 때문에 공익으로 인정되기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유튜브의 경우, 영상 조회수에 따라 광고가 붙고, 광고 수익의 55%를 채널 운영자가 갖는 만큼 공익성을 주장하기는 더 어렵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31일 성명서를 통해 “사고 현장 영상의 유포는 고인과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2차, 3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으며 국민에게 심리적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플랫폼은 어때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사고 현장에서 시민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SNS 캡처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사고 현장에서 시민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SNS 캡처

이태원 참사 영상이 가장 활발하게 바이럴되고 있는 곳은 유튜브. 그러나 유튜브 운영사인 구글이 재생산 영상을 막을 방법은 많지 않다. 원칙적으로 저작권을 가진 당사자가 구글 측에 삭제를 요청하는 경우는 구글이 삭제 처리한다. 그러나 저작권자의 삭제 요청이 없었다면, 한번 삭제됐던 영상이나 사본을 누군가 다시 업로드해도 구글이 나서서 삭제 조치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영상 제작자가 직접 유튜브에서 원본 영상을 삭제했지만 다른 유튜버에 의해 재상산되는 경우에는 원본이 유튜브 규정을 준수했는지를 따져본다. 유해성 등을 이유로 유튜브 커뮤니티 규정을 위반했다면 구글이 직접 해당 영상을 삭제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엔 추가 바이럴도 차단된다. 원본 영상을 편집해 만든 유사 영상들도 유튜브의 알고리즘 필터링과 자체 검열 기능 등을 통해 삭제된다.

유튜브에서 이태원 참사 바이럴 영상이 급증하자 유튜브는 31일 오후 “이번 사건과 관련된 검색 및 추천 결과에서 공신력 있는 출처의 뉴스 영상을 우선 제공하고 있다”는 입장을 냈다. 또 “유튜브 커뮤니티 가이드에 따라 콘텐츠를 삭제하거나 연령 제한 적용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