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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트족 축제였던 핼러윈, 한국 들어와 MZ세대 명절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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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29일 밤 핼러윈 행사 도중 압사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인근 도로에서 119 구조대원 등이 줄지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9일 밤 핼러윈 행사 도중 압사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인근 도로에서 119 구조대원 등이 줄지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핼러윈(10월 31일)이 기성세대에겐 낯선 ‘남의 나라 명절’이지만, MZ세대(1981~2010년생)에겐 최고 명절로 꼽힌다. 외국 문화에 익숙한 젊은 층이 늘어난 상황과 기업의 상술, 소셜미디어(SNS)의 일상화가 결합해 한국식 핼러윈 문화가 자리 잡게 됐다. 지난 29일 참사로 한국에서 핼러윈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비극의 날이 됐다.

역사학계는 핼러윈이 기원전 500년 무렵 고대 켈트족의 새해(11월 1일)맞이 ‘사윈 축제’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켈트족은 이날 사후 세계와의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악마나 망령이 세상에 나타날 수 있다고 여겼다. 이에 사람들은 사자의 혼을 달래기 위해 모닥불을 피우고 음식을 내놓는 한편, 망령이 알아보지 못하게 변장했다고 한다.

8세기 가톨릭 교회는 11월 1일을 ‘모든 성인 대축일(All Saint’s Day)’로 지정했다. 그러면서 전날인 10월 31일 사윈 축제의 전통을 이어갔는데, ‘신성한(hallow)’ ‘전날 밤(eve)’이라는 의미에서 ‘핼러윈’으로 불리게 됐다. 켈트족 문화와 가톨릭 신앙이 혼합된 형태로 발전한 축제는 아일랜드인 등 유럽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여러 문화가 섞인 오늘날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미국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어린이들이 분장한 채 집집마다 초인종을 누르며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 접대하지 않으면 골려 주겠다)을 외치는 장면은 핼러윈의 상징으로 꼽힌다. 비단 어린이만이 아니라 어른도 기괴한 의상과 분장을 한 채 파티를 즐긴다. 호박 속을 파내고 등불을 넣은 유령 인형 ‘잭오랜턴’과 해골 인형 등을 마당에 설치하기도 한다.

국내에 핼러윈이 널리 퍼진 건 2000년대 초 영어유치원 확산과 궤를 같이한다. 아이들에게 미국 문화를 자연스럽게 가르치는 방편으로 핼러윈을 활용하면서다. 당시 “가뜩이나 영어유치원 비용도 비싼데 핼러윈 분장과 소품까지 준비하려니 부담스럽다”는 일부 학부모의 하소연도 있었다.

점차 핼러윈은 1020세대를 중심으로 급속히 퍼졌다. 외국인이 자주 찾는 번화가 클럽을 중심으로 핼러윈 행사가 열렸고, 어학연수와 ‘미드’(미국 드라마) 등으로 미국 대중문화가 익숙한 젊은 층이 핼러윈을 즐겼다. 외국인이 많고 클럽·카페가 많은 이태원, 홍대 주변은 매년 10월 말이면 핼러윈을 즐기려는 젊은이들로 불야성을 이뤘다.

여기에 유통업계가 핼러윈 마케팅을 불붙였다. 또 일부 연예인과 인플루언서(SNS 유명 인사)들이 핼러윈 관련 콘텐트를 SNS에 올리는 등 관련 문화를 선도하며 젊은 층에겐 빼놓을 수 없는 기념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억눌렀던 끼를 분출할 기회가 됐다.

기업의 상술과 SNS가 결합해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쏠림이 심한 한국형 핼러윈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핼러윈에 익숙한 젊은 층과 이런 행사를 호재로 삼은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 및 SNS 일상화가 맞물려 핼러윈 축제가 과열화되고 더 자극적으로 변한 측면이 있다”며 “놀이 문화가 다양하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19 완화와 맞물려 이번 핼러윈이 젊은이들 입장에서 탈출구로 여겨졌을 것”이라고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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